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방위 상호관세 부과 발표 직후 글로벌 생산전략 변경을 검토하며 대응전략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1990년대 중반 중국을 시작으로 베트남, 태국, 인도 등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아시아 지역에 앞다퉈 생산기지를 건설한 우리 기업들은 이번 미국발 상호관세 폭탄에 직격탄을 맞은 상황이다. 당장은 미국에 완제품을 수출하는 기업들이 표적이 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시간이 갈수록 부품 업체들도 완제품 가격 상승 및 수요 감소에 따른 직간접적인 영향권에 들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가전 기업들은 일단 대미 수출의 전진기지가 있는 멕시코가 이번 상호 관세 대상에서 빠지면서 한숨 돌렸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34%)을 비롯해 베트남(46%), 태국(36%), 인도(26%) 등에 상대적으로 높은 관세율을 매겼다. 모두 우리 기업들의 주요 생산거점이 위치한 국가들이다.
중국의 경우 삼성전자가 쑤저우에 가전공장을 두고 있다. LG전자는 난징과 톈진 등에서 가전을 비롯해 모니터와 노트북, 자동차 부품 등을 생산하며 청도에서는 냉난방공조 사업의 핵심 제품군인 칠러를 만들고 있다. 모니터, 노트북 등 일부 제품들을 미국으로 수출한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일단 멕시코에 있는 가전공장으로 일부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멕시코 케레타로 공장에서 냉장고와 세탁기 등을 생산해 미주 지역에 공급한다. 멕시코 티후아나에는 TV 생산공장을 두고 있다. LG전자 역시 멕시코 레이노사(TV), 몬테레이(냉장고), 라모스(전장) 등 3곳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다만 멕시코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줄곧 관세부과 대상으로 꾸준히 언급해왔던 만큼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가별 관세율이 다르게 책정되는 만큼 생산지 운영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계는 중국보다 상호관세 부과에 따른 타격이 큰 곳으로 베트남을 꼽는다. 우리 기업들이 생산비용이 높은 중국에서 벗어나 최근 베트남에 대거 생산기지를 구축해왔기 때문이다. 이번에 중국보다 높은 46%의 상호관세가 부과된 만큼 베트남에서도 점차 탈출구를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삼성전자의 경우 전체 갤럭시 스마트폰 생산량의 절반을 베트남 타이응우옌 공장과 박닌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46% 관세를 안고 미국으로 수출할 경우 가격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전자부품 기업인 삼성전기와 LG이노텍도 베트남에서 각각 고성능 반도체 기판 FC-BGA와 카메라 모듈을 생산한다. 미국으로 직접 수출하기보다 주로 완제품 제조사에 공급하기 때문에 당장은 관세부과에 따른 타격을 피할 수 있지만 잠재적으로 수요 감소와 판가 인하 압력을 받을 수 있어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도 작년 9월 베트남에 18억달러(약 2조4000억원)를 투자해 8.6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공장을 짓기로 하며 핵심 생산거점으로 육성해 왔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전자부품사들은 미국 내에서 완제품 가격 상승과 수요 감소 영향의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고객사들이 고통분담 차원에서 부품 판매가격을 인하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효성그룹도 이번 미국의 대(對)아시아 관세 강화 조치로 그룹 전반에 영향이 미칠 가능성이 커졌다. 2022년 기준 효성이 베트남에 투자한 금액은 총 39억달러에 달하며, 섬유·화학·중공업 부문에서 현지 생산라인을 운영 중이다. 베트남에 생산기지를 둔 한 기업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 관세율 인하 관련 협상 소식을 언급한 만큼 일단 베트남 정부 차원의 대응에 기대를 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최근 중국, 베트남의 뒤를 이어 새로운 생산거점으로 떠오른 인도에 주목하고 있다. 인도에는 삼성전자, LG전자가 모두 가전 공장을 구축하고 현지 시장에 대응하고 있다.
인도에 진출한 기업 관계자는 “그나마 인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26%의 상호관세가 부과된 만큼 향후 기업들이 도피처로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도 “물류비나 현지 자재조달 과정을 감안할 때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하던 대미 수출물량을 인도로 선뜻 가져오는 것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불황에 시름 중인 석유화학 업계도 관세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케미칼과 LG화학은 각각 미국 내 생산시설을 보유하고 있지만, 현지 공장 가동률이 높아 대체 생산 여력이 크지 않다. 특히 롯데케미칼은 미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품목이 에틸렌(EL)과 모노에틸렌글리콜(MEG) 두 가지에 불과해, 추가 관세의 충격을 상쇄하기엔 한계가 있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미국으로 직접 수출하는 물량이 많지는 않지만, 내부적으로 관세 영향이 어떻게 미칠지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일·고은결·박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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