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국익 걸고 미국과 담판... 윤석열 정부는 없었다

정치·사회

by 21세기 나의조국 2022. 11. 29. 13:33

본문

국익 걸고 미국과 담판... 윤석열 정부는 없었다

[권신영의 해리포터 너머의 영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둘러싼 미-프-독의 외교전

 

 

"제3국의 보호 무역 조치로 초래될 불이익을 방지하기 위해 산업 정책상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2023년 1월 1일, 미국에서 시행될 인플레이션 감축법(이하 감축법)을 두고 독일과 프랑스가 초강수를 두었다. 지난 11월 22일 발표한 공동 성명에서 제3국이란 미국이고, 보호 무역 조치란 감축법이며, 불이익이란 전기 자동차 보조금 수혜 대상에서 제외된 유럽 차의 미국 시장 내 경쟁력 상실을 뜻한다. 두 국가가 모색할 가능성은 미국과 똑같은 방식으로 유럽연합(EU)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다.

 


감축법의 무엇이 반러시아로 협력 중인 대서양 세계를 무역 전쟁 초입으로 몰아간 것일까. 각각의 의미가 다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는 국가 안보 전략이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는 EU 결속을 강화시킬 기회다.

그리고 '무역을 통한 변화'를 응용해 열린 경제를 유지하고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있다. 협상 결과에 따라 신자유주의 하 법인세 인하 경쟁이 국가 보조금 경쟁으로 바뀌는 광경을 볼 수도 있다.

미-EU 갈등의 한가운데에 있는 감축법은 그린 뉴딜에 속한다. 친환경 에너지 개발에 투자해 일자리를 늘리고 의료 영역의 복지 확대를 골자로 한다. 7400억 달러 (974조 원) 규모의 초대형 예산안으로 재원은 법인세 인상으로 마련한다.

이 법안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성격이 바뀐다. 처음 논의되는 시점은 2021년 전쟁 발발 이전으로 낙수 효과 경제에 대한 대안이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선 당시 중산층을 확대하는 경제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다. 신자유주의에서 간과되었던 노동, 계층, 복지, 그리고 주변에 머물던 기후 문제를 중앙으로 불러들이자 젊은 세대는 환호했다.

감축법은 전쟁 이후 국가 안보 전략으로 위치가 격상된다. 실존의 문제가 된 기후 변화와 에너지를 무기화한 러시아가 그 배경이다. 두 문제를 분리시키지 않고 동시 타결하고자 한 바이든 대통령은 10월 발표한 '국가 안보 전략' 문서에서 "장기적으로 에너지 안보는 청정 에너지에 달려 있다"고 했다.

바이든의 경제관과 안보관은 최종적으로 국제 사회 세계관과 통한다. 위 문서에서 바이든은 "미국은 국내가 강하기 때문에 해외에서 강하다"고 말했다. 국제 사회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부가 강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가 뜻하는 강한 내부란 노동자 계층이 그린 에너지 및 제조업을 이끌어 중산층이 두터운 구조다. 이것이 외적 요소에 휘둘리지 않고 기후 정의 실현에 모범이 되어 국제무대 지위를 지속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처럼 감축법의 중요성은 미국 내에서 커졌지만 정부의 시장 개입은 유럽을 당혹스럽게 했다. 시장의 힘을 신뢰해 자본-상품-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추구한 유럽이었다. 하지만 전쟁은 순식간에 러시아 에너지와 미국 군사력에 의존하는 유럽으로 만들었다. 두 의존성을 탈피해야 하는 상황인데 미국이 시장 질서 규칙까지 바꾸겠다고 나선 것이다.

프랑스 '유럽 제품 구매법'과 독일의 중국 카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수도 파리 엘리제궁에서 산업 시설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감축법은 유럽중심론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유럽 결속력을 외칠 정치적 기회다. 지난 10월 "우리도 유럽제품 구매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에 대한 대응책으로 나온 것 같지만 사실은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던 법안이다. EU가 하나 되어 미-중 양강 구도에 맞대응할 힘을 갖춰야 한다를 정치 신념으로 삼아온 마크롱 대통령은 이 법안을 2017년 대선 공약에 넣었고 지난 3월 프랑스 대선에서도 논의한 바 있다.

재선 이후 외교 무대에 선 마크롱은 EU 국가들에 유럽산 무기 구매를 외쳤다. 그는 "해외에 많은 돈을 쓰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며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틀에서 사고할 것"을 호소했다.

유럽 중심으로 들리지만 프랑스는 실제 외교적·경제적 이익을 가지는 동시에 독일 도 견제할 수 있다. EU내에서 안보는 전략적으로나 군수 산업적으로나 프랑스가 독일을 앞서는 영역이다. EU가 안보 영역까지 확대하게 되면 프랑스가 주도할 수 있다. 그리고 전쟁으로 재무장을 선언한 독일이 프랑스산 무기를 구매한다면 천문학적 이익도 얻을 수 있다.

다층적인 의도가 들어있는 프랑스 주장에 독일은 일부만 수용했다. 독일-프랑스-스페인 중심으로 구축되는 미래전투 항공 체계에 동의했지만 전투기는 미국 F35 전투기와 패트리어트 방공 체계를 선택했다. 프랑스로서는 지난해 호주 잠수함 계약을 작년 뺏기고 미국·영국·호주의 안보 동맹인 오커스(AUKUS)에서 배제되던 악몽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이후 마크롱은 에너지 정책을 두고 독일과 각을 세웠다. 독일이 2000억 유로(277조 원) 규모의 에너지 보조 정책을 실시하자 독일 회사에만 유리한 조치라며 독일이 고립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독일이 지지했던 미드캣(MidCat) 가스관 계획을 반대하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설득해 바르마르(BarMar) 가스관 계획을 확정 지었다.

