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모두가 중산층이던 일본
일본이 예전에 잘 나가던 시절 “전 국민이 모두 중산층”이란 표현을 쓰곤 했다. 1990년 거품 붕괴 직전에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그 훨씬 이전인 1960년대 중반부터 유행했다. 일본식 표현으론 一億総中流(일억총중류). 당시 일본의 인구가 1억이었기에 그랬다.
젊은 시절 나 호호당은 일본을 많이 부러워했다. 소득이 높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중산층이란 의식을 가진 일본이었기에 그랬다. 지금 일본은 경제적으로도 몰락했지만 중산층 의식도 그때에 비하면 많이 옅어졌다. 예전에 비하면 소득격차가 많이 커진 것이다.
예전에 일본은 학교를 마치고 어떤 기업에 입사하면 그냥 그곳에서 평생 근무했다. 기업 또한 사람을 해고하지 않았다. 고졸과 대졸의 급여 차이도 크지 않았고 이른바 대기업 엘리트들에 대한 대우 또한 크게 높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 일본이야말로 마르크스주의의 이상을 사실상 구현했던 국가와도 같아 보였다.
물론 차이와 차별은 있었지만 그게 돈이 아니라 직위에서 오는 명예와 권위 같은 것이었다. 줄여 말하면 wage ratio 가 크지 않았던 일본이고 오늘날에도 미국에 비하면 전혀 심하지 않은 일본이다.
그러나 평등사회가 갖는 문제점과 대가도 없지 않았고 지금도 그렇다. 일본은 성실한 직원, 자기 몫을 잘 해내는 직원을 인정할 뿐 이른바 “튀는 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책임감 있고 성실하기만 하면 세월이 가면서 절로 업무 숙련도가 높아진다고 여기는 일본이다. 기술직의 경우 匠人(장인) 정신을 높게 인정한다.
다만 예전과 오늘날의 차이점은 예전에 다 고만고만하게 살았는데 이젠 그 차이가 제법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저 거품 붕괴 직전 일본은 한 때 좀 사치를 부렸다가 지금은 또 다시 원래의 모습, 근검절약하는 삶을 살고 있는 일본이다.
미국, 철저한 능력위주와 효율화
일본과 극적인 대비를 보여준 나라는 미국이다.
제2차 대전 이후 최강의 나라가 되었다가 냉전과 베트남전으로 인해 국력을 크게 소모한 미국이었다. 그 바람에 1980년대 미국은 장기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에 등장한 새로운 방식이 대규모의 구조조정과 다운사이징, 그리고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대거 인력을 줄이는 방식이었다. 쟤가 꼭 있어야 하나? 하고 물은 다음 아니다 싶으면 바로 잘라버리는 방식, 저 부서가 필요해? 하고 물은 다음 줄여도 되면 줄였고 아예 없애버리기도 했다.
툭 하면 대규모 레이오프(layoff) 또는 일시 해고가 대거 유행했다. 잠정 해고였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났다. 미국은 팀장별로 예산이 주어진다, 그러면 팀장은 그 예산 범위 내에서 마음대로 사람을 줄여도 되고 또는 유능한 인재를 비싼 값을 치르고 데려와 쓴다. 철저하게 비용과 수익을 따지고 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실리콘 벨리의 ‘듣보잡’ 신기술 기업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미국이 체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가 되자 오랜 제조업 기업들은 경영 컨설턴트들이 개입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분리 또는 해체해서 매각하거나 시설을 정리하기도 했고 그에 따라 인력들도 대거 일자리를 잃었다. 반면 신기술 기업들이 급속 성장하면서 일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웬만한 제조업은 모조리 사정없이 중국 쪽으로 생산 기지를 옮겼으니 오프 쇼어링(offshoring)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크게 생산성이 없는 부서는 외부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전환되었으니 미국은 1990년대부터 철저한 효율화를 추구했던 것이다.
가령 고객 응대를 위한 콜 센터는 영어를 할 수 있는 인도 쪽으로 옮겼고 단순 행정 업무는 외부 용역 회사에 맡겼다. 한 마디로 핵심 경쟁력이나 최상위 기술이 아닌 것은 다 버리는 방식이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급여와 임금의 엄청난 격차로 나타났고 양극화로 이어졌다.
양극화와 경쟁력
미국의 구조조정은 결과적으로 중국을 세계의 생산 공장으로 탈바꿈시켰으며 그 바람에 중국은 무역흑자 대국이 되었다. 그러면서 기술력의 차이에 따라 글로벌 공급 사슬이 생겨났다. 모두 미국이 만들어놓은 세상이다.
오늘날 일본이 초라해진 이유? 간단하다. 경쟁력 없는 제조업이라도 여전히 유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별로 시장점유율을 가진 고만고만한 제조업체들과 여타 기업들이 사이좋게 영역을 지키면서 나누어 먹고 있는 일본이고 그 바람에 일본 청년들의 경우 일자리는 절대 부족하지 않다. 다만 급여가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고만고만할 뿐이다.
