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뉴스) 김현준 특파원 = 미국 달러화의 기축통화로서의 지위가 갈수록 흔들리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달러 부족 사태 속에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달러화 중심의 금융시스템에 의문이 제기되고 중국은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육성하기로 하는 등 그렇지 않아도 달러화의 위상은 비틀거려왔다.
이런 가운데 중동 산유국과 중국, 러시아 등이 석유거래에서 달러를 배제하는 방안을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와 달러화를 흔드는 분위기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지는 6일 아랍과 중국 금융권 소식통을 인용해, 걸프 국가들이 중국, 러시아, 일본, 프랑스 등과 함께 석유거래에서 달러 대신 사용할 '통화 바스켓'을 구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미 관련국가의 고위 관리들이 비밀 회의를 가졌다고 보도했다.
새 통화 바스켓에는 일본 엔, 중국 위안, 유로, 금을 비롯해 사우디 아라비아 등
걸프협력협의회(GCC) 소속 국가들이 계획하고 있는 단일 통화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에 대해 사우디아라이비아와 쿠웨이트 등 중동 국가들과 러시아 등은 달러화 사용 중단을 논의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이날 금융시장에서 이런 보도가 현실화될 경우 달러화의 추락이 더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 속에 달러화 가치는 떨어지고, 석유거래에서 새 통화가 설정되기 전의 과도기인 2018년까지 '금'이 결제수단이 될 것이 유력하다는 소식에 금값이 사상 최고치인 온스당 1천40달러까지 치솟는 등 시장이 요동을 쳤다.
각국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번 보도는 갈수록 흔들리는 달러화의 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달러 유동성 부족 사태를 겪은 세계 각국에서는 달러화 기축 통화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따라 1944년 구축된 브레턴우즈 체제 이후 유지돼 온 달러화 기축통화 체제가 바뀔 것인지에 관심이 모아져 왔다.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도 작년 10월 말 모스크바에서 만나 현재의 달러화 중심의 기축통화 체제에 반기를 들고 국제통화의 다양화를 주장했고 이후에도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등 각국 정상과 국제기구 수장들이 달러화 지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발언을 잇따라 내놓았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는 지난달 말 "신흥국의 영향력이 계속 늘어나는 가운데 국제경제 질서에 또 다른 변화가 올 것"이라면서 "미국이 달러의 기축통화 위상을 당연시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물론 G20(주요 20개국) 회의 등에서 달러 기축통화 체제에 변화를 가져올 만한 실질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미국도 달러화 기축 통화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지난달 G20 정상회담이 열린 피츠버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달러가 계속 기축통화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재정적자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 올해 1조6천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미국이 달러화 가치를 지켜내기는 갈수록 힘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금융권 구제와 경기부양책 등을 위한 돈을 빚을 내 조달하고 있는 미국 정부가 강한 달러를 유지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날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화는 유로화와 엔화 등 주요 통화에 대해 가치가 떨어져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 인덱스는 이날 76.201로 작년 9월말 이후 13개월만의 최저치에 근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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