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주식 광풍의 시대, 증권사 직원에게 들은 '의외의 조언'

◆경제지혜·미래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26. 1. 28. 11:07

본문

주식 광풍의 시대, 증권사 직원에게 들은 '의외의 조언'

이점록2026. 1. 28. 10:27
 
 
수익률 대신 '안녕'을 택한 60대 퇴직자의 선택

[이점록 기자]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 서울사옥에서 ‘코스피 5000p(종가 기준) 돌파’를 축하하며 직원들이 축하행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잘 지냈어?"라는 이 다정한 안부가 밀려난 요즘이다. 대신 이런 질문이 날아온다.
 

"그 종목 올랐어?"

 

인사는 사라지고 확인만 남았다.

 

수익률이 관계의 첫 문장이 된 시대다. 서점 매대는 '주식 초보 탈출법' 같은 책들로 가득하고, 유튜브 알고리즘은 '지금 안 사면 늦습니다'를 속삭인다. 이쯤 되면 주식은 투자 수단을 넘어 하나의 교양 과목처럼 보인다. 모르면 뒤처지는 사람, 안 하면 답답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그 한가운데서 나는 묘한 소외감을 느낀다. 평생 주식을 단 한 주도 사본 적 없는, 말 그대로 '주식 문외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온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나만의 자리를 꿋꿋이 지켜왔을 뿐이다. 그 선택이 과연 옳았는지 스스로 확인해 보고 싶어 미뤄두었던 숙제를 하듯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첫 행선지는 은행이었다. 나는 서울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스물아홉 살에 첫 월급 통장을 만들었다. 가입 날짜는 1989년 12월 20일. 그 통장은 어느덧 연금 계좌로 이어져 37년의 세월을 품고 있다. 요즘처럼 소수점 아래 금리 차이에도 민감하게 움직이는 '체리피커'들이 보면 "영양가 없는 충성도"라며 혀를 찰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숫자가 요동치는 화면 대신 매달 묵묵히 찍히던 잔고가 내 가족의 울타리가 되어주었음을. 급등은 없었지만 급락도 없었다. 그 고지식함이야말로 내가 살아온 방식이었고, 성실함의 다른 이름이었다.

 

아내와 나란히 적금을 개설하고 나니 마음이 묘하게 든든해졌다. 이제 정말 마지막 숙제를 하러 갈 차례였다. 생전 처음으로 증권사 문을 밀었다.

 

증권사에서 들은 뜻밖의 한마디

 

돈은 야누스처럼 두 개의 얼굴을 가졌다. 삶의 필수 재화로서 돈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부족하면 불행해질 가능성은 분명히 커진다. 퇴직 후 마주한 이 두 얼굴 앞에서 나는 잠시 망설였다. 연금만으로 충분할까, 아니면 남들처럼 숫자의 파도에 올라타야 할까.

 

"60대 중반 퇴직자입니다. 연금은 받고 있고요."

 

변명처럼 꺼낸 말에, 증권사 직원은 차트를 띄우는 대신 담백한 조언을 건넸다.

 

"선생님, 주식은 여유 자금으로 긴 호흡을 가지고 하셔야 합니다. 무엇보다 성격이 좀 '무덤덤'한 분들이 잘 맞으시죠."

 

의외의 말이었다. 상품 설명보다 먼저 나온 것은 '수익률'이 아니라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한마디가 묘하게 오래 남았다. 투자 성향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어떤 삶이 어울리는지를 묻는 질문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순간 이런 질문 하나가 머릿속을 스쳤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래프를 들여다보며 기분을 지수에 맡기는 삶이 과연 지금의 나에게 어울릴까.

 

수익보다 안녕을 택하다

 

결국 나는 주식 계좌를 열지 않았다. 대신 가벼운 마음으로 증권사를 나섰다. 누군가는 인플레이션도 못 이기는 '마이너스 재테크'라 비웃을지 모른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평생 기회를 놓친다며 겁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밤, 나는 주가 하락을 걱정하며 잠을 설칠 일이 없다. '시간이 아깝고,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고, 원금을 잃고 싶지 않다'는 말들은 핑계가 아니다. 지금의 나를 가장 정확히 설명하는 문장이다.

 

은행이 나에게 '시간'을 보여주었다면, 증권사는 '태도'를 묻는 곳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방식의 답을 선택했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다만 '나에게 맞는 답'이 있을 뿐이다. 37년 전, 첫 월급을 쪼개 적금을 붓던 그 마음으로 나는 여전히 느리지만 단단한 호흡을 선택한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내 속도를 지켜낸 대가는 뜻밖에도 크다. 바로 '무덤덤한 평화'다.

 

오늘 저녁, 아내와 마주 앉아 보글보글 끓는 찌개를 마주할 것이다. 수익률 이야기는 없어도 좋다. 이 조용한 식탁 위에 놓인 안심과 평온이면 충분하다. 나의 인생은 여전히 '수익'보다 '안녕'에 가깝다. 주식 광풍의 시대에, 나는 그 사실이 꽤 마음에 든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