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은 감추어진 부분을 알아내야 한다. 부분을 보고 전체를 알아내야 한다. 원인을 보고 결과를 알아야 한다. 과거를 보고 미래를 알아야 한다.
알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알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알 수 있는 부분은 절대성이요, 알 수 없는 부분은 상대성이다. 알수 있는 부분과 알 수 없는 부분이 섞여 있는게 보통이다. 그렇다면 알 수 있는부분만 추려야 한다.
문제는 알고자 하는가이다. 모르고자 하는 태도가 문제다. 상대주의를 강조하는 자는 모르고자 하는 자다. 그런 자와는 대화할 수 없다.
1은 알 수 있다. 아무데나 대충 찍어도 1이다. 2도 알 수 있다. 역시 아무데나 찍어도 2다. 단 다음에 올 3을 배려해서 신중하게 찍어야 한다. 3은 알 수 없다, 아무데나 찍을 수 없다. 1과 2의 간격을 재서 2와 3의 간격을 맞춰야 한다. 2가 1의 오른쪽에 있다면 3은 2의 오른쪽에 찍을 수 있다.
뭔가 복잡해지는 것은 3부터다. 1과 2는 쉽다.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는 쉬운 절대성에 의지해야 한다. 절대성은 쉽기 때문에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의지가 된다.
해는 누구나 찾을 수 있으므로 의지가 된다. 달은 조금 어렵지만 초승달이든 반달이든 기다리면 뜨기는 뜬다. 별은 찾기 어렵다.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변화다. 변화는 3에서 일어난다. 1은 주어, 2는 목적어, 3은 동사다. 변화는 동사에서 일어난다. 1과 2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절대적이다. 동사는 움직이고 움직이면 상대적이다.
1의 궁수가 2의 활을 쏘았는데 3의 사슴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는 그 사슴이 도망치느냐 제 자리에 머물러 있느냐에 달려 있다. 상대적이다.
상대성은 3이다. 1과 2는 절대적이다. 1은 절대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대가 없기 때문이다. 2는 대칭이고 1은 무대칭이다. 그러므로 1은 절대도 아니고 상대도 아니고 완전성이다. 2는 절대적이고 3은 상대적이다.
1은 대칭이 없고 2는 1과 대칭된다. 그 대칭은 절대성을 가진다. 왜냐하면 1과 2를 연결하는 라인은 하나 뿐이기 때문이다. 그 라인을 끊을 수 없다. 대칭으로 보면 1은 0이고 2에 이르러 대칭 1이 완성되며 3에 이르러 대칭 2가 완성된다. 대칭이 둘이므로 상대적이다.
상대든 절대든 만나야 한다. 어떤 둘의 만남은 절대다. 만나서 이루어지는가는 상대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했다. 존재가 1, 나는 2, 생각은 3이다. 존재와 나 사이의 =를 나와 생각 사이의 =로 복제한 것이다. 1과 2 사이의 거리를 2와 3 사이의 거리로 복제하듯이 말이다.
존재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생각이 있다. 생각은 상대적이고 나는 절대적이며 존재는 완전하다.
구조론연구소 김동렬 2022. 10. 15
문제가 있으면 답이 있다. 구조론은 정답이 있다. 많은 사람이 정답이 있다는 사실 자체에 화를 낸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 사람과는 대화하지 않는다. 배울 자세를 갖추지 못한 사람을 가르칠 이유는 없다.
어두워서 글자를 읽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왜 불을 켜지 않는가? 리더가 될 생각이 없는 사람이 있다. 지성인이 될 생각이 없는 사람이 있다. 무리 속에 숨어서 묻어가려는 사람은 배울 자격이 없다.
그들이 진리를 포기하듯이 나는 그들을 포기한다. 소리가 나지 않는 종은 더 이상 종이 아니다. 자극하면 반응해야 한다. 빛을 비추면 씨앗 속에서 고개를 내밀어야 한다. 지적 자극에는 지적 반응이 필요하다.
물론 애매한 경우도 있다. 그 경우는 정답이 있는 부분만 별도로 추출하거나, 혹은 정답이 있는 문제로 바꿔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진리를 구하는 자세다. 진리가 없기를 희망하는 자는 상대하지 않는게 맞다.
도서관의 책을 다 읽겠다는 생각이라면 무리다. 도서관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기쁨을 떠올리자. 범인은 이 안에 있다. 진리는 이 안에 있다. 도서관을 샅샅이 뒤져서 찾아내고 말겠다는 결의가 필요하다.
수학은 정답이 있다. 이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수학은 애초에 문제와 답을 대칭으로 설계하기 때문이다. 사건 속에서 중복과 혼잡을 제거하고 수학이 감당할 수 있는 뼈대만 남기는 것이 구조론이다.
정답이 있다는 말은 절대성이 성립한다는 말이다. 절대성의 영역도 있고 상대성의 영역도 있다. 아날로그는 상대성이고 디지털은 절대성이다. 모든 아날로그는 디지털로 변환할 수 있다. 방향을 바꾸면 된다.
병아리가 껍질 속에 숨어서 세상이 어둡다고 말하면 안 된다. 상대성에 매력을 느낀다면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그게 비겁한 짓이다. 도망치는 행동이다. 제 힘으로 껍질을 깨고 빛 가운데로 걸어나와야 한다.
진리를 구하는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다. 진리 그 자체가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다. 식물은 햇볕을 찾아 뻗어간다. 인간은 진리를 찾아간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그늘에 숨는 나무는 없다.
세상은 대칭이다. 대칭은 둘이다. 둘이면 상대성이다. 상대성이면 정답이 없다. 그 둘이 대칭시키는 라인은 하나다. 하나는 절대성이다. 절대성이면 정답이 있다. 대칭의 축은 그 둘을 잇는 라인과 대칭된다.
상대성은 대칭이고 대칭은 축이 있고 축은 대칭 그 자체와 대칭된다. 변화되는 것은 상대성이고 변화시키는 것은 절대성이다. 둘은 항상 같이 다닌다. 문제는 인간이 그 중에 한쪽 일면만 보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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