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에 K2 전차와 K9 자주포, 천무 다연장로켓 등을 수출해 ‘잭팟’을 터뜨린 국내 방위산업계에 또다른 기회가 미국에서 올 조짐이다.
방산업계에 따르면, 미국 록히드마틴과 이스라엘 엘타 관계자들이 다음달 중 방한해 T-50 제작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비롯한 국내 업체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방한은 내년부터 본격화할 미 해군 전술 훈련기(UJTS) 사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평가다. 수주에 성공한다면, 5세대 전투기를 쓰는 선진국들을 대상으로 첨단 훈련기를 판매할 길이 열리게 된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미국 록히드마틴이 만든 T-50A 훈련기가 이륙하고 있다. KAI 제공
미 해군이 현재 사용하는 훈련기는 맥도널 더글러스(현 보잉)가 제작한 T-45 고스 호크다. 1992년부터 미 해군에 200여대가 도입된 T-45는 30여년 동안 조종사를 양성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하지만 노후화가 진행되면서 산소 공급 시스템과 엔진 등에서 결함이 발생했다. 신형 함재기인 F-35C 스텔스기가 늘어나고 있지만, T-45로는 F-35C 조종사 양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고가의 첨단 기종인 F-35는 비행에 드는 비용도 비싸다. 전투 외에 조종사 훈련에도 투입하기가 부담스럽다. 이같은 문제를 해소하려면 F-35 기능 중 일부를 훈련기에서 익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기종 전환에 드는 시간을 줄여서 비용절감 효과를 높이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T-45로는 조종사가 F-35의 특성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어렵다. 첨단 훈련기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미 해군 T-45 훈련기가 항공모함 갑판에 착함을 시도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항공모함에서의 터치 앤 고(살짝 착지했다가 바로 다시 기수를 들어 재이륙)를 요구하는 대신 항공모함 착함과 캐터펄트를 통한 사출은 제외됐다. 함재기 착함 과정을 자동으로 수행하는 시스템이 개발되고 있는 상황을 반영했다는 해석이다.
레이더, 전자광학/적외선(EO/IR), 레이더 경보 수신기(RWR), 전자지원측정(ESM), 전자전(EA) 센서 적용과 공대공 및 공대지 훈련 시뮬레이션 지원도 추가됐다.
미 해군 요구를 충족할 기종으로는 KAI와 록히드마틴이 만들었던 T-50A가 꼽힌다. T-50A는 KAI가 2006년 개발한 T-50의 경공격기형인 FA-50을 토대로 미 공군 고등훈련기 사업을 위해 만든 기종이다.
대화면 디스플레이를 갖춘 조종석과 공중급유장치, 가상훈련(ET) 기능 등을 추가해 F-22, F-35 조종사의 훈련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KAI와 록히드마틴이 만든 T-50A 훈련기가 비행을 하고 있다. KAI 제공
이와 관련해 KAI와 록히드마틴의 움직임도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양측은 지난해 6월 미 해군 및 공군 전술훈련기 사업 관련 협력합의서(TA)를 체결했다.
록히드마틴과 KAI는 FA-50 탑재 레이더 제작사인 엘타와 함께 T-50A 레이더와 전자장비 및 소프트웨어를 최신형으로 교체하는 등의 작업을 진행해 미 해군 요구성능을 충족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 공군 전술훈련기 사업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성능개량을 거치면 이라크나 태국 등에 판매된 T-50보다 훨씬 우수한 기종이 만들어질 것이다. 사실상 다른 기종처럼 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록히드마틴이 미 해군 전술훈련기 사업 수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설명했다.
미 해군 전술훈련기 사업을 수주하면 60여대 규모로 알려진 미 해군의 가상적기 사업에도 청신호가 켜질 수 있다. 최대 300대에 달하는 훈련기를 판매할 가능성이 열리는 셈이다.
KF-21 전투기 시제1호기가 시험비행을 마치고 착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일각에서는 훈련기가 K방산의 수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지적한다.
방산수출의 부가가치를 높이려면 항공우주 분야가 수출을 주도하는 형태를 갖춰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K2 전차와 K9 자주포를 비롯한 지상장비 위주의 방산수출이 이뤄지고 있다. 부가가치 증대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미국 F-16·35와 프랑스 라팔 등 선진국 전투기들이 무기 시장에서 영향력을 빠르게 넓히는 것도 한국의 고민을 깊게 한다. 시장에 일찌감치 등장한 이들 기종은 자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후발주자의 진입을 차단하고 있다.
KF-21이 시험비행에 나섰는데도 공식적으로 관심을 표명한 국가가 없다는 것은 선진국들이 전투기 시장을 그만큼 확고하게 선점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T-50 훈련기가 경남 사천 KAI 본사 앞에 세워져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F-35 운영유지에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 것도 T-50의 가치를 높인다. 예전에는 기본적인 비행훈련만 훈련기로 실시하고, 본격적인 전술과정 훈련이나 전환훈련은 전투기를 통해서도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고가의 F-35를 훈련을 위해 자주 띄우는 것은 부담이 있다. F-35 임무와 기능 중 일부를 첨단 훈련기로 익혀서 F-35 조종 적응에 걸리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T-50은 고등훈련기(T-50), 전술입문기(TA-50), 경공격기(FA-50) 버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근 기술 발전추세에 부합하는 성능개량을 적용하면 F-35에 의한 기본 전투 훈련 등도 가능하다. 한국은 물론 5개 국가에 200여 대가 판매되면서 기술적 신뢰성이 축적된 것도 장점이다.
TA-50 전술입문기가 경남 사천 KAI 본사에 세워져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훈련기는 이같은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항공무장을 통합한다고 해도 전투기보다는 낮은 수준이라 비용과 기술 리스크도 작다.
한때 훈련기는 우수한 성능보다 낮은 비용이 더 중시됐던 적이 있다.
하지만 F-35 생산량이 증가하고 도입국가도 늘어나면서 기존 훈련기보다 더 우수한 성능을 갖춘 기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모양새다. 단순한 비행훈련 외에도 전술입문 단계의 훈련 등도 수행해 F-35 운영유지비를 절감하려는 의도도 나타나고 있다.
이같은 기조를 활용한다면 개발도상국 위주였던 T-50 계열 수출이 F-35를 보유한 선진국으로 확대될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미 해군 전술훈련기 사업 등 주요 선진국의 훈련기 도입 움직임을 면밀하게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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