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에서 별 것 사지도 않았는데 돈 10만원을 훌쩍 넘었다" "물가 걱정이야 한 두 해 일이 아니지만 벌이가 줄어들어서인지 요즘엔 고통스럽다"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있다는 말은 도대체 어느 나라 얘기냐?"
최근 호전되는 각종 지표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의 삶은 팍팍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2년 동안 가계의 실질소득은 마이너스를 보이는 가운데
소비자물가지수는 크게 상승하면서 서민층의 고통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말 물가와 관련한 한 여론조사에서는 조사 대상자의 57.8%가 '물가가 매우 많이 올랐다'고 답했으며, 34.5%가 '물가가 오른 것 같다'고 응답했다. 전체 조사 대상자의 92.3%가 물가 상승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소비자물가는 2003년 3.5%, 2004년 3.6% 등으로 3%대 상승률을 보이다가 2005년 2.8%, 2006년 2.2%, 2007년 2.5% 등으로 다소 안정세에 들어섰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 위기가 불어닥친 2008년 4.7%로 급상승했다가 지난해 2.8%로 진정 국면에 들어섰다. 특히
노무현 정부 후반 2년과 이명박 정부 초반 2년의 소비자물가 평균 상승률을 보면 2.35%와 3.75%로 큰 차이를 보인다. 또 2005년 7월 소비자물가지수를 100으로 했을 때 이명박 정부 출범 전 2년간(2006년 2월~2008년 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6.8로 5.7% 늘었지만 이후 이명박 정부 출범 후 2년간(2008년 2월~2010년 1월)은 7.4%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들어서도 물가상승률이 다시 3%대에 들어서면서 연초부터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월 1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월 소비자 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3.1% 상승했다. 이는 지난해 4월의 3.6% 이래 가장 큰 폭으로 물가가 오른 것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3월 "서민에게 필요한 라면, 빵, 대입학원비 등 주요 생필품 50여 개 물가를 집중 관리하라"고 지시한 이후 만들어진 이른바 'MB물가'가 소비자물가 상승세를 주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 1월 현재 'MB물가'는 지난해 1월 대비 3.4% 올랐다. 이는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인 3.1%보다 높았다. 금융 위기가 정점으로 치닫던 2008년 3분기에 7% 후반으로 치솟던 MB물가는 지난해 중순 마이너스대로 급락했다가 올해 들어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생필품값 올라 서민들 더 힘들어 문제는 지난해 말 이후 진행된 가파른 상승 속도다. MB물가는 지난해 6월 전년 같은 달 대비 마이너스 0.7%로 일시적 역전현상을 보인 뒤 1% 내에서 안정세를 보였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1.8%, 12월 2.9%로 급등한 후 올해 들어서까지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품목별로는 파가 전년 대비 30% 올랐고 쇠고기(국산 20.8%), LPG(취사용 14.8%), 샴푸(7.3%) 가격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52개 품목 가운데는 석유제품 영향과 계절적 요인 등 변동성이 큰 소비제품이 많이 들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소비자물가지수 상승의 원인을 정부의 정책 결과만으로 볼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명록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2년 물가지수가 다소 높은 것은 정부의 정책에 따른 이유도 있지만 시기적으로 환율문제라든지 우리나라 개방경제의 특징, 석유값 폭등 등에 기인한 바 크다"면서 "저소득층의 경우 생계가 힘든 상태에서 생활과 밀접한 식료품과 석유값 등 생필품 가격이 오르니 더 힘겨울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물가관리보다 소득 증가 주력해야 소비자물가 상승폭이 더 커졌다는 것은 가계 부담이 더 심해졌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물가잡기에 강도 높게 나서고 있다. 일단 직접 통제 가능한 중앙부처 관할 공공요금은 동결토록 하고, 지방자치단체 소관의 공공요금은 지자체에 대한 재정 지원과 연계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금융감독원은
자동차보험료를 올리려는 보험업계에 "아직은 견딜 수 있는 수준"이라며 제동을 걸었고, 교육부는 등록금을 올린 대학에 대해 재정 지원 및 취업후학자금상환대출(ICL) 배정시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이 대통령이 직접 업계에 가격 인하의 시그널을 보내기도 했다. 최근 밀가루 가격이 인하됐는데도 식품업체들이 가격을 내리지 않고 있는 것을 겨냥해 "물가가 오를 때는 빠르게 많이 오르면서 내릴 때는 천천히 적게 내리는 경향이 아직도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관행화된 사고와 구조로는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 정부가 업자들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움직여야 한다"고 주문한 것. 공교롭게도 이날 식품업계는 줄줄이 가격 인하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소비자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품목의 가중치를 100으로 봤을 때 밀가루는 0.1%에 불과해 이에 따른 라면, 빵 가격 인하가 전반적인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한 'MB물가지수'를 선정한 경우처럼 초기 일부 품목에 대해 반짝 가격인하 효과가 나타난 뒤 시간이 지나 한꺼번에 오르는 폭등 현상도 우려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생필품 가격이 오르지 못하도록 '찍어누르기식' 가격관리에 나설 것이 아니라 소득과 소비의 균형, 즉 가계의 실질소득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이기는 하지만 2년 연속 가계의 실질소득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라는 주문이다. 김명록 연구원은 "최근의 물가 상승은 수치로만 보면 가계에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다. 문제는 소득이 그렇게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라면서 "물가상승 폭이 가파르지 않아도 실질소득이 마이너스이다 보니 물가가 조금만 올라도 격차가 커져 체감지수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소비자물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지만 가계의 실질소득은 2008년부터 줄곧 내리막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가계의 실질소득은 2004년 집계 이후 2.3% (2004년), 1.3%(2005년), 2.8%(2006년), 2.5%(2007년) 등 크지는 않지만 꾸준히 증가해 왔다. 그러나 2008년에 마이너스 0.2% 상승을 기록한 이후 지난해엔 3.3% 더 떨어졌다. 2007년 305만600원이던 가계의 실질소득은 2009년 311만 7200원까지 추락했다.
