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외자판호는 다르다.”
지난해 12월 중국이 한국 게임 7개에 외자판호(해외 게임의 중국 내 서비스 허가권)를 무더기로 내주자 한 증권사는 곧바로 이같은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핵심은 중국이 지난 6년간의 기나긴 ‘한한령’을 드디어 끝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증권사들 역시 비슷한 의견을 줄줄이 내놨으나 시장과 업계는 반신반의했습니다. 중국이 워낙 오랜 기간 빗장을 걸어 잠갔던 만큼 이번 판호 발급이 예외적인 사례에 그칠 수도 있다는 노파심이 컸던 것이죠.
약 3달이 흐른 현재 시장은 낙관론 쪽으로 기운 상황입니다. 지난 20일 중국이 또다시 한국 게임 5종에 판호를 발급했기 때문입니다. 연이은 희소식에 힘입어 주가 역시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네이버·카카오와 함께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던 만큼 게임주 입장에선 특히나 뜻깊을 수 밖에 없는데요. 다만 아직 본게임은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현지 출시 이후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이기 때문이죠. 이번주 선데이 머니카페에서는 중국 판호 재개로 게임주가 진정 재기할 수 있을지를 진단해 보겠습니다.
데브시스터즈 ‘쿠키런: 킹덤’. 사진 제공=데브시스터즈
26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국가신문출판서는 전날 홈페이지에 27종의 외국산 게임에 외자판호를 발급했습니다. 한국 게임은 △넥슨 ‘블루아카이브’와 ‘메이플스토리H5’ △데브시스터즈(194480) ‘쿠키런: 킹덤’ △넷마블(251270) ‘일곱 개의 대죄: 빛과 어둠의 전투’ △ 티쓰리(204610)(한빛소프트(047080) 자회사) ‘클럽 오디션’ 등 총 5개가 포함됐는데요. 이 중 메이플스토리H5, 일곱 개의 대죄, 클럽 오디션은 한국 게임사가 중국 현지 개발사에 지식재산권(IP)을 빌려주고 로열티를 수취하는 구조입니다.
판호 발급 소식에 주가도 훨훨 날았습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블루아카이브 개발사 넥슨게임즈는 21일 전장보다 13.76% 오른 1만6700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데브시스터즈도 같은 날 12.87% 오른 4만 9550원에 마감했습니다. 넷마블과 한빛소프트 역시 각각 6.30%, 6.18% 상승했고, 티쓰리는 4.19% 올랐습니다.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크래프톤(259960)(2.42%), 엔씨소프트(036570)(0.80%) 등도 같은 날 상승세를 보이며 훈풍은 업계 전반으로 퍼졌습니다.
지난해 게임주가 역대급 부진한 흐름을 보인 것과는 대조됩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컴투스홀딩스 주가는 지난해 1년 동안 무려 83.68% 하락했습니다. 위메이드(-82.27%), 크래프톤(-63.48%), 컴투스(-62.33%), 넷마블(-51.68%), 웹젠(-47.23%), 넥슨게임즈(-44.78%), 엔씨소프트(NC)(-30.33%) 등도 처참한 수익률을 보였습니다. 지난해 주요 게임주 중 주가가 오른 건 네오위즈(2.35%) 뿐이었습니다. 출시 예정 콘솔게임 ‘P의 거짓’이 한국 게임 최초로 세계 3대 게임쇼 ‘게임스컴 2022’에서 3관왕을 휩쓴 덕분입니다.
연합뉴스
게임주가 지난해 하락장 속에서도 유독 눈에 띄게 부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론 외부 여건이 너무 좋지 않았던 건 사실입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대폭 인상한 데 따른 직격탄을 제대로 맞은 것이죠. 통상적으로 게임주를 비롯한 성장주는 미래 실적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상승합니다. 금리가 상승할수록 미래가치에 대한 할인율이 커져 주가가 하락 압력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거리두기가 해제됨에 따라 게임 이용자의 절대적인 숫자마저 감소했습니다. 모바일 데이터 분석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지난해 모바일게임 전체 이용자 수는 2014년 이후 처음으로 연간 기준 역성장했습니다. 게임업계가 지난해부터 야심차게 출시하고 있는 ‘콘솔 게임’도 대안이 되진 못했습니다. 지난해 12월 출시한 크래프톤의 야심작 ‘칼리스토 프로토콜’은 기대 이하의 게임성으로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스마일게이트의 첫 콘솔 데뷔작이었던 ‘크로스파이어X’는 게이머들의 혹평을 받으며 1년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습니다.
