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오벌오피스(집무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그가 쏟아낸 다양한 정책 중 세계 각국 언론이 가장 주목하는 건 ‘상호관세 부과’예요. 수입품에 매기는 세금인 관세를 서로 공정하게 부과하자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관세율을 높이겠다’고 다른 국가들에 엄포를 놓아 미국에 더 유리한 무역 질서를 확립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어요. 기존보다 관세율이 높아지면, 경제 규모가 큰 미국에 수출을 해서 먹고사는 많은 나라들이 어려움을 겪게 될 테니까요.
예를 들어 미국에서 수입하는 식품에 관세는 부과하지 않더라도 국내 식품과 다르게 까다로운 검사들을 거치도록 정해뒀다면, 일종의 비관세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어요. 미국 기업 입장에선 관세가 없음에도 꽤 수출이 까다롭다고 느끼겠죠.
우리나라 영화관에서 한국 영화를 1년에 일정 기간 이상 의무적으로 상영하도록 한 ‘스크린쿼터제’ 역시 비관세 장벽의 사례예요. 한국 영화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지만, 미국이 보기엔 한국의 할리우드 영화 수입을 줄이는 규제인 거예요.
미국 거대 정보기술(IT) 기업에 대한 규제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자주 거론하는 대표적 비관세 장벽이에요. 구글·애플 등 ‘빅테크’로 불리는 미국 기업들이 다른 나라에서 편하게 장사할 수 없게 만든다는 거죠. 그리고 빅테크의 독과점을 견제하는 움직임은 유럽연합(EU)이 주도해 왔어요.
유럽연합 깃발이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유럽연합 본부에 걸려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디지털시장법 제정 당시 해외 언론은 ‘역사적인 법이 탄생했다’고 평가했을 정도로 상징성이 컸어요. 법을 위반하면, 해당 기업이 전 세계에서 올린 연간 매출액의 최대 10%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하거든요. 애플이나 구글 같은 기업은 수십조 원에 달하는 벌금을 내게 될 수 있는 거죠. 심지어 상습적인 반복 위반이 확인될 경우 매출의 20%까지 부과할 수 있는 내용도 법에 포함됐어요. EU의 디지털시장법 제정 후 세계 각국에선 빅테크 규제 움직임이 늘어났어요. 한국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플랫폼법 제정 논의가 이뤄졌고요.
디지털시장법의 규제를 받는 기업으로 정해진 건 기업 가치와 매출·사용자 규모를 기준으로 7개 회사예요.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 아마존, 애플,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 바이트댄스(틱톡), 부킹닷컴이죠. 아무래도 미국에 거대 IT 기업이 많은 탓에 바이트댄스와 부킹닷컴을 제외한 5개 회사가 미국 기업이에요.
구글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
또한 EU는 앱스토어인 구글 플레이에선 이용자들에게 앱 내부에서 제공하는 결제 수단 외에 대체 결제 수단을 안내할 수 없게 제한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어요. 디그에서도 여러 번 소개했던 인앱결제와 관련된 내용이에요. 물론 구글 측은 “EU의 발표는 유럽 내 기업과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고 혁신을 방해하며, 보안을 약화하고 제품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비판했어요.
공식 조상 대상은 아니지만, EU는 이날 애플에도 ‘아이폰과 아이패드 같은 애플 기기가 다른 브랜드 기기와 호환될 수 있도록 보완하라’고 요구했어요. EU 측은 이렇게 기기들의 호환성을 높일 경우 개발자들에게 더 개방적인 환경이 제공될 것이고, 유럽 소비자에겐 더 많은 선택권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혁신적 제품이나 서비스 출시도 촉진할 것으로 봤어요. 애플 측은 “불필요한 규제를 늘려 유럽에서 애플의 혁신을 저해하고, 애플의 새로운 기능을 무료로 제공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반박했어요.
앞서 언급했듯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기업에 불리한 비관세 장벽을 제거하라고 강조해 왔어요. 심지어 지난달엔 “EU의 규제 정책이 미국 기술 기업을 부당하게 겨냥하고 있다”고 직접 EU의 디지털시장법을 비판한 적도 있죠. 하지만 EU는 이에 굴하지 않고 구글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한 거고요.
EU의 발표는 미국 정부의 압박에도 빅테크 규제를 이어 나가겠다는 신호로 풀이돼요. 유럽 내 디지털 산업 생태계 보호를 위해 미국 기업을 규제하겠다는 거예요. 미국이 이런 비관세 장벽에 대한 보복으로 관세를 더 부과할 수 있다고 압박했는데도, 정면으로 대응한 셈이에요.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각국의 관세율과 비관세 장벽을 종합적으로 감안한 ‘상호 관세’를 4월 2일에 발표하겠다고 예고했어요. 이번 발표로 미국과 EU 사이의 갈등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인데요. 강대국 간에 양보 없이 벌어지는 이 신경전의 끝은 과연 어떨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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