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전 총리가 참의원 선거를 이틀 앞둔 7월 8일, 전직 해상 자위대원이 쏜 사제 총에 맞아 숨졌다.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일본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 큰 충격과 파장을 주고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전쟁 전후를 통틀어 일본 역사에서 가장 길게 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두 차례에 걸쳐 8년 9개월 동안 총리 자리를 지켰다. 그는 모두 두 차례 총리를 지냈는데 1차는 2006년 9월부터 2007년 9월까지 1년에 그쳤지만, 2차는 2012년 12월부터 2020년 9월까지 무려 7년 9개월 동안 연속으로 총리직에 머물렀다.
또한 총리 사임 뒤에는 자민당의 최대 파벌인 아베파를 이끌며 막후에서 일본 정치를 좌지우지해왔다. '역대 최장기 총리' 경험자와 집권 자민당 안 '최대 파벌의 영수'라는 두 가지는, 그가 일본 정치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인지를 잘 보여준다.
한국과 불화 불러일으킨 최장기 총리 아베의 외교·안보
그의 정치 성향은 극우 보수다. 국내적으로는 '아름다운 나라' 건설이라는 미명 아래, 과거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거나 미화하는 일에 앞장서며 일본제국의 과거 영화를 되살리려고 힘썼다. 국기·국가법의 제정 주도와 애국심을 고취하는 교육기본법 개정이 대표적인 예다. 외교·안보 면에서는 미일동맹 강화를 추구하며 중국과 대립을 불사했다. 북한에도 납치 문제를 선결과제로 제시하며 고강도 압박을 계속했다.
이런 아베의 외교·안보 노선은 불가피하게 한국과도 불화를 불러일으켰다. 북한과 화해를 추구하는 한국의 대북정책을 앞장서 반대했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동원 노동자 등 역사문제에 관해 강경노선을 주도했다.
현직 총리일 때는 그나마 자신의 극우 성향을 감추고 주변국과 관계 개선을 꾀하려는 시늉이라도 했으나 총리에서 물러난 뒤에는 노골적으로 '미국 중시-아시아 경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일본이 대만 분쟁 때 직접 개입해야 한다'거나 '한국이 일제 때 강제노동 현장이라는 점을 들어 반대하는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록을 역사전쟁 차원에서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아베 전 총리의 돌연한 죽음은 여러모로 일본 안팎에 큰 충격과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중에서 특히 한국이 주목해야 할 점은 일본 국내 정치와 한일관계에 끼칠 파장일 것이다.
[일본 정치]개헌 가능선 돌파 예상... 그러나 구심점 잃은 보수
우선, 일본 국내 정치에 끼칠 파장부터 살펴보자. 이는 단기와 중장기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7월 10일 실시되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으로 표 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전 총리가 피격당하기 전에도 일본 각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 자민당-공명당의 연립 정권이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수 의석을 무난히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선거를 이틀 앞둔 시점에서 발생한 아베 전 총리의 죽음은 일본 전역에 애도 분위기를 형성하며 이런 흐름을 더욱 강화할 것이 분명하다. '죽은 아베'가 자민당에 '압도적 승리'를 가져올 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덩달아 개헌에 찬성하는 일본유신회와 국민민주당까지 합치면 참의원에서 개헌 가능선인 3분의 2도 쉽게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아베 전 총리의 죽음이 보수세력의 세력 확대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보수세력의 확실한 구심점 노릇을 해왔던 아베 전 총리가 갑자기 사라짐으로써 보수세력의 결집력이 약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도자를 잃은 일본회의 등 보수세력은 새로운 얼굴을 만드는 등 전열 재정비가 불가피하게 됐다.
보수세력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그동안 아베 전 총리의 그늘에 가려 있던 비둘기파 성향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본색을 드러내며 정책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공간은 넓어질 것이다.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 세력이 개헌 가능 의석을 확보한다고 해도 개헌에 대해 부정적인 일반 여론을 뚫고 뜻을 관철하긴 어렵다. 더구나 총대를 맬 확실한 지도자가 없어진 터이다. 아베 전 총리의 죽음은 일본 사회가 장기적으로 극우에서 다시 중도 쪽으로 시계추가 옮겨가는 전기로 작용할 수 있다.
[한일관계]애도 정국 지나면... 기시다 정부, 보다 많은 선택지 얻을 듯
한일관계에도 단기적으로는 갈등 해소보다 갈등 증폭 또는 갈등 유지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한일 두 정부는 7월 10일 참의원 선거 이후에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겠다는 그림을 그리고 준비를 해왔다.
하지만 역사 갈등에 강경한 자세를 취해온 아베의 불행한 죽음은 단기적으로 그의 그림자를 더욱 짙게 할 것이다. 그에 대한 동정여론과 추무 열기 속에서 이른바 '아베의 유훈통치'가 단기적으로 힘을 발휘할 것이다. 비둘기 성향의 기시다 총리도 당장은 이런 분위기에 압도돼 한일관계 개선 얘기를 꺼내기 힘들 것이다. 아무리 윤석열 정부가 한일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한다 해도 일본 정부의 선택 폭은 아베 죽음 이전보다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한일관계 개선의 시기도 7월 참의원 선거가 아니라 아베에 대한 추모 분위기가 식을 때까지로 미뤄지는 게 불가피해졌다. 그나마 한국으로서 다행인 것인 일본과 역사갈등 문제를 놓고 본격적인 협상을 하기 전에 이런 일이 발생해 위험 부담을 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한국과 역사전쟁을 주도했던 아베 전 총리의 죽음은 장기적으로는 한일관계 개선에 좋은 환경을 조성해 줄 것으로 보인다. 역사갈등을 역사전쟁 수준으로 격상해 강경하게 대응해온 그의 부재는 극우세력의 퇴조와 함께 기시다 정권이 더욱 많고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가져올 것이다. 한국 정부로서도 비호감 정치인이 사라짐으로써 갈등 상황을 풀어가는 데 큰 부담을 덜고 장기적인 관계 개선 전략을 짤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고인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아베 전 총리를 죽음에 이르게 한 테러 행위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이다. 하지만 역사는 때로 불행한 사건을 통해 뜻밖의 방향으로 움직이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아베 전 총리의 죽음이 초래한 변화를 긍정적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건 남은 자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