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이 날고 양자역학이 뛰는 시대다. 이 시대와 결이 맞는 이론으로 열역학과 내시균형을 들 수 있다. 이들이 가장 앞서 있다. 공통적으로 개체가 아닌 집단에서 답을 찾는다. 구조론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냥 집단이 아니라 움직이는 집단을 해석한다.
존재의 엔진은 무엇인가? 무엇이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가? 애덤 스미스는 개인의 이기심을 경제의 동력으로 내세운다. 내시는 집단의 구조를 대체재로 제시한다. 열역학의 닫힌계 개념 역시 집단을 앞세우고 있다. 인류의 사유는 개체에서 집단으로 전진한 것이다.
부족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움직이는 집단을 발견해야 한다. 모르는 사람은 열역학과 내시균형을 특수한 사례로 여긴다. 다양한 이론 중에 그런 것도 있어서 구색을 맞춘다고 생각한다. 틀렸다. 구조론은 이를 일반화 한다. 우리가 찾아야 할 진실은 보편적 원리다.
존재의 궁극적인 엔진은 밸런스 복원력 곧 동적균형 dynamic balance다. 움직이는 것은 충돌을 피하는 경로를 선택한다. 그것은 균형에 도달할 때까지 진행된다. 충돌을 피하면 결과적으로 간격이 떨어져서 띄엄띄엄 존재하게 되는 것이 열역학의 엔트로피 증가다.
물고기는 피쉬볼을 이루고, 새는 세떼를 이루고, 메뚜기는 메뚜기떼를 이룬다. 나그네쥐와 스프링벅도 대집단을 이루고 일제히 한 방향으로 달려간다. 속도를 유지하며 충돌을 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죄수의 딜레마도 구조가 같다. 움직이는 둘이 한 사건에 엮였다.
두 죄수는 어떻게 움직일까? 둘 다 범행을 부인하고 무죄로 석방되는 것이 최선이지만 그것은 자기 통제하에 있지 않다. 자신의 카드를 써서 의사결정하면 최악을 피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죄수가 자신에게 주어진 카드를 써서 가능한 결정을 하는게 내시균형이다.
열역학의 통계적 접근은 귀납적이고 결과론이다. 존재의 엔진은 연역적이고 원인론이다. 무질서도 증가가 결과론이라면 질서도 우위는 원인론이다. 죄수는 내 손에 하나의 카드를 쥔 상태다. 최악에 비해서는 힘의 우위 상태다. 카드를 행사하는 경로를 선택한다.
인간에게 어떤 카드를 주면 곧 그것을 행사한다. 다른 경로는 막혔고 그것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의 판단이나 도덕적 가치 고려는 나중에 평가받을 부분이고 당장은 지푸라기를 잡는다. 지푸라기에 대해서는 자신이 확실히 힘의 우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뜨거운 것은 차가운 것보다 질서도의 우위에 있다. 엔트로피다. 열은 뜨거운 것에서 차가운 것으로 이동한다. 갈 수 있는 길로 간다. 다른 코스는 봉쇄되어 있다. 늑대에 쫓기는 사슴은 직진을 선택한다. 다급하게 쫓기는 사슴 입장에서 유일하게 선택 가능한 카드다.
죄수의 다른 결정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당하는 것이다. 인간은 똥이든 된장이든 자신이 그것을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을 선택한다. 오늘날 정치판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이유다. 안철수의 모든 선택은 똥이지만 그것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몰려 있었던 거다.
인간은 그저 할 수 있으니까 그것을 한다. 내시균형이 있듯이 김동렬경로가 있다. 궁극적으로는 물리학이다. 선택할 수 있는 경로는 하나 뿐이며 다른 모든 경로는 봉쇄되어 있어서 그쪽으로 떠밀린 것이다. 어디로든 가는데 저쪽이 막혀서 이쪽으로 가는 것이다.
구조론은 모든 것의 이론이다. 모든 것은 구조로 설명되어야 한다. 인류는 지금까지 구조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설명해 왔는가? 설명하지 않았다. 인간은 진지하게 묻지도 않고 답하지도 않는다.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문화든 모두 구조가 그래서 그렇게 된 것이다.
모든 사건의 모든 원인은 궁극적으로 구조다. 사람들은 A가 어떻게 해서 B가 어떻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2차적인 진행의 상대적 원인이지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원인이 아니다. A가 움직였다면 이미 사건이 상당히 진행된 것이다. 총성이 울리면 선수가 달린다.
외계인이 멀리서 보고 한 넘이 뛰니까 우르르 뛰는구나 하고 착각한다. 우사인 볼트가 앞에서 달려가니 죄다 쫓아가네. 틀린 생각이다. 그 이전에 그들이 출발선에 모여 있었다는 점을 외계인은 무시한다. 한 공간을 두 명이 점유한 모순된 상황이 진정한 원인이다.
우주 안의 모든 사건의 모든 원인은 죄수의 딜레마처럼 이해가 충돌하는 모순상황이다. 트로피는 하나인데 경쟁자는 둘이다. 상대와 운명이 엮여 있는 그것이 구조다. 의사결정구조는 움직이는 어떤 둘의 모순이고, 충돌이고, 딜레마 상황이며 밸런스에 의해 멈춘다.
닭들이 싸우는 이유는 닭장이 비좁아서 스트레스받기 때문이라고 보는게 구조론이다. 보통은 심술궂은 닭이 먼저 쪼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쪼는 닭을 제거하면 다른 닭이 쪼는 닭이 된다. 개미떼 중에서 노는 개미를 제거해도 같은 비율로 노는 개미는 생긴다.
전쟁은 단지 히틀러 한 사람의 야욕 때문에 일어난 것일까? 개체의 속성에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는 모두 잘못된 생각이다. 애덤 스미스가 말한 개인의 이기심은 원자론과 같이 개체의 속성을 탓하는 관점이다. 그것은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구조로 설명하지 않은 것은 설명한 것이 아니다. 우주 안의 모든 사건의 모든 구조는 동일하다. 답은 동적균형이다. 움직이는 것은 균형에 도달하여 교착되어 막힐때까지 움직인다. 근본적인 세계관을 갈아타야 한다. 뭐든 잘게 쪼개기만 해도 제법 답을 찾을 수 있다.
자동차는 분해하면 되고 인체는 해부하면 된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하면? 다시 조립해봐야 한다. 인류는 사유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것은 작은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다. 움직임은 쪼갤 수 없다. 그것은 에너지로 표현된다.
움직이는 것은 충돌하고 교착되고 균형을 도출하고 거기서 멈춘다. 움직이는 것은 그 움직임을 동력으로 삼아 스스로 자신을 조립한다. 개인이 집단을 조직하듯이 움직이는 것이 충돌하여 스스로 자신을 조립하는 성질이 인간의 사유가 도달할 수 있는 최대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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