10월 내내 양국은 부딪쳤지만 감축법에 공동 대응할 필요성이 있었다. 지난 10월 25일 양국 정상은 직접 만나 미국에 강력 대응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전쟁 발발 이후 독일의 대미 관계는 최상이었다. 미국은 독일의 재무장과 유엔 상임 이사국 진출에 지지를 표했고 독일은 천문학적 액수의 미국산 전투기를 구입했다. 하지만 감축법으로 상황이 돌변했다. 미국 시장 내 폭스바겐, 비엠더블유, 메르세데스-벤츠의 고전이 예상되고 독일에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했던 테슬라가 미국의 세금 혜택에 투자 계획을 보류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거대한 관세 전쟁을 초래할 것"이라면서도 정면 대응은 삼갔다. 한쪽으로 프랑스와 발을 맞추고 다른 한쪽으로 중국을 열어두는 수를 두었다. 10월 중순 미미하지만 상징적으로 함부르크 항구 터미널 하나의 지분 25%가량을 중국에 팔았다. 이어 지난 4일 중국을 방문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연임을 확정지은 후 중국을 방문한 첫 주요 7개국(G7) 정상이었다. 

방중을 하루 앞둔 지난 3일 <폴리티고>에 기고한 글에서 숄츠 독일 총리는 "우리는 중국과 분리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과도하게 의존할 수 없다"고 했다. 러시아에 에너지를 의존한 결과를 잊었냐는 비판에 대한 입장 표명이었다. 동시에 중국과의 관계를 예전처럼 유지할 수 있다는 대미 메시지였다.

또한 "독일 총리로 중국을 방문하지만 유럽인으로서도 간다"고 했다. 유럽의 결속력을 보여줘야 하는 시점에 단독 행동을 비판하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 대한 답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같이 방문하길 원했었다. 이후 마크롱 대통령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중국 방문 의사를 표했다.
  
최종 결정은 바이든 대통령 손에
 

 지난 25일(현지시간)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EU 수석 부집행위원장이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외교장관이사회 회의를 마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U는 북미산 전기차 등에만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해 차별 논란이 일고 있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관련해 '동등 대우'를 강조하면서 해법 마련을 거듭 촉구했다. ⓒ 유럽연합


프랑스의 정공법과 독일의 간접적 압박은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냈다. 지난 10월 25일 미-EU 인플레이션 감축법 위원회가 설치되었다. 양쪽 대표는 발디스 돔브로브스키스 EU 수석 부집행위원장과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다.

신경전이 오갔다. EU는 보조금 조항이 보호 무역주의라며 유럽 전기 자동차 시장이 미국에 열려있음을 상기시켰다. 반면 미국은 EU의 탄소 국경 조정 메커니즘을 거론했다. 생산 과정에서 배출한 탄소량에 따라 EU로 수입되는 상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감축법은 그린 에너지 전환 동기 부여책으로 만약 그것이 차별이라면 EU 정책 역시 차별이라고 했다.

11월 말까지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정부 보조금을 불공정 경쟁을 유발하는 요인이 아니라 경쟁의 방식으로 이해했다. 이 맥락에서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는 EU도 산업 보조 정책을 추진하라고 권했다. 보조금이 기후 정의를 앞당기고 중국 의존도를 낮출 것이므로 미국의 전략적 이해와 상충하지 않는다는 계산이다.   

게다가 이미 유럽도 자주·자립의 이름으로 미국과 유사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유럽 주권 기금이 한 예다. 감축법 이전인 8월 초 조셉 보렐 EU 외교위원장은 유럽이 "자주적이고 주권적"이 되기 위해서는 결속력이 필요하며 그린 딜, 경제, 안보에 있어 소프트 파워가 아닌 하드 파워에 투자를 주장했다.

이에 호응한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 9월 "유럽 주권 기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산업의 미래는 유럽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분명히 하자"고 밝혔다. 투자 분야는 배터리, 반도체, 수소다.    

독일의 열어놓은 중국과의 협력 가능성에 대해서도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는 "베를린은 중국에 대해 순진하지 않다"고 했다. 러시아 에너지 의존이 초래한 경제난과 그로 인해 유럽이 최우선으로 매달리고 있는 자주성을 고려할 때 친중국 노선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판단이다.

물러날 뜻이 없어 보이지만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는 "정부 최고위급의 정치적 의지가 있다"며 여지를 두었다. 지난 22일 독-프랑스 공동 성명이 예고하듯 무역 전쟁이 시작될 경우 발생할 정치적 부담과 젊은 세대의 기대 사이에서 내릴 판단이다. 

이 와중에 12월 1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방문한다. 두 정상이 최종 담판 지을 공산이 크다. 감축법과 유럽상품 구매법은 본질이 비슷하다. 이론상 둘 다 살아남거나 폐기되어야 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고집하면 유럽 상품 구매법도 동력을 얻고 마크롱 대통령이 EU 담론을 주도할 수 있다. 둘 다 폐기되더라도 유럽의 이익을 지켰다는 공을 차지할 수 있다. 어느 쪽이든 이번 외교전의 실질적 승자는 마크롱 대통령이지만 그는 어느 쪽으로 승점을 올리고 싶을까.

유럽만큼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윤석열 정부는 이번 외교전에 없었다. 우려와 입장을 전했다는 말만 들렸을 뿐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지도 못했다. 국익 실현은 악수나 팔짱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판을 읽는 시야, 전략과 계산, 그리고 의지가 필요하다. 그래야 상대방도 자세를 바로잡고 마주 본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