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주식시장은 상승과 하락을 반복한다. 1980년대 이후 한국 증시는 이번 상승장을 포함해 모두 9차례 강세장을 경험했다. 그러나 어떤 강세장도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지난해 4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현재의 상승 흐름 역시 언젠가는 막을 내릴 것이다. 물론 강세장의 정점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고점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징후를 읽고 대응하는 일이다. 과거 시장이 상승 국면에서 하락 사이클로 전환될 때는 어떤 신호들이 나타났을까. 1980년대 이후 한국 증시의 주요 전환점을 되짚어보고, 그 속에서 향후 시장 대응을 위한 시사점을 찾아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8차례 강세장 뒤 어김없는 하락장
과거 8차례 강세장의 평균 상승률은 225%, 평균 상승 기간은 26개월이었다. 현재 진행 중인 강세장은 2025년 4월 시작돼 지난달 고점까지 297% 상승했다. 상승 기간은 16개월이었다. 과거 강세장의 평균 지속 기간보다 훨씬 짧은 기간 동안 더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이번 강세장의 가장 큰 특징은 '속도'라고 볼 수 있다.
강세장 이후 나타났던 8차례 약세장의 평균 하락률은 49%, 평균 지속 기간은 20개월이었다. 특히 직전 강세장의 상승 폭이 컸던 1차, 3차, 5차 강세장 이후에 뒤따른 약세장의 조정 폭 역시 상대적으로 컸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증시 격언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과거 평균을 뛰어넘는 강한 상승세를 경험한 현재 시장 역시 향후 사이클 변화가 나타날 경우 조정 강도가 높아질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과거 강세장이 약세장으로 전환될 때 가장 높은 빈도로 나타났던 신호는 '경상수지 악화'였다. 8차례 약세장 가운데 7차례에서 경상수지 흑자 축소 또는 적자 반전이 확인됐다. 경상수지 악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주식시장에 부담이 된다. 첫째, 반도체를 비롯한 한국의 주력 수출 산업 경기가 정점을 지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수출기업의 이익 둔화 가능성이 주가에 반영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둘째, 주변부 통화국인 한국 입장에서 경상수지 악화는 외화 유동성에 대한 우려로 이어질 수 있다. 과거 한국 증시의 큰 하락 국면에서 외환 여건 악화가 중요한 변수였던 이유다.
현재 상황은 과거와 다르다. 한국은 2014년 3분기 이후 대외자산이 대외부채보다 많은 대외순채권국으로 전환됐고, 이를 반영해 경상수지 흑자 기조 역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과거와 같은 외화 유동성 위기가 재현될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된다. 다만 반도체 경기에 대한 점검은 필요하다. 만약 반도체 사이클이 정점을 통과하고 수출 증가세가 둔화한다면, 전체 경제 위기로 확대될 가능성은 낮더라도 그동안 상승을 주도했던 반도체 관련주에 대한 조정 압력은 커질 수 있다. 물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반도체 대표 두 종목이 전체 코스피 시가총액의 55%를 넘어서고 있기 때문에 반도체 업황 둔화는 코스피의 전반적인 레벨을 낮출 것이다.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신호는 개인 자금의 대규모 유입이다. 국내 가계 자금이 본격적으로 주식시장에 들어오는 현상은 과거 강세장의 8~9부 능선에서 자주 관찰됐다. 실제 8차례 약세장 전환 사례 가운데 6차례가 개인 투자 자금의 대규모 유입 이후 나타났다. 강세장이 상당 기간 진행되면 상승장에서 소외됐던 투자자들이 뒤늦게 시장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상승에 대한 확신이 커지고 위험에 대한 경계심은 낮아지는 시기가 오히려 사이클 후반부였던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도 주식시장으로의 머니무브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2025년 한 해 동안 주식시장으로 유입된 가계 자금 규모는 14조3000억원 수준이었지만, 올해 들어서는 7월초까지 143조원이 순유입됐다. 아직까지는 강한 자금 유입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유동성 측면의 상승 동력은 유지되고 있다. 다만 향후 가계 자금 유입 강도가 약해지는 시점은 중요한 변화의 신호가 될 수 있다.

밸류에이션은 뚜렷한 지표 못 돼
세 번째 변수는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미국 장기 금리다. 과거 8차례 약세장 전환 과정 중 5차례에서 글로벌 물가 상승과 미국 장기 금리 상승이 동반됐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인플레이션 압력과 미국 금리 상승이 예외 없이 주식시장 조정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 최근 미국과 이란 간 지정학적 긴장이 완화되면서 국제유가가 안정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다시 상승세를 보이며 5% 수준에 근접한다면 위험자산 전반에 대한 경계심을 높일 필요가 있다. 한편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과 시장금리 움직임은 코스피와의 상관성이 낮았다. 한국 주가에 영향을 주는 변수는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금리와 통화정책이었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점은 주식시장의 밸류에이션 자체가 약세장 전환을 예측하는 데는 뚜렷한 신호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과거 8차례 약세장 중 주식시장이 명백한 고평가 상태에서 하락으로 전환된 사례는 4차례에 그쳤다. 절반의 확률에 불과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나타났던 5차례의 약세장 가운데 4차례는 시장이 고평가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시작됐다. 싸다고 해서 하락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최근 주가 조정으로 코스피의 12개월 예상 PER은 6.7배 수준까지 낮아졌다. 절대적인 밸류에이션만 보면 저평가 국면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은 낮은 밸류에이션만으로 약세장 진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국 시장 사이클의 변화는 하나의 지표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현재는 경상수지와 유동성 측면에서는 과거 약세장 진입 국면과 차이가 있다. 그러나 반도체 사이클, 개인 자금 흐름, 미국 장기 금리 변화는 앞으로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할 변수다. 강세장의 끝을 맞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시장이 보내는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역사는 100% 복제돼 반복되지는 않지만, 투자자들이 경계해야 할 신호들은 늘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나곤 했다.

Copyright © 시사저널.
| “2·3X도 안무섭다”…국장·미장 안가리는 개미 (0) | 2026.07.15 |
|---|---|
| 팔만큼 팔았다?…10주 내리 팔던 국민연금, 삼전닉스 '줍줍' (0) | 2026.07.13 |
| 증권주, 실적보다 더딘 주가…밸류에이션 재평가 주목 (0) | 2026.07.11 |
| 반도체 투심 회복에 미국발 훈풍까지…코스피, 7500선 탈환 (0) | 2026.07.10 |
| 환시 덮친 외국인 주식 매도 폭풍…"1,560원은 선방한 수준" (0) | 2026.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