이처럼 게이머 수는 줄어드는 상황에서 2021년 앞다퉈 진행했던 연봉 인상 경쟁이 부메랑으로 돌아왔습니다. 매출은 제자리걸음을 하는데 인건비만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실적이 악화된 것입니다. 실제 넷마블은 지난해 1044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10년 만에 적자전환했습니다. 인건비만 1년새 22% 불어나며 수익성 악화를 부채질했습니다. 컴투스도 2007년 상장 이래 처음으로 적자(166억 원)전환했습니다. 1년만에 적자(202억 원)로 돌아선 데브시스터즈는 앞선 1월 직원 40여명에게 당일 권고사직을 종용했다는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성장 동력이 부재한 가운데 판호 발급은 게임업계 입장에선 그야말로 ‘가뭄 속 단비’ 같은 소식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선 중국 시장은 인구 13억 명으로 규모부터가 한국 시장과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2000년대 초반 위메이드 ‘미르의 전설2’, 스마일게이트 ‘크로스파이어’, 넥슨 ‘던전앤파이터’ 등이 흥행 신화를 썼던 만큼 한국 게임의 인지도가 높은 것도 장점입니다.
업계에서는 중국의 빗장이 이제는 열렸다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중국 당국이 지난해 말부터 게임산업에 친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게 이같은 분석에 설득력을 더합니다. 중국은 2021년에만 해도 게임을 “정신적 아편”이라며 맹비난했지만 지난해 11월에는 “게임 기술은 5G, 반도체,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 산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태도를 180도 전환했습니다. 1년 넘게 판호를 내주지 않았던 텐센트·넷이즈에게도 11월부터는 5개월 연속 판호를 발급했습니다. 업계 대표 ‘중국통’인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가 “10월 공산당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중국 내 사업 환경이 안정될 것”이라고 내다본 게 현실화된 겁니다.
다만 중국이 한국에 사실상 판호를 내주지 않았던 지난 5년 동안 현지 업체들의 수준이 현저히 높아졌다는 점은 걸림돌입니다. 실제로 펄어비스의 ‘검은사막 모바일’은 지난해 4월 말 현지 출시 이후 100위권 밖으로 밀려나며 흥행에 참패했습니다. 흥행 실패 여파로 펄어비스 주가는 지난해 5월 5일 하루동안에만 24.3% 빠지기도 했습니다. 반면 중국 게임은 이미 국내에서도 주류로 떠올랐습니다. 미호요의 ‘원신’은 지난달 ‘리니지M’를 제치고 출시 2년 반 만에 최초로 국내 구글 플레이스토어 매출 1위에 등극했습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모바일 게임은 이미 중국이 한국보다 더 잘 만든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라며 “한국 게임이 지난 수 년간 P2W(Pay to Win·돈을 많이 지불할수록 강해지는 구조) 사업모델에만 천착한 결과 경쟁력이 낮아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울경제, >
삼성 “차세대 반도체로 챗GPT 속도 3.4배 올린다” (0) | 2023.03.30 |
---|---|
1분기 호실적 전망 LG전자, 14년만에 삼성電 영업익 앞지르나 (0) | 2023.03.28 |
"지금이 반도체 바닥, 오히려 좋아" 삼성전자에 모이는 기대감 (0) | 2023.03.24 |
가성비보다 가심비...폰·가전·노트북 프리미엄이 대세 (0) | 2023.03.23 |
10년간 中 반도체 생산 5% 이상 못 늘려...삼성·SK, 숨통만 트일 듯 (0) | 2023.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