가계소득 줄고 빚 늘어… 생활상 변화 소비자물가와 실질소득의 괴리감과 함께 대출이자 등 통계에 나타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지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소의 이상동 경제연구센터장은 "가계지출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에 의한 이자비용이나 보험 등 금융상품에 대한 지출 부문은 눈에 확 드러나지 않지만 이 또한 엄연한 지출로, 규모가 상당히 크다"고 분석했다.
이 센터장의 지적처럼 고용은 악화되고 소득은 제자리걸음인데 가계부채는 꾸준히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금과 사회보험 등을 떼고 가계가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인
가처분소득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1043조원으로 1년 전보다 1.5% 늘었지만 반면 대출과 카드사용처럼 가계가 갚아야 하는 부채 또한 713조원으로 크게 늘어났다. 이에 따른 가계부채 비율은 68.3%로, 이 비율은 매년 9월 말 기준으로 비교했을 때 사상 최대 규모다.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부채가 늘어나고 있다. 현재 가계부채는 위험수준에 있지 않지만 가계부채 증가가 지속될 경우 한국경제의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올해 상반기에 각 가정이 은행에 내는 이자만 12조3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에 반해 저축성예금 금리는 사상 최저를 기록하며 실질금리가 제로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저축성예금 평균 금리는 전년의 5.67%에 비해 2.48%포인트 떨어진 3.19%로 주저앉음으로써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히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금리는 사실상 제로 수준이어서 예금이자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적잖은 타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 소득은 줄고 빚이 늘자 서민들의 생활상도 크게 변화되고 있다. 지난해에 쏟아진 각종 통계를 분석하면 주말이나 휴일 여가활동으로는 저렴한 비용으로 손쉽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선호됐다. TV 및 비디오 시청이 30.1%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컴퓨터 게임이나 인터넷 검색(12.5%)이 뒤를 이었다. 여행은 4.9%에 그쳤다. 그러나 앞으로 하고 싶은 여가활동으로 여행(47%)을 가장 많이 꼽았고, TV 및 비디오 시청을 하고 싶다는 응답은 2.7%에 그쳤다.
경기 침체로 저소득층이 교육비 지출을 바짝 동여매면서 지난해 소득 수준에 따른 사교육비 지출 격차가 가장 많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에 따르면 가계의 실질 교육비 지출액은 외환 위기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 특히 저소득층의 교육비 감소가 두드러져 소득 5분위를 1분위로 나눈 배율이 7.8배로, 관련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2003년 이래 가장 컸다. "교육 수준이 미래 소득의 원천이 될 수 있는 만큼 교육비 지출 격차가 커질수록 빈부 차이가 대물림돼 양극화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나오는 이유이다.
김명록 연구원은 "외환 위기 이후 우리 가계는 양극화의 지속이라는 일정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면서 "미국의 경우에서 보듯이 경기가 좋을 때엔 전 국민의 소득이 함께 오르지만 경기가 어려워지면 양극화가 더욱 심해진다"고 지적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경제개혁연구소가 내놓은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보고서'에서도 잘 나타난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만19세 이상 남녀 700명에게 물은 결과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와 저금리정책으로 가장 혜택을 받은 계층은?'이라는 설문에 응답자의 69.1%가 '고소득층'이라고 답했다. 이는 같은 조사에서 '직접 느껴지는 경기'에 대해 서울의 50세 이상 고소득층이 주로 '호전됐다'(28.3%)고 응답한 결과와 상응한다.
<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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