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자유여행객을 대상으로 무비자 입국을 실시한 지 한 달이 지났다. 해외여행을 제한하는 빗장이 본격적으로 풀리며 한국과 일본 관광시장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돌았다. 지리학적으로 비슷한 곳에 위치한 한국과 일본은 관광업에서 외국인 유치 경쟁을 벌이는 국가로, 리오프닝 이후 관광 수요를 선점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여행 재개 초반에는 한국과 일본 양국이 입국자 수가 증가하며 모두 웃음 지은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지난달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방문객 수는 49만8600명으로 추산됐다. 이는 전월 20만6500명보다 두 배 이상으로 증가한 것이다. 외국인 방문자 급증에는 일본정부가 10월11일부터 개인·자유여행객에게도 비자면제 제도를 재개한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 이전까지는 단체관광객에게만 비자를 면제해줘 일본 여행의 편의성이 떨어졌다.
'강달러' 효과로 미국인 입국이 늘어나며 조금씩 활기를 되찾던 국내 관광업계는 일본의 이 같은 조치에 긴장하기 시작했다. 외국인들 입장에선 일본과 한국이 대체 여행지가 될 수 있는 상황인 만큼, 한국을 방문하려던 외국인들의 수요가 일본으로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려와는 다르게 한국 역시 10월 외국인 입국자 수가 크게 증가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은 28만9590명으로 전월(16만6568명) 대비 73.9% 불어났다. 이 숫자는 단체관광객과 제주도로 입국한 외국인 수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실제 이 기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 명동 거리의 외국인 관광객들. 사진=김병언 기자‘K콘텐츠’ 인기로 한국에 ‘환상’ 생긴 미국인
양국을 방문한 외국인의 국적 중 눈에 띄는 건 미국이다. 올해 10월 한국을 찾은 외국인의 국적을 분석한 결과 미국인의 비중은 20%로 일본과 공동 1위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일본을 찾은 외국인 중 미국인 비중은 11%였다.
미국인들이 일본보다 한국을 더 많이 찾는 이유는 여행이 봉쇄됐던 코로나19 기간 K콘텐츠가 북미지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관광업계에서 문화 콘텐츠는 특정 여행지에 대한 환상을 갖게하는 주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물리적으로는 콘텐츠를 활용한 여행지를 개발할 수 있다는 점도 여행산업에 호재로 작용한다.
미국 내 K콘텐츠의 위상을 높인 것 중 하나는 영화 '기생충'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4개의 상을 수상했다. 당시 한국에 대한 미국인의 호감도는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올해는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인 에미상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게스트상 등 6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지난달 15일 오후 방탄소년단의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기원 단독콘서트 라이브플레이(LIVE PLAY)가 열리는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아미들이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K콘텐츠의 인기는 그대로 한국에 대한 호감도 상승으로 이어졌다. 2020년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CCGA)가 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100점 만점에 60점을 기록해 1978년 관련 조사가 시작된 이래 최고 점수를 기록했다. 올해 한국관광공사 뉴욕지사가 미국 미시간주립대와 공동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 10명 중 6명이 'K컬처가 한국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답하며 가까운 미래에 한국 여행을 희망한다고 응답했다.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로 대표되는 K팝의 위상도 대단하다. BTS는 올해 빌보드가 발표한 '최근 10년간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정상에 가장 많은 곡을 올린 아티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달엔 블랙핑크가 정규 2집 '본 핑크'로 종합 앨범차트인 '빌보드 200' 1위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걸그룹이 이 차트 1위에 오른 건 블랙핑크가 처음이다.
‘큰 손’ 중국인 대신 ‘럭셔리 상품’으로 객단가 높이기
게티이미지
최근 한국과 일본이 공들이고 있는 관광 상품은 객단가가 높은 '럭셔리 상품'이다. 코로나 19 이전 양국에서 외국인 방문객 비중 1위를 차지했던 '큰 손' 중국인의 자국 내 이동이 제한된 상황인데다, 항공편이 코로나19 이전만큼 정상화되지는 않아 외국인 방문객 수가 팬데믹 이전 대비 10~20% 수준인 점을 고려한 것이다.
한국관광공사는 지난달 미국 럭셔리 관광객 16명을 유치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회원들이 메트로폴리탄 연구원과 동행해 전 세계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을 관람하는 럭셔리 상품이다. 여행자들은 1인당 한화 약 1300만원을 지불하고 한국에 방문한 것이다.
이달 1일에는 프라이빗 전세기를 통해 미국, 영국, 등 6개국으로부터 42명의 관광객이 방한했다. 방문객들은 정년 퇴임한 고위 정부관료, 최고경영자(CEO)등으로, 베트남 터키 등 총 7개국을 방문하는데 그 중 한국이 첫번째 도착지였다. 상품 가격은 한화로 약 2억2000만원에 달한다. 유진호 한국관광공사 관광상품실장은 “일반 외국인관광객 대비 럭셔리관광객의 지출은 4배 이상 높은 수준으로 지속적인 육성이 필요한 분야”라고 말했다.
일본 JNTO역시 객단가 및 부가가치가 높은 어드벤처 체험형 여행(AT)상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스키 등 레저활동에 소비하는 여행자를 중점적으로 유치하겠다는 복안이다. AT여행을 즐기는 관광객이 대부분 부유층인데다 체류 기간도 길고 방문기간 현지에서 장비를 사는 등 지출하는 금액이 크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특히 도쿄와 같은 도심뿐만 아니라 레저를 즐길 수 있는 지방으로 방문하는 경우도 많아 지역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쟁국이지만 서로 모시기 바빠…“지역 다양성 살려야”
한·일은 미국·동남아인 관광객 유치를 두고 서로 경쟁하면서도 양국 여행자들이 각국을 해외여행지로 가장 선호한다는 점에서 협력하는 관계이기도 하다. 올해 10월 한국을 찾은 외국인의 국적을 분석한 결과 일본과 미국인이 20%로 공동 1위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일본을 찾은 외국인을 국적별로 보면 한국인이 25%로 1위였다.
일본은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자국민이 한국 등 외국으로 가기보다는 국내여행을 즐길 것을 권장하며 국내 여행 할인권을 배포하는 ‘전국여행지원’ 정책을 이달 들어 시행했다. 다음 달 중순까지 신칸센이나 항공기, 숙박시설이 연계된 패키지여행을 이용할 경우 1인당 하루 최대 1만1000엔을 정부가 지원하는 내용이다.
이와 동시에 한국인 유치를 위한 민간 영역의 움직임도 돋보인다. 한국인의 일본 내 쇼핑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카카오페이 적용 점포를 늘리는 등 한국인 관광객을 맞을 준비도 동시에 펼치고 있다.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들은 하네다·간사이 공항, 미츠코시 이세탄 백화점,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 로손·세븐일레븐·패밀리마트 편의점 등에서 카카오페이로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다.
향후 팬데믹 진행상황과 방역조치 등에 따라 한국과 일본 관광업의 회복세는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김남조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코로나19 재유행 상황과 이에 따른 입·출국 정책 및 방역 조치가 각 국의 관광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여전히 팬데믹이 진행 중인 만큼 관광업계에선 안전과 위생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내는 서울을 중심으로 관광업이 빠른 회복세를 보일 공산이 크다"며 "일본의 관광산업 강점 중 하나가 '지역별 다양성'인 만큼 우리나라도 각 지역이 다양하게 관광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고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미경 기자 capit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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