일본 기업들은 기존의 국내 시장 점유율을 지키려고만 할 뿐 타 업체를 능가해서 넓힐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인구가 줄어드는 마당이라 현상유지가 최선이다. 해외 시장의 경우 현지에 업체를 설립해도 현지 실정에 맞는 경영을 하기 보다는 일본 본사에서 통제하려고 한다. 일본의 경우 해외 근무 발령이 나면 그건 거의 좌천이라 여긴다. 본사의 사람들과 아무래도 멀어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그간 대응 방식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왔고 적응해왔을까? 를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 이전 기본적으로 일본식 경영과 비슷했고 그 이후론 급격하게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 사실상의 미국식에 맞춰 변모해왔다.
대기업들은 핵심 경쟁력에 집중하는 쪽으로 빠르게 변모해왔다. 당연히 삼성전자가 그 대표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은 저렴한 인건비를 통해 생산된 중간부품을 대거 중국 등에서 수입함으로써 경쟁력을 유지해가고 있다. 또는 아예 생산 자체를 중국이나 베트남 등에서 하고 있다. 대기업과 공기업 등은 강성 노조가 있어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가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서비스업 분야의 임금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빠른 속도로 떨어져가고 있다. 이에 나타난 현상이 바로 노-노 갈등이다.
게다가 직장에서 밀려난 수많은 사람들이 자영업으로 내몰렸고 그로 인한 경쟁 심화로 인해 수익구조는 대단히 취약해져 버렸다. (개인사업자 대출은 사실상 가계부채인 셈이니 가계부채만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젊은이들은 조금이라도 나은 기회를 얻기 위해 수도권으로 밀려들고 있다. 이에 균형발전이란 명분하에 지자체에 아무리 돈을 퍼부어도 좋은 일자리는 생겨나지 않고 있으며 아무리 돈을 써도 출산율은 떨어져가고 있다.
이게 우리가 겪고 있는 양극화이고 고령화이다. 최근엔 소멸해가는 대한민국이란 말도 나온다.
최근 들어 우리는 일본을 “잃어버린 30년의 나라”라 하면서 가볍게 여기기 시작했지만 착각이라 본다.
일본은 미국식을 따라가지 않고도 어쨌거나 그간 잘 버텨왔고 또 앞으로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 나라란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전혀 그렇지 않다. 조만간 중국 경제가 부진의 늪에 빠지면 우리의 본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양극화 그리고 소멸해가는 나라 말이다.
우리사회의 지배풍조, 그리고 문제점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사조는 미국식 비즈니스 풍토이고 또 하나는 이른바 “87 체제”이다.
둘 다 일리가 있다. 미국은 글로벌 최강국이고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나라이다. 특히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에게 있어 미국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렇기에 능력 위주의 미국식 방법을 따라가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임금 격차까지 미국식을 따라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또 하나 87 체제는 우리가 현대화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변곡점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이제 그 정신과 방식은 낡아도 많이 낡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둘 다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미국식 경영 풍토는 양극화를 부추길 뿐이다. 87 체제는 양대 노총의 행동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여전히 길거리 투쟁을 주된 수단으로 삼아 저들의 이익을 지켜가고 있다.
그렇기에 두 가지 모두 임금격차를 키우고 양극화를 부추길 뿐이다.
결국 정치를 바꾸어야 하겠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방안을 찾아야만 양극화를 끝내거나 아니면 상당 부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이르게 되는데 결국 그 해답은 결국 정치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또 그러기 위해선 현행 선거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본다.
현재의 양당 체제는 우리가 안고 있는 다양하고 중요한 문제들을 대한 적절한 대응이 불가능하다. 더 중요한 점은 양당 체제 그 자체보다도 “利權(이권)을 챙기고 지키는 통로가 양당 체제를 통해 너무 오랫동안 고착화”되어 버렸다는 점에 있다.
선거 제도 개편에 대해 정치권에선 이런저런 핑계가 많다. 당연하다, 현행 체제야말로 상대를 적대시해가면서 각자의 진영 이익을 챙겨먹기 딱 좋다는 점, 그리고 적당히 교대로 누릴 수 있는 체제이니 굳이 바꿀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제도 개편은 절대 쉬운 과제가 아니다. 당사자 스스로 개혁의 칼날을 들이대라고 하는 격이니 될 턱이 없다.
결국은 바뀔 것이니 2032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바뀔 것이라 본다. 우리 경제는 향후 10년 동안 날로 어려워져서 절체절명의 위기에까지 처할 것이라 본다, 그러면 우리 국민들이 각성할 것이다. 그리고 현행 정당체제를 바꾸게 될 것이다. 결국 권력은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있는 것이니 그렇다.
나 호호당은 그 시기를 2032년으로 보고 있다. 그때가 바로 우리 국운의 새로운 60년 순환에 있어 春分(춘분)의 때, 覺醒(각성)의 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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