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대가들의 투자를 통해 올바른 투자방법을 탐색해 봅니다.
조엘 그린블라트(65)는 1985년 헤지펀드 고담캐피탈을 설립한 이후 2005년까지 약 20년간 연평균 40%의 수익률을 기록한 전설적인 가치투자자다. 투자자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마법공식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린블라트는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 스쿨을 최우등(summa cum laude)으로 졸업했으며 1996년부터 뉴욕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가치투자를 가르치고 있다. 지난 6월말 기준 고담캐피탈의 운용자산(AUM)은 약 31억 달러(4조4500억원)에 달한다.
투자 초기 기업분할, 구조조정 등 특수상황 투자에 집중하던 그린블라트는 '주식시장의 보물찾기'를 출판해서 이름을 알렸으며 워런 버핏의 영향으로 가치투자에 빠진 이후에는 '주식시장을 이기는 작은 책'을 통해 마법공식을 소개하면서 유명해졌다.
마법공식은 좋은 회사인지를 측정하는 자본수익률(ROC)과 주가가 저렴한지를 측정하는 이익수익률, 두 지표로 구성되는데 모두 높을수록 좋다. 이익수익률은 세전영업이익을 기업가치로 나눈 수치다. 놀랍도록 간단한 마법공식은 지금도 유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 저널리스트로 20년 이상 세계 최고의 투자가들을 인터뷰해온 윌리엄 그린이 지난 3월 조엘 그린블라트와 1시간 30분 가까이 인터뷰하며 그린블라트의 투자 비결을 물었다. 그린블라트의 말을 들어보자.
이때 그린블라트는 식물원이자 테마파크인 플로리다의 '사이프러스 가든스(Cypress Gardens)'가 인수된다는 뉴스를 접했다. 거래만 완료된다면 적잖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성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소를 머금고 첫 번째 투자로 사이프러스 가든스 주식을 잔뜩 샀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블랙스완이 발생했다. 거래가 완료되기 몇 주 전, 사이프러스 가든스의 대형 건물들이 갑자기 생긴 싱크홀에 빠진 것이다. 알고 보니 플로리다에서는 종종 발생하는 일이었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이 이 일에 대해 재밌는 기사를 썼지만, 그린블라트는 죽을 맛이었다. 상당한 금액을 투자해서 잘못하면 망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린블라트는 투자자가 전혀 예상치 못했으며 투자자의 잘못도 아닌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행히 사이프러스 가든스 거래는 무산되지 않고 가격을 낮춰서 성사됐으며 그린블라트도 작은 손실만 보고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그린블라트는 월가의 투자 구루(대가) 하워드 막스의 "경험이란 원했던 것을 얻지 못했을 때 당신이 얻는 것이다"라는 말을 빌려 사이프러스 가든스에서 큰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향후 S&P500지수의 연 수익률이 4~6%에 그치겠지만, 그는 성장과 가치에 집중하는 전략은 연 30~40%의 수익률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또 그린블라트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예로 들며 항상 포트폴리오가 충분히 분산되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제든지 정말 나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며 살아남아서 다음 날에도 투자를 할 수 있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한 바구니에 계란을 전부 담지 않고 분산함으로써 큰 실수를 저질러도 살아남는 것이다.
퀀트적인 기법을 강조하는 그린블라트는 의외의 말도 했다. 펀드 매니저는 배짱(stomach)으로 인해 보상받는다는 대목이다. 그는 정말 좋은 투자자가 되기 위해서는 든든한 배짱을 가져야 하며, 약간은 비정상적인(screw loose) 면이 있어야 이런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린블라트도 많은 손실을 볼 때 아주 실망스럽고 속이 쓰리지만 2~3일 내에 적응한다고 털어놓았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시장이 빨리 회복할 것이며 눈 앞의 손실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복구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성공적인 투자자가 돈을 벌 수 있는 이유는 가끔 주식시장이 아주 감정적으로 변하면서 기회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며 이 기회는 고통과 함께 온다고 말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누구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며 성공적인 투자자는 오히려 기회를 가지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사람들의 공포가 만들어내는 극단적인 변동성이 기회를 창출한다는 의미다.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자본적 지출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브랜드와 프랜차이즈를 갖춘 훌륭한 기업이다. 그린블라트는 무디스의 사업모델이 마음에 들었지만, 그의 성향상 가격이 비싼 무디스를 매수하는 걸 망설였다. 하지만 버핏의 코카콜라 매수 분석을 통해, 무디스가 코카콜라 못지 않게 훌륭한 투자기회라는 사실을 깨달은 후 그는 무디스에 투자할 수 있었다.
그린블라트는 주가수익비율(PER) 20배가 넘는 가격에 무디스를 매수했다고 밝혔다. 지금도 PER 20배는 낮은 가격이 아니지만, 금리가 훨씬 높았던 90년대에는 훨씬 더 비싼 가격이다.
이 대목에서 그린블라트는 '독창적인 사고'의 중요성이 과대평가됐으며 자신의 영역에서 가장 영리하고 성공적인 사람처럼 생각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그린블라트는 워런 버핏과의 인연도 공개했다. 개인적으로 버핏을 만날 기회를 가졌는데, 버핏이 얼마나 호의적이고 자신의 시간을 내주는 데 관대한지 놀랐다고 말했다. 그린블라트가 하워드 막스의 말을 좌우명처럼 되새기고 버핏의 투자를 통해 자신의 투자전략을 업그레이드하는 등 이미 탁월한 투자자가 다른 투자자에게서 영향받는 모습이 재밌다. 서로 통하는 게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린블라트가 강조한 배짱 역시 마찬가지다. '월가의 전설' 피터 린치도 "모든 사람이 주식투자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지능을 갖추고 있지만, 그들 모두가 배짱을 가지고 있진 않다"며 주식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머리가 아니라, 배짱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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