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연구소 김동렬 2022. 09. 06
상호작용의 주체와 객체가 있다. 사건은 둘 사이에서 일어난다.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객체를 향한다. 틀렸다. 주체를 보는 눈을 얻어야 한다. 주체지향적 사고를 익혀야 한다.
주체는 연역하고 객체는 귀납한다. 우리의 문명은 통째로 귀납에 맞추어져 있다. 결과를 확인하고 원인을 추적하는 사고에 길들여져 있다. 귀납은 넘겨짚기다. 오류는 필연이다. 종교와 주술과 음모론을 비롯한 각종 개소리가 난무하는 이유다.
주체 - 객체
시작 - 종결
원인 - 결과
능동 - 수동
연역 - 귀납
우리는 초대된 손님과 같다. 자연이 주체라면 인간은 객체다. 포지션이 굳어버렸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우물 밖에서 날아오는 돌에 대해서는 상상할 수밖에 없다. 넘겨짚을 수밖에 없다. 손님은 주인의 눈치를 본다. 주인의 의도를 넘겨짚어야 한다.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자세다. 자연을 이해하려면 인간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수학의 논리는 연역을 쓰지만 수학이 해석하는 대상은 객체다. 이미 귀납하고 있다. 기하학이 더 연역에 가깝지만 부족하다. 대수는 셈하는 대상이 눈앞에 있다. 기하는 계산할 면적이 눈앞에 있다. 이미 귀납하고 있다. 사건의 시작 부분이 아니라 종결 부분을 보고 있다. 사건의 출발점을 사유하지 않는다.
오늘 판매한 상품을 결산한다면 이미 귀납이다. 내일 판매할 제품을 세팅한다면 연역이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대응책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상대의 펀치를 보고 맞대응하면 안 된다. 미리 선수를 치고, 미끼를 던지고, 함정을 파고,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하여 게임을 설계해야 한다. 그런 사고를 훈련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주체와 객체로 나누기 전에 둘의 상호작용에 주목해야 한다. 너와 나는 왼쪽과 오른쪽이 있지만 둘의 상호작용은 언제나 한 방향이다. 그 세계에 옳고 그름은 없고 강과 약이 있을 뿐이다. 어느 쪽이 옳을까 하고 선택을 고민하고 있다면 이미 져 있다. 총을 쥔 자는 선택을 고민하지 않는다. 선택을 고민하고 있다면 이미 져 있다. 총을 뺏긴 상황이다.
주최측은 고민하지 않는다. 누가 돈을 따든 카지노는 승리자다. 누가 월드컵에 우승하든 피파는 흥행한다. 애초에 그렇게 설계해둔 것이다. 은행은 망하지 않는 구조로 설계해야 한다. 최종보스는 언제나 승리자가 되는 구조다. 그것이 연역의 관점이자 주체의 사고다.
우리는 내가 잘했다거니, 네가 잘못했다거니 하고 따지기 좋아하지만 대개 둘의 상호작용이 약해진 것이 원인이다. 약하면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피해야 하지만 강하면 파도를 타고 넘는다. 우리는 핸들을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잘 꺾어야 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엔진의 출력이 약한 것이다. 출력이 강하면 치고 나간다.
자전거는 잘 피해야 하지만 탱크는 밀어버린다. 을에게는 언제나 두 가지 선택이 주어져 있지만 갑은 먼저 먹거나 천천히 먹거나뿐이다. 빨리 가거나 천천히 가거나뿐이다.
엔트로피는 사용된 에너지의 증가다. 사용되었다는 것은 이미 결과가 나왔다는 거다. 귀납 포지션에 서 있다. 그런데 누가 에너지를 사용하지? 에너지를 사용하는 주체가 누구야?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라는 얄궂은 표현을 쓰려면 그 에너지를 사용한 주체를 밝혀야 한다.
엔트로피를 뒤집으면 이기는 힘이다. 이기는 힘은 사건의 시작점을 본다. 어떻게 방아쇠를 격발하지? 상호작용의 밸런스 축을 이동시키는 방법으로 큰 파동을 작은 파동으로 나누어 압력을 생산한다. 그 압력으로 격발한다. 문명이 반쪽짜리가 된 이유는 이 부분을 말해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헷갈리는 이유는 에너지 사용의 주체를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건이고, 의사결정이고, 밸런스고, 시스템이고, 상호작용이다. 계 내부의 밸런스 균형점이다. 큰 파동이 작은 파동을 만들어 계 내부에 압력을 생성하는 방법으로 에너지를 사용한다. 그것은 홀로 성립할 수 없으며 언제나 2 이상이다.
혼자는 주체가 될 수 없다. 협회를 만들든 조합을 만들든 둘 이상이 힘을 합쳐야 주체가 된다. 통제해야 할 균형점이 계 내부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구조라야 한다. 균형점이 외부에 있는 아날로그 구조라면 선수로 뛸지언정 게임의 주최측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둘 이상이 하나로 이어져 있으므로 계라고 한다.
사건의 원인측에서, 시작점에서, 주최측에서 이기는 힘을 얻어야 한다. 계를 이루고 축을 움직여서 적극적으로 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 밸런스의 평형에 이르면 안 되고 축을 움직여 일정한 낙차와 경사를 유지해야 한다. 권력자가 후계자를 키워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돌발상황에 대비하는 힘을 키우는 것과 같다.
선택하지 말고 선택을 요구해야 한다. 파도를 타고넘어야 한다. 안티 엔트로피다. 인류 문명은 그 반대의 결과측을 보고 있다. 문명사 1만 년 동안 인류는 존재의 결과측 절반만 살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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