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기업 편향적인 정부의 문제점
대통령의 편향된 의식 세계
민주노총 화물연대를 대하는 윤석열 정부의 태도에는 일관성이 없다. 실질적으로는 노동자이지만 법적으로는 대부분이 자영업자인 화물연대를 노동조합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화물연대의 파업 역시 파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화물연대를 상대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사상 초유의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조합원들을 자영업자로 규정해놓고도, 이들의 '자영'을 존중하지 않고 업무 복귀를 명령했다. 이들을 소속이 있는 노동자처럼 다룬 것이다.
화물연대를 대할 때는 이처럼 모순을 드러내면서도, 화물주인 대기업들에 대해서는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자영업자라는 전제 하에 이들의 단체행동을 파업으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하는 것과, 이들이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전제 하에 업무 복귀를 명령하는 것은 상호 모순된다. 하지만 대기업 화물주들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업무개시명령 발동을 심의한 11월 29일 국무회의에서 "노동개혁에 더욱 힘쓰겠다"고 발언했다. 이는 그가 이번 파업에 대해 상식 이하의 초강경 대응을 내놓는 배경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대통령이 화물 노동자들과 대기업 화물주들의 분쟁에 끼어들여 노동자들에 대한 강경 조치를 결정하고 노동개혁 의지를 천명하는 모습은 사회 전체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할 직분과 어울리지 않는다. 대기업에 편향된 의식 세계를 그대로 노출하는 일이다.
아직 최종적으로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윤 정부의 이른바 '노동개혁'은 기업 관점에서 노동력 수급을 유연하게 하고 노사관계를 수정하는 방향을 지향한다. 이런 내용이 이명박 정부의 노동정책에도 들어 있었다. MB 정부가 말하는 이른바 노동개혁의 양대 축은 노동 유연화와 노사관계 선진화였다.
이명박 정부는 노동정책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장으로 철도 파업을 활용했다. 2009년 11월 26일 전면 개시된 철도노조의 합법 파업에 대해 상식 이하의 대응을 선보인 게 그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파업 당일 오후에 검·경 공안대책실무협의를 개최했다. 국가안보의 관점에서 노동자 파업을 대하는 시각을 굳이 감추지 않은 것이다. 11월 28일에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적당히 타협하고 가서는 안 된다"라며 엄정 대처를 선언했다. 대통령인지 대기업 대리인지 헷갈리게 하는 입장을 내놨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철도 파업이 합법적이었는데도 무려 1만2000여 명을 중징계하는 상황으로 몰아갔다. 이에 관한 중앙노동위원회 재심 판정을 규탄하는 2011년 1월 26일자 성명서 '중노위의 철도노조 사건 재심 판정에 대한 민주노총 노동자 위원 입장'은 그때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 약 12000명 전원 징계, 말단 지회 간부라도 모조리 파업 주도 선동의 사유를 추가하여 중징계, 지부장 이상 약 200명에 대해서는 모두 파면과 해임!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엄청난 대규모 징계처분이 뒤따랐다."
이명박 정부가 철도 파업에 대해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응을 보여준 것처럼, 윤 정부도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그런 대응을 구사하고 있다. 화물연대 조합원들을 상대로 '업무개시명령 불응 시, 3년 이하 징역, 3000만 원 이하 벌금'을 경고하는 모습은 박정희 정부 아래의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비상상황을 명분으로 인적·물적 자원 국가동원령(제5조), 단체행동권 규제(제9조) 등을 합리화한 일을 연상시킨다.
'친 기업' 행보가 우려스러운 이유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기업 편향성은 노동문제 이외의 여타 현안들에서도 나타난다. 국내 문제뿐 아니라 국제관계서도 그런 불공정성이 표출되고 있다.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한미일 삼각 협력체제의 밑바당에서도 일종의 '대기업 프렌들리'를 느낄 수 있다.
삼각 협력체제의 일환으로 윤 정부는 강제동원 문제를 적당히 봉합하려 한다. 이에 관한 최종 입장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지만, '미쓰비시나 일본제철 같은 전범기업들의 직접 배상을 막아주고, 제3의 주체가 피해자들을 상대하게 한다'는 기본 원칙은 확실히 드러나 있다.
윤 정부는 일본 기업들의 성의 표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범기업들의 직접 배상은 요구하지 않는다. 제3의 주체가 배상금 재원을 조성할 때 일정한 성의 표시를 해주기 바란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정부가 이런 입장을 취하는 것은 전범국가 낙인에서 벗어나려는 일본의 국가적 입장을 배려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국을 주요 무대로 수익을 창출해온 일본 대기업들의 입장을 감안한 것이기도 하다.
미쓰비시 등의 입장에서 보면, 식민지배 문제와 관련해 자신들에게 내려진 가장 강력한 사법적 선고인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받아들이게 되면 자신들이 전범기업이라는 낙인이 공식화될 수 있다. 또 한국인들에게 고개를 숙일 경우, 한국을 종속관계의 하부에 두고 이윤을 창출해온 그간의 패턴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 윤 정부의 강제동원 문제 해법은 그런 우려를 감안해주는 측면도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미동맹에 대한 윤 대통령의 과도한 애착 역시 대기업 프렌들리와 맥이 닿는다. 미중정상회담을 사흘 앞둔 지난 11일(미국 시각),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이 계속 도발하고 중국이 막지 않으면, 미국은 동아시아 군사력을 증강시킬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전달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설리번이 말한 군사력 증강은 전략자산이나 첨단무기 배치의 증대로 이해됐다. 핵추진 항공모함이나 핵무기 탑재 잠수함 또는 B-1B 전략폭격기 등의 동아시아 파견을 확대해 북한에 대응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됐다.
이 같은 미국 전략군사무기의 동아시아 전개는 미 군수업체의 이윤 창출과 한국 국민들의 부담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바이든의 방침에 동조하고 있다. 28일 보도된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도, 대북 압박에 대한 중국의 참여를 촉구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지역에 군사적 자산이 유입될 것"이라며 셜리번 보좌관과 똑같은 말을 했다.
윤 대통령이 바이든에 동조해 미 전략폭격기나 핵항공모함 등을 자주 끌어들이게 되면,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뿐 아니라 양국 간의 통상 문제에도 영향이 생길 수밖에 없다. 미군 병력이나 군사무기가 증강되는 곳에서는 미국 기업들의 이익도 증대돼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윤 대통령의 성급한 태도는 미 군수업체뿐 아니라 여타 미국 대기업들의 이윤 추구에도 유리하다.
윤 대통령의 대기업 프렌들리가 화물연대 파업뿐 아니라 강제동원 문제 해법에도 나타나고 한미동맹 및 대북 압박에도 깔려 있는 것은 노동자뿐 아니라 일반 대중의 삶에도 유리하지 않다. 핵심적인 대내외 현안들에서 대기업 편향성이 두드러지면, 이런 경향이 나머지 국정 현안들로도 쉽게 확산될 게 뻔하다.
미중 패권경쟁, 코로나 팬데믹, 우크라이나전쟁에 더해 미국 연방준비제도마저 세계적 경제위기를 가중시킴에 따라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반 대중의 삶이 팍팍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까지 나서서 친기업 노선을 노골적으로 표방하는 것은 대중의 앞날을 어둡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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