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이 월급을 200만원 주면 300만원어치 일을 해서 사장을 놀래켜 버려라. 사장은 미안해서 월급을 올려줄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 있다. 이 말이 맞는지 틀렸는지 논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때와 장소와 대상에 따라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는 말이다.
그 결과는 김유정의 단편 봄봄에 나온다. 점순이의 언니는 이 수법으로 머슴 14명을 갈았고 점순이는 이번이 세번 째다. 빙장어른이 머슴 만복이에게 할 수 있는 말이다. 자식에게는 할 수 있는 말이다. 공적공간에서는 하면 안 되는 말이다. 왜인가? 그 사회 망한다.
동양이 서양에 밀린 이유다. 개겨야 하는데 개기지 않아서 망했다. 왜 이해찬 교육이 옳은가? 이해찬 교육이 시행되었다면 출산율이 증가했을 것은 백 퍼센트다. 그 외에도 저출산이 되는 이유는 많지만 큰 틀에서 그렇다. 넓은 의미로 보면 상호작용 증대가 정답이다.
단기적으로 고학력이 이기고, 입시교육이 이기고, 스파르타가 이기고, 노력이 이기고, 근면성실이 이기고, 잘 참고 성실하게 일하는 나라가 이기지만 넓은 시야로 보면 열심히 일한 중국 망하고 열심히 전쟁한 서양이 이겼다. 조선이 게을러서 가난했던 것은 아니다.
고립되어 상호작용이 감소하면 망한다. 최종적으로는 물리학이 답을 낸다. 비수술 트랜스젠더 문제는 간단하다. 선거에서 이기면 된다. 쪽수로는 안 되지만 소수자가 연대하면 된다. 당장 이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길 수 있다는 가능성만 보여줘도 커다란 성과다.
혹은 샌프란시스코로 모이면 된다. 특정 지역, 특정 직업으로 좁히면 소수가 오히려 다수가 된다. 세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변하는 것은 최종적으로 올바른 쪽이 승리하기 때문이다. 소수자가 집단의 상호작용을 증대하기 때문에 소수자를 우대하는 문화가 승리한다.
왜? 소수자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물러설 수 없는 함정에 빠뜨리곤 한다. 산속의 자연인은 과연 행복할까? 소수자가 조용히 숨어사는게 더 행복하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타고난 인간 본성이다. 인간의 투쟁심이다.
인간은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는 본능이 있다. 변희수 하사는 왜 그랬을까? 타고난 투쟁심이 있다. 인간은 원래 그런 동물이다. 투쟁심이 강한 문화가 이긴다. 잘 참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조용한 문화는 망하고 시끄럽고 살벌하고 활력이 있는 역동적인 사회가 이긴다.
무엇이 도덕적으로 옳은가? 누가 원인제공자냐? 이 논리로 가면 수렁에 빠져서 답을 찾을 수 없게 된다. 세르파에게 속은 오은선도 할 말이 있고 세르파도 할 말이 있다. 정상까지 갔으면 오은선이 죽었을 수 있다. 목숨 살려줬더니 고마운줄 모르고 세르파 탓을 하냐?
감성팔이로 가면 다 맞는 말로 여겨진다. 물리학으로 가야 한다.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내시균형이 기준을 제공한다. 인간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존재다. 이 규칙에 합의해야 한다. 물리학은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 단 고립된 지역과 단기적으로는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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