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해 죽고 새 해가 탄생했으니
동지가 지났으니 헌 해는 죽었고 새 해가 태어났다. 해가 바뀐 것이다. 그런데 갓 태어난 새 해는 아직 강보에 싸여있어 힘이 없다. 저 어린 새 해가 짜잔-하고 힘차게 동쪽 바다에 떠오르려면 내년 3월 21일이 되어야 한다. 우리들이 春分(춘분)이라 부르는 때가 그 때이다.
그러니 어제 동지부터 내년 춘분까지의 세상은 여전히 黑暗(흑암)이 지배하는 기간이다. 낮 시간 빼기 밤 시간하면 마이너스(-)란 말이고 陰(음)이 陽(양)보다 우세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계속 해서 시간(time)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시간이란 사실 없는 물건이라서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시간’이란 놈은 세상에 실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없고 그저 우리들이 느끼는 ‘지금’, 즉 now 가 있을 뿐이다. 그 지금도 순간순간 없어지고 변화해가지만 아무튼 ‘지금’만이 있다. 그런데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가 지금을 느끼는 것 또한 아니다. 지금 눈앞의 사물과 내 몸 그리고 생각하는 나를 의식하는 것이지 지금이란 시간을 직접적으로 의식하진 못한다. 시간이란 놈은 우리가 만들어낸 개념일 뿐이니 그렇다.
이처럼 우리들은 있지도 않은 시간을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이에 나 호호당은 그를 ‘시간의식’이라 부르는 바 그 출발은 바로 해의 순환이다.
"시간 의식"의 출발
한 해의 순환 그리고 달의 차고 기움, 낮과 밤의 교대, 이런 현상을 우리 인간들이 지속적으로 상대하다보니 결국 시간의식을 만들어내었고 나중에는 그것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방법도 만들어낸 인간들이다.
시간을 측정하는 대표적인 물건은 時計(시계)이다. 이 용어는 서구 문물을 일찍 받아들인 일본에서 만들어졌고 영어로는 clock 이라 한다.
시계 중에서 오늘날 우리가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시계는 디지털시계, 주로 스마트폰 화면이나 컴퓨터 모니터 하단에 표시되는 시계이다. 우리 생활과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극초정밀의 원자시계도 있고 핵시계도 있다.
우리 조상들에게 시계는 낮과 밤이었다. 낮엔 해가 하늘 어디쯤에 있는지를 보았으며 밤으론 달 그리고 별을 보면서 시간을 짐작했다.
그러다가 시간의식이 강해지면서 낮을 더 나누어서 해가 뜰 무렵을 새밝(새벽), 해가 뜬 후를 아침, 해가 중천에 떠있는 때를 한낮, 그리고 해 저물녘으로 구분했다. (재미난 것은 저물녘을 줄여서 저녁이라 한다는 점이다.)
왕조가 생기면서 시계가 만들어졌으니
그러다가 권력이 집중되고 왕조가 생겨나면서 당시로선 초정밀 시계가 생겨났으니 바로 해시계이다. 작대기를 너른 평지에 꽂아놓고 해 그림자의 길이를 재어서 시각을 재기 시작했다. 이를 土圭(토규) 또는 圭表(규표)라고 했다.
집중된 권력 즉 왕조가 생겨난 뒤 해시계가 만들어졌지만 밤에도 시각을 재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12 時辰(시진) 또는 24 시간 체제가 만들어졌다.
영어로 오전을 morning 이라 하고 또 forenoon 이라 하며 오후를 afternoon 이라 한다. 이를 통해 noon 이란 말이 낮 12시 즉 정오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재미난 대목은 원래 noon 은 정오가 아니라 오후 3시를 뜻했다는 사실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해가 뜨는 때-주로 아침 6시-부터 시간을 재기 시작해서 9시간 뒤를 nona hora 라 했는데 이를 영어로 옮기면 nine hour 란 의미이다. 따라서 noon은 9를 뜻한다. 그게 서양 중세 교회에서 일과를 보내다보니 어쩌다가 낮 12시로 3시간씩이나 앞당겨졌다.
하지만 시간이나 시진과 같이 정밀하게 나누어 시간을 사용하는 것은 왕이나 영주의 궁전이나 교회 등과 같이 나름 바쁘게 돌아가는 권력기관에서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낮 시간을 아침, 한낮, 저녁 등으로 구분했을 뿐이고 밤이 되면 시간 따위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
중국에선 그래도 밤 시간을 5개로 나누어 관리했다. 저녁 7시부터 2시간씩 끊어서 새벽 5시까지를 更(경)이라 하던 것이 그것인데 명칭이 재미있다.
저녁 7시부터 9시까지를 初更(초경) 또는 黃昏(황혼), 9시부터 11시까지를 二更(이경) 또는 人定(인정),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를 三更(삼경) 또는 夜半(야반)이라 했다. 가장 깊은 밤인 ‘야반삼경’이 그것이다. 그 이후 1시부터 3시까지를 四更(사경) 또는 닭이 운다 해서 鷄鳴(계명), 3시부터 새벽 5시까지를 五更(오경) 그리고 동쪽이 밝아온다 해서 平旦(평단)이라 했다.
이에 경이 바뀔 때마다 궁궐이나 고을 관아에선 종이나 북을 쳐서 시각을 알렸다.
