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연구소 김동렬 2023. 03. 15
문명과 야만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벽이 세워졌다. 아닌 것을 보고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 눈치를 보던 시대는 지났다. 그것은 도구의 차이다. 컴퓨터가 보급되면 컴맹에게 고개숙일 이유가 없다. 컴맹이 컴도사에게 복종해야 한다.
구조론 사람은 우리가 80억 인류의 맨 앞에 서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아는 사람은 쓰는 언어가 다르다. 그 이전에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 이전에 보는 방향이 다르다. 그것은 비가역적이고 비대칭적이다. 모르는 사람이 자력으로 올라와야 한다.
리더는 무리와 다른 곳을 바라본다. 무리는 집단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지만 리더는 집단의 중심을 찾는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 이래 인류의 사유는 개체에 매몰되어 결정론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심지어 아인슈타인조차 삽질을 반복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양자역학이 개체가 아닌 집단을 해석한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양자역학이 인간의 경험적 직관과 어긋나는게 아니라 인간이 고정관념에 잡혀 있는 것이다. 개체를 넘어 집단을 보는 사유는 열역학이 처음 시작했지만 열역학은 결과 측에 매몰된 좁은 해석이다.
같은 것을 원인 측에서 보면 게임이론이다. 게임이론은 힘의 이론이다. 힘이 있는 쪽이 이긴다. 자연이든 인간이든 의사결정은 힘의 우위가 제시하는 경로를 따라간다. 게임이론은 소박하지만 의사결정을 논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부분을 건드리는 사람이 없더라.
결과를 해설할 뿐 원인을 건드리는 사람이 없다. 경제학이 집적적인 도움을 준 증거는 없다. 결과가 나온 뒤에 해설하여 납득시킬 뿐이다. 경제학은 인간이 같은 실수를 두 번 하는 것을 막을 뿐 새로운 도구를 제공한 적은 없다. 원인측에 대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임이론과 열역학은 구조론에서 통합된다. 내시균형과 열적평형은 같은 것이다. 게임이론이 원인을 제시하고 열역학이 결과를 제시하고 구조론은 양쪽을 연결하여 경로를 제시한다. 우리가 손에 쥐어야 하는 것은 사건의 자발성이다. 우리는 그것을 핸들링할 수 있다.
문명이 야만 앞에서 큰 소리를 치지 못하는 이유는 별로 나은게 없어서다. 2차대전의 교훈이다. 문명이 야만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들켰다. 차는 가졌는데 운전기술이 없어서 일어난 사태다. 20세기 후반을 지배한 탈근대 사상은 문명이 야만 앞에 겸손하라는 말이다.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손에 총이 있기 때문이다. 차만 있는게 아니라 운전기술도 있기 때문이다. 진보가 보수에게 잔소리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을 꾸짖을 수 있는 근거가 생겼기 때문이다.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인 것은 인간들이 도무지 말을 들어먹지 않기 때문이다. 말을 듣게 만들 그 무엇이 지식인에게 없기 때문이다. 지식인이 지식이 없다는게 이 문명의 결함이다. 지식인이 하는 소리는 죄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상대방 죄를수를믿어라는 소리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과 어긋날 뿐 아니라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냥 하라고만 말할 뿐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이것을, 왜 하필 여기서, 왜 하필 내가 해야하는지를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알아서 하라고 하면 몰라서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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