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연구소 김동렬 2022. 07. 04
힘이 있다면 그 힘을 쓸 것이다. 도구가 있다면 그 도구를 사용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쓰지? 그것을 고민하는 것이 철학이다. 힘이 없는 자에게 철학은 필요가 없다. 도구가 없는 자에게 철학은 필요가 없다.
과학은 도구다. 이에 과학철학이 필요하다. 정치는 도구다. 이에 정치철학이 필요하다. 예술은 도구다. 이에 예술철학이 필요하다. 형태는 기능을 따르고 철학은 도구를 따른다. 도구는 상호작용을 따른다.
도구가 아니면 무엇일까? 본질이다. 본질은 무엇일까? 도구의 자궁이다. 도구의 주인이다. 모루는 망치에 얻어맞는다. 모루에게는 망치가 본질이다. 도마는 칼에게 얻어맞는다. 도마는 칼에게 잘 보여야 한다. 아니다.
인간은 본질을 추구한다. 왜? 도구가 없기 때문이다. 아기는 도구가 없다. 아기는 엄마를 따른다. 도구가 없으면 철학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하지? 객체는 주체에게 복종해야 한다. 상호작용구조 안에서 객체는 주체를 따른다. 그런데 주체의 주체가 있다. 그 망치를 휘두르는 주인에게 잘 보여야 한다. 그 주인 위에 더 높은 주인이 있다면? 최종보스에게 충성해야 한다. 그것이 본질의 의미다.
세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것이다. 둘은 대등하게 맞서는 것이다. 셋은 적극적으로 지배하는 것이다. 적응하는 자는 승객이다. 맞서는 자는 운전을 배운다. 지배하는 자가 운전기사다. 철학은 운전기사의 것이다. 승객은 그냥 운전기사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주체냐 객체냐다. 상호작용 구조 안에서 포지션이 주어진다. 객체에서 주체로 올라서야 한다. 도구를 장악하고 사용법을 익혀서 먼저 게임을 걸어야 한다. 게임의 주최측이 되어야 한다.
도구를 가진 주체의 객체에 대한 지배권이 권력이다. 권력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믿음이다. 권력이 있는 자는 철학하고 권력이 없는 자는 신앙한다. 도구가 없는 자가 주체를 믿고 따르는 것은 동물의 소극적인 적응이다. 그것은 철학이 아니다.
철학은 도구를 쥔 자의 것이며, 권력을 가진 자의 것이다. 게임을 지배하는 주체의 것이며, 상호작용을 주도하는 것이다. 칼이 없는 자가 무사도를 수련하거나 농부가 낫을 들고 기사도를 수련한다면 이상하다. 언어가 없는 동물은 철학이 없다. 기능이 없으면 형태가 없다. 주체와 객체의 상호작용이 없으면 존재가 없다.
인간은 힘이 답이다. 힘이 있으면 문제를 해결한다. 단 그 힘의 사용법을 익혀야 한다. 힘은 대칭을 조직하고 균형을 추구하지만 주체는 그 균형을 넘어서는 권력을 조직한다.
인간은 환경과 맞서 상호작용한다. 둘의 접점이 있다. 망치는 모루가 있고 칼은 도마가 있다. 그 접점을 자기 내부로 들여오면 힘을 얻는다. 거기에 새로운 접점을 추가할 수 있는 것이 힘이다. 먼저 만들어진 접점이 새로 만들어진 접점을 지배하는 것이 권력이다.
힘이 있는 자는 도구를 사용하여 권력을 행사하고 힘이 없는 자는 본질을 추구하여 믿음을 행사한다. 힘이 있는 자는 철학하고 힘이 없는 자는 적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