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장비업체 ASML을 보유한 네덜란드가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규제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란 의사를 시사했다. ASML은 반도체 미세공정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장비를 전 세계 독점 생산하는 업체로, 중국이 EUV를 보유하는 순간 첨단 공정 기술력 확보에 속도가 붙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대중국 제재에 커다란 구멍이 뚫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네덜란드 "우리 자신의 이익이 더 중요"
23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리제 슈라인마허 네덜란드 외교통상부 장관은 22일(현지시간) 국회에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들과의 무역 규칙 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네덜란드가 ASML의 중국에 대한 반도체 장비 판매와 관련해 자체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슈라인마허 장관은 헤이그에서 열린 국회에서 "우리 자신의 이익, 즉 국가 안전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익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중국에 반도체 장비 판매를 금지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따를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네덜란드의 한 고위 관리는 "네덜란드는 중국에 대한 반도체 장비 판매와 관련해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방어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ASML 없으면 첨단 반도체 불가능
전 세계 반도체 기업들은 ASML의 EUV 장비 없이는 선폭 10㎚(나노미터, 1㎚=10억분의 1m) 이하 초미세 공정을 소화할 수 없다. EUV 장비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EUV를 생산하는 곳은 전 세계에서 ASML 한곳 뿐이다.
EUV는 반도체 원판인 웨이퍼에 회로를 새길 때 활용된다. 회로를 새기는 광원의 파장이 기존 장비와 비교해 14분의 1 수준으로 얇다. 그만큼 회로를 세밀하게 그릴 수 있다. 회로선폭이 얇아지면 웨이퍼 한 판 안에서 나오는 칩 수가 기존보다 많아진다. 선폭이 좁을수록 작고 전력 효율성이 높은 반도체를 만들 수도 있다. 고성능의 반도체를 웨이퍼에서 더 많이 건져낼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 EUV 수입 가로막아
중국이 반도체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EUV 장비가 필요하다. 데이터센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데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디스플레이 패널 등의 두께가 갈수록 얇아지는 대신 처리해야 할 데이터양도 많아져서다. 미세공정으로 생산된 최첨단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지난해부터 EUV 장비 수입이 가로막혔다.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기 위해 네덜란드 정부를 압박해왔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현재 미국의 압력으로 자국 기업 ASML의 대중국 수출 허가를 보류해왔다.
네덜란드가 ASML의 중국 수출을 허가하는 순간 중국은 해당 장비를 대규모 수입할 가능성이 크다. ASML의 EUV 생산역량은 1년에 40여대로 제한돼 있어 각국 기업의 장비 확보 역량이 기술력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가석방된 직후 ASML부터 찾은 것도 이 때문이다.
"왜 미국 말 들어야 하냐"…반발 커져
블룸버그는 슈라인마허의 발언에 대해 "중국의 반도체 기술 통제를 위해 미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에 네덜란드의 반대가 커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ASML을 비롯해 유럽 국가 및 기업 입장에선 중국이 주요 시장이기 때문이다.
앨런 에스테베즈 미 상무차관과 타룬 차브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기술·국가안보 선임보좌관 등은 이달 중 네덜란드를 방문해 네덜란드 정부와 관련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블룸버그는 이 협상에서 즉각적인 결과가 나오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최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네덜란드의 마르크 뤼터 총리에게 세계 무역을 방해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시 주석은 뤼터 총리에게 "우리는 경제와 무역 문제의 정치화에 반대해야 하며 글로벌 산업과 공급망의 안정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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