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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통신] 100 대 0의 나라

경제일반(국내)

by 21세기 나의조국 2010. 2. 23.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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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통신] 100 대 0의 나라
(서프라이즈 / 개곰 / 2010-02-23)

 


우려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영국은 지난달에도 적자 행진을 이어갔다. 원래 1월달은 막대한 세수가 들어오니까 흑자를 봐야 정상이다. 일각에서는 28억파운드의 흑자를 점쳤다. 그러나 흑자는커녕 1월에도 영국 정부는 새로 43억파운드의 돈을 빌렸다. 경기 침체로 1년 전보다 소득세가 20%가 감소하여 들어오는 돈은 줄어들고 은행에 대한 공적 자금 투입 등 나가는 돈은 10%가 늘었으니 적자는 사실 당연했다.

 

1월 말 현재 영국의 나라빚은 8480억파운드이며 연간 적자는 GDP의 12.6%다. 파산 선고를 받은 그리스의 1년 예산 적자가 GDP의 12.7%니 영국의 빚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오는 5월로 예상되는 총선에서 정권을 잡을 것으로 예상되는 야당 보수당은 이대로 가면 나라빚이 그리스를 추월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며 정부 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실제로 지난 2월 14일 영국의 보수지 타임스지에 20명의 유력 경제학자들이 정부가 조기에 긴축 정책을 펴지 않을 경우 영국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을 것이라며 경고하고 나섰다. 그러자 보수당의 예비 재무장관 조지 오스본은 주류 경제학자들 대부분이 보수당의 긴축 정책을 지지한다고 기염을 토했다.

 

보수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든 노동당이 계속 집권하든 총선 이후에는 VAT가 지금의 17.5%에서 적어도 20%로 오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그러지 않고는 적자를 줄일 뾰족한 방도가 없다. 미국은 예산 적자를 겪어도 석유 거래대금으로 쓰이는 기축통화 달러가 있으니까 웬만큼 버티지만 영국은 다르다. 아무리 영국이 국제 금융의 중심지더라도 영국 정부가 재정 적자를 방치하면 파운드화는 금융 시장의 불신을 받는다. 결국 허리띠를 졸라매고 빚을 갚지 않으면 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원론은 맞다.

 

문제는 허리띠를 졸라맬 시점이 언제냐다. 섣불리 정부가 긴축에 돌입할 경우 살얼음판을 걷는 영국 경제가 불황의 늪으로 깊숙이 빠져들 가능성도 크다. 실제로 타임스지에 20명의 경제학자가 긴축 정책을 촉구하는 공개 서한을 발표하고 나서 며칠 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를 비롯하여 67명의 저명 경제학자들이 지금 지출을 줄이는 것은 시기상조라면서 경제가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보이는 2011년 이후에 긴축 정책을 펴겠다는 알리스터 달링 현 재무장관의 정책을 지지하는 글을 파이낸셜타임스지에 공동으로 실었다. 미국 정부가 30년대 후반에 너무 일찍 지출을 줄이는 바람에 회생 기미를 보이던 미국 경제가 더욱 심각한 불황의 늪에 빠졌던 역사적 경험을 되새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보수당이 긴축 정책을 들고 나온 데는 몇 가지 포석이 있다. 첫째, 어차피 보수당이 집권하더라도 정부 지출 축소는 불가피하니까 미리 복선을 깔아두는 면이 있다. 둘째, 적자를 방치하여 후세에 부담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노동당 정부와는 달리 나라의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책임 있는 정치 세력임을 부각시키려고 한다. 셋째, 노동당이 여론에 떠밀려 긴축 정책으로 돌아설 경우 불만을 느낀 영국 유권자가 총선에서 노동당 정부에 반기를 들리라는 포석이다.

 

금융권 일각에서도 영국의 신용 등급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면서 보수당에 은근히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정작 자기들의 과도한 보너스 수혜는 별로 문제시삼지 않으며 이것을 지적하는 대다수 영국 국민을 부를 시샘하는 질투꾼으로 깎아내린다.

 

보수당도 금융 종사자들의 과도한 대우를 원론적으로만 꼬집을 뿐 구체적인 규제안은 내놓지 않는다. 이런 위선을 깨닫는 영국 국민이 늘어나서인지 여유 있게 정권을 잡을 것으로 보였던 보수당과 노동당의 지지율 격차가 갈수록 좁혀지고 있다. 이렇게 지지율 격차가 줄어드는 데는 기득권자만의 이익을 대변하는 언론과 학자들만 우글거리지 않는 영국의 언론 환경과 학문 풍토도 크게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한국은 어땠을까? 참여정부 때 행정수도 이전이 충청도의 표를 노린 노무현의 잔꾀라고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총궐기하여 물어뜯을 때 어떤 언론도 어떤 학자도 행정수도 이전의 당위성을 부르짖고 나서지 않았다. 이른바 진보 언론이라는 한겨레, 경향, 오마이도 민생이나 챙길 것이지 무슨 얼어죽을 행정도시 이전이냐며 비아냥거리고 눈엣가시인 노무현이 린치당하는 것을 즐겼다.

 

아직도 왕 앞에서 몸을 사리는 나라 일본과 일본의 식민지 충견들이 대를 이어 호의호식하는 한국에만 있는 비리와 부패의 온상 기자실을 없애고 브리핑제도로 바꾸려고 했을 때는 언론 탄압을 한다면서 조중동과 한겨레, 경향, 오마이가 어깨동무를 하고 반정부투쟁에 나섰다. 그런데 대통령이 만나서 이야기를 좀 나눠보자고 하니까 한 명도 나서지 않았다. 아프리카 독재국에도 없는 기자실의 객관적 존재 이유가 담합과 부패 말고는 달리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본인들부터가 너무 잘 알았던 것이다.

 

언론학자 중에서도 기자실의 폐해와 부당성을 꼬집는 사람이 없었다. 보수당 주변의 경제학자 20명이 노동당의 고든 브라운 총리를 비판하고 나섰을 때 영국에서는 67명의 경제학자가 그 비판의 편향성과 부당성을 꼬집고 나섰지만, 얼핏 부자들만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파이낸셜타임스가 67명 경제학자들의 반론을 실어주었지만, 노무현은 지켜주는 언론도 옹호해주는 학자도 없었다.

 

노무현은 언론에서도 0 대 100이었고 학계에서도 0 대 10만으로 밀렸다. 노무현은 진실과 사실보다 가방끈 따지고 내 편 네 편 따지는 한국의 썩은 엘리트 집단 사이에서는 언제나 왕따였고 혼자였다.

 

노무현을 후려패는 데는 보수 진보가 따로 없었고 좌우가 따로 없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따로 없었고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따로 없었다. 사익에 목숨을 건 한국의 고학력자들이 공익에 목숨을 걸고 외롭게 버텨온 저학력자에게 집단 린치를 가했다. 그리고 결국 뇌종양에 걸린 후원자를 야비하게 감옥에 가두고 그것을 고소해하면서, 노무현을 죽음보다 더 깊은 삶의 고통을 안겼고, 결국 죽음으로 밀어넣었다.

 

영국은 20 대 67의 나라고 한국은 100,000 대 0의 나라다. 영국은 50 대 50의 나라고 한국은 100 대 0의 나라다. 노무현의 정신을 이어가는 노무현재단의 발전은 100 대 0의 나라를 100 대 1의 나라로라도 바꿔나가기 위한 작은 첫걸음이다.


(cL) 개곰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england&uid=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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