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평화 기자]인텔은 지난 3월 유럽에서 800억유로(약 106조9928억원) 규모의 연구개발(R&D)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프랑스 파리 인근에는 R&D 센터를 건립해 고성능컴퓨팅(HPC)과 인공지능(AI) 디자인 연구를 진행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지난해에는 이스라엘에 R&D 센터를 확장하기 위해 6억달러(약 7962억원)의 투자를 밝히기도 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유럽 R&D 투자와 관련해 "폭 넓은 계획으로 유럽의 R&D 혁신을 촉진하고 세계 고객과 파트너에게 유익한 최첨단 제조력을 갖추고자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주요국들은 민관이 손잡고 반도체·전기차·2차전지 등 핵심 산업에서 R&D 투자 확대에 혈안이 돼 있다. 정부가 제도와 재정적 지원을 과감하게 풀어주면 기업은 아낌없는 투자를 통해 경쟁력을 한껏 끌어올리는 구조다. 특히 ‘현대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반도체 분야에서는 누가 먼저 초격차기술을 확보하느냐의 다툼인 만큼 R&D 투자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기업은 파운드리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미국의 인텔이다.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 중 가장 많은 금액을 R&D에 투자했다. 투자액은 152억 달러(약 20조1674억원). 전세계 반도체 지출액의 19%에 해당하며 삼성전자의 두 배를 뛰어넘는 규모다.
파운드리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경쟁하는 대만 TSMC 역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지난해 45억달러(5조9715억원)를 쏟아부었다. 전년 대비 20% 증가한 수치다. 2020년에도 26% 늘어난 투자액을 기록하는 등 R&D 투자를 사업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카드로 보고 있다. 대만 정부의 적극적인 R&D 지원와 국경을 넘나드는 협력도 성과를 내고 있다. TSMC는 지난 6월 일본 이바라키현에 반도체 R&D 센터를 새로 개소한 상태다.
반면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R&D 투자 규모는 글로벌 경쟁사들이 지난해 전체 매출의 약 13.1%를 R&D에 지출한 것과 비교하면 한참 뒤처진다. 시장조사기관 IC인사이츠는 최신 보고서에서 지난해 전 세계 반도체 R&D 지출은 805억달러로 10년간 58.5% 성장했다고 밝혔다.
55.8%는 인텔 같이 미국에 본사를 둔 기업들에서 이뤄졌다. 같은 기간 한국, 대만, 중국 등을 포함하는 아·태 지역 반도체 R&D 지출은 29.5%로 2위를 기록했고, 유럽 8.1%, 일본 6.6% 순이었다. 아·태 지역 국가들 중에서도 한국 기업들의 R&D 비중이 특히 낮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R&D 지출 비중은 전 세계의 11.9% 수준에 머물렀다.
매출 대비 R&D 비중 역시 미국은 16.9%를 기록한 반면 한국은 8.1%로 중국(12.7%), 일본(11.5%), 대만(11.3%)에도 밀렸다.
한국 반도체업계의 부족한 R&D 투자는 특허기술 경쟁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특허청에 따르면 파운드리 분야 최첨단 기술로 여겨지는 게이트 올 어라운드(GAA) 관련 세계 특허 출원 비중은 TSMC가 31%로 가장 많고 인텔(24%), IBM(19%), 삼성전자(18%) 순이다.
김평화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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