평민들과 시계는 별 상관이 없었다는 사실
하지만 고을의 관청과 멀리 떨어진 들이나 산에서 사는 일반 평민들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바닷가 사람들에겐 오히려 물때, 즉 조금 사리를 아는 것이 중요했을 뿐이다.
그리고 평민들에겐 시간은 고사하고 期日(기일)도 제대로 알기 어려웠다. 대다수 사람들은 달의 차고 기우는 것으로 달을 알고 거기에 맞추어 날을 계산했으니 바로 陰曆(음력)이다.
하지만 음력은 알다시피 세월이 지나면 엄청난 오차가 벌어진다. 음력은 한 달에 29일과 30일을 번갈아서 쓰니 한 해가 354일이 된다. 그런데 해의 순환은 365.2425로 나가는 무한소수이다. 정말 골 때린다!
그래서 왕조는 피지배층들을 빨아먹는 대신 나름 서비스를 했으니 바로 달력을 만들었다. 그런데 정확한 달력을 만드는 것이 여간 어렵지가 않았다. 제아무리 잘 만들어도 세월이 흐르다 보면 오차가 발생했고 이에 달력 시스템을 개정하곤 했다.
달력, 인간 지혜의 결정체
천문학이란 게 사실 달력을 좀 더 잘 만들어보고자 하는 노력에서 나왔다. 다시 말해서 우주를 알아보기 위함이 아니었다. 하늘의 해와 달, 또는 북두칠성과 같은 별을 관찰해서 달력, 월과 일을 제대로 알기 위한 노력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아무튼 세월이 흐르면 달력이 엉망이 되니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나라들은 새롭게 왕조가 바뀌거나 또 야심 찬 왕이 등장하면 대표적인 개혁의 상징으로서 새 역법을 만들어서 발표하곤 했다.
조선왕조 최고의 스타 임금인 세종대왕 역시 아니나 다를까? 좀 더 나은 달력을 만들기 위해 고대 로마제국 당시 그리스의 천재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지은 천문학 책 즉 “알마게스트”의 중국어판 서적을 반입했으니 바로 “칠정산 내편”이 그것이다.
분 단위까지도 사용하는 오늘의 우리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월과 일은 물론이고 시간 단위, 분 단위로 쪼개어 생활하기 시작한 것 또한 그다지 오래 되지 않았다. 우리의 경우 일제 강점기부터 보급되어서 1960년대부터 몇 시 몇 분까지도 생활에 쓰기 시작했다.
나 호호당이 예전에 은행 전산부에서 근무하던 시절 독일 연수를 갔었는데 그게 1990년의 일이었다. 프랑크푸트르 중앙역에 가니 기차가 겨우 몇 분 간격으로 출발하고 도착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가령 타려고 하던 기차가 오후 3시 17분 차였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가령 3시 정각, 3시 15분, 30분, 이렇게 15분씩 절도가 있는 간격이 아니라 마치 마구잡이식의 17분 출발, 21분 출발, 이런 식으로 끝자리가 복잡한 것을 보고 와, 이게 선진국이구나! 하고 감탄을 했다. 아니, 수백 킬로를 달려가는 기차들이 분 단위로 제어가 된다니 이런!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독자님들은 KTX나 SRT 등을 탑승할 때 3시 17분 차, 이런 식의 시간표에 익숙하겠지만 그건 200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란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은 아마도 우리가 더 정확할 것이다.
월과 일은 물론이고 1시간의 1/60인 分(분) 단위까지 이미 우리 생활 속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 버스 기다릴 때 스마트폰으로 도착 시각을 분 단위로 쓰고 있고, 택시 콜 해도 잡고 나서 서있는 장소까지 몇 분 뒤에 올 것이며 가고자 하는 장소까지 몇 분 걸리는지 재어가며 생활하는 우리들이다.
우리 선조들은 조선 시대만 해도 만날 약속을 할 경우 예컨대 다음 달 초순경에 봅시다, 식으로 期約(기약)을 했다. 이에 반해 우리들은 일처리의 경우 일자는 물론이고 몇 시 몇 분, 이런 식으로 예약을 한다.
이제 정리할까 한다. 그냥 시간이 不在(부재)하는 동짓달 긴긴 밤의 얘기였다.
시간은 그때그때 다르게 흐른다
우리는 여전히 감각의 동물이다. 밥 벌어먹기 위해선 분과 초를 따지는 냉철한 우리들이지만 나머지 일에선 그렇지가 않다. 좋은 사람과 나누는 시간은 너무나도 빨리 흐르고 싫거나 관심 없는 사람과의 일은 1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진다. 감각의 동물인 우리들에게 시간은 그때그때 경우에 따라 다른 속도로 흐른다. 시간이란 게 기본적으로 없는 물건인 까닭이다.
글을 마치고 나니 12월 24일이 되었다. 오전 1시 52분이다. 정말이지 너무 춥고 밤은 너무 길구나! 아,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구나. 메리 크리스마스!
●● 2022년을 보내면서 (0) | 2022.12.31 |
---|---|
●● 양극화, 끝낼 수 있을까? (전편) (0) | 2022.12.28 |
삭풍이 실어 나르는 얘기 (0) | 2022.12.15 |
시간에 대한 두 가지의 생각(후편) (0) | 2022.12.08 |
시간에 대한 두 가지의 생각(전편) (0) | 2022.1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