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석 기자]
| ▲ 광주광역시청. |
| ⓒ 광주광역시 |
이 흐름은 광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지방 도시 전반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은 '인구 감소'가 아니라 '정주 기반 붕괴'다. 일자리는 남아 있어도, 이곳에 살아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판단이 내려지는 순간 도시는 비어 간다.
산업과 행정 기능을 옮긴다고 도시가 살아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이 머물기 위해서는 일자리뿐 아니라, 이곳에 살아도 자산을 형성할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이는 결코 투기를 통해 벼락부자가 되겠다는 욕망이 아니다. 성실히 일해서 번 월급과 내 집 한 채로 노후를 대비할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중산층의 희망이 지방에서는 불가능해진 현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이미 혁신도시 정책을 통해 충분히 경험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또다시 '5극 3특'이라는 국가 재편 구상을 꺼내 들었다. 전국을 5대 초광역권과 3개 특별자치도로 나누겠다는 구상 자체는 의미가 있다. 문제는 이번에는 정말 달라졌는가다.
지방 살린다던 규제, 오히려 지방 돈 빨아들여 서울 '똘똘한 한 채'로
그동안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일관되게 '서울', 그중에서도 '강남 집값 안정'을 중심에 두고 설계돼 왔다. 전국을 하나의 시장으로 보고 동일한 규제를 적용한 결과, 지방은 정책의 수혜자가 아니라 부작용의 부담자가 됐다.
이근영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발표한 '지역간 주택경기 양극화 현상 분석'(경제학연구, 2025)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다주택자 규제가 강화되던 시기 수도권 주택 가격은 상승했지만, 비수도권 주택 가격은 하락했다. 규제는 격차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확대했다. 투기를 잡겠다던 정책이 지방의 자본을 서울의 '똘똘한 한 채'로 밀어 올린 셈이다.
그 결과 지방 부동산은 투자 대상에서 배제됐고, 실수요마저 움츠러들었다. 지방을 살리겠다던 정책이 지방의 경제 기반부터 무너뜨리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기업이 떠난 자리는 청년의 빈자리다
부동산 시장의 붕괴는 곧 산업 이탈로 이어진다. 산업 이탈은 다시 인구 유출을 가속한다. 지난 2025년 12월 26일 KB국민은행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에 따르면, 광주 아파트 매매가격은 그 전주 대비 0.08% 하락했는데, 이는 전국 시도 가운데 가장 높은 하락률이었다. 미분양 주택 수가 과거에 비해 늘어난 것도 문제다.
사업성이 악화되자 대형 건설사들은 발을 뺐다. 포스코이앤씨에 이어 대우건설이 광주 챔피언스시티 시공권을 포기했다. 이는 개별 기업의 판단을 넘어, 도시의 미래에 대한 시장의 평가다. 호반·우미에 이어 중흥건설마저 핵심 기능을 서울로 옮겼다. 기업이 떠나는 도시에서 청년이 머물 이유는 없다. 지금의 탈광주 현상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정책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다.
혁신도시는 왜 정착하지 못했는가
대한민국은 이미 균형발전이라는 거대한 실험을 한 차례 치렀다. 혁신도시 정책이다. 공공기관을 이전하고 산업을 분산했지만, 다수의 혁신도시는 자족도시로 뿌리내리지 못했다.
이유는 분명하다. 일자리는 옮겼지만, 그곳에서 사는 사람이 자산을 축적할 수 있는 구조는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기 수요를 겨냥한 주택 공급은 인구 유입이 멈추자 곧바로 가격 하락과 미분양으로 되돌아왔다. 실수요자는 자산 가치 하락을 우려해 떠났고, 투자 수요는 서울 기준의 규제와 세금 앞에서 사라졌다. 그 결과 혁신도시는 주말이면 텅 비는 출퇴근 도시, 공무원만 잠시 머무는 관사형 도시로 남았다. 산업만 떼어 놓는 균형발전은 실패였다.
산업은 지방으로 가라면서, 왜 대출과 세금은 서울 기준인가
정부는 수도권 1극 체제의 한계를 인정하고 '5극 3특'을 제시했다. 방향은 옳다. 그러나 결정적인 질문이 남는다. 산업과 행정은 다극화를 말하면서, 왜 대출·세제·규제 같은 부동산 정책은 여전히 수도권 1극 기준을 유지하는가.
사람이 머물기 위해서는 일자리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곳에 살아도 자산이 안전하게 유지되고 성장할 수 있다는 신호가 필요하다. 부동산 정책이 이를 뒷받침하지 않는다면 '5극 3특'은 또 하나의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 정책 전환 없이는 균형발전도 없다
이제 필요한 것은 미세 조정이 아니라 구조의 대전환이다.
첫째, '5극 3특' 거점 도시에 실질적인 규제 자율권을 부여해야 한다. 취득세·양도세 완화, LTV·DTI 등 금융 규제 완화를 통해 청년과 실수요자의 진입 장벽을 낮춰야 한다. 기업 유치에 파격을 주듯, 사람을 모으는 데도 같은 결단이 필요하다.
둘째, 과세 기준을 주택 수가 아니라 주택 가액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방의 저가 주택 여러 채가 서울의 고가 주택 한 채보다 더 무거운 세금을 부담하는 구조는 명백히 비합리적이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지방 정착은 어렵다.
광주의 140만 붕괴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는 혁신도시 실패 이후에도 반복돼 온 국가 균형발전 전략의 한계를 알리는 경고다. 현장에서 지방 도시의 흥망을 지켜보며 얻은 결론은 분명하다. 산업만 옮기고 사람이 머물 수 있는 부동산 정책을 외면한다면, '5극 3특' 역시 이름만 바뀐 또 하나의 실패로 기록될 것이다.
지방 소멸은 자연 현상이 아니다. 정책의 결과다. 이제 정부는 선택해야 한다. 실패의 구조를 고칠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실패를 반복할 것인가. 지방에 사는 것이 경제적 형벌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균형발전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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