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는 신흥 3강의 투쟁사
앞글에서 글로벌 근대사는 1860-1870년대에 등장한 세 개의 신흥강국, 미국과 독일, 일본이 변화의 主軸(주축)으로 이끌어왔다는 점을 얘기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공산주의라고 하는 이념의 도전이 있었으나 그건 결국 “弱子(약자)의 전략”이었기에 이론이나 理想(이상)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공산주의는 강권독재나 무정부상태로 귀결되면서 사라졌다. 북한은 강권독재로, 중국은 무늬만 그럴 뿐 황제체제로 간 것이 그것이다.
앞글에서처럼 글로벌 근대사의 모든 투쟁 과정은 우리에게도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중국을 事大(사대)하던 우리가 졸지에 日帝(일제)의 치하에 들어갔고 그러다가 갑자기 해방을 맞이한 뒤 미국과 소련 간의 세력충돌 장소가 되어 한국전쟁을 겪었다. 그러다가 소련의 해체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분단된 상태에서 북한은 초라한 강권독재의 저개발국가로 전락한 채 핵미사일을 통해 간신히 이어가고 있다.
북한의 비극은 우리 남한, 즉 대한민국의 비극이기도 하다. 민족적 동질성에서 오는 憐憫(연민)만이 아니라 우리 또한 북쪽으로의 출구가 막히면서 國政(국정)의 방향 자체가 애매해졌으니 그렇다.
오늘날의 대한민국
현 시점에서 우리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애써 객관적인 관점에서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자기 객관화란 사실 어려운 얘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성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인 까닭이다.
일단 현재 우리 대한민국은 여러 면에서 분명히 선진대열에 속해있다. 특히 경제와 기술 측면에서 우리 대한민국은 첨단기술을 가진 제조업의 강국이며 IT를 통한 서비스업도 일류이다. 멀리 갈 것 없이 삼성전자와 현대차만 봐도 그렇다. 첨단기술이 가장 우선적으로 동원되는 방위산업만 해도 좋은 가성비의 장비와 무기들을 생산해내고 있으며 첨단 배터리 기술과 생산에 있어 선두에 있다.
이처럼 우리는 해방과 건국 이후 참으로 눈부신 발전과 성장을 거듭해왔으니 이는 주관적 평가가 아니라 객관적 평가라 해도 절대 무방하다. 정말 자랑스럽다. 나 호호당이 이런 나라에 태어난 것만 해도 고맙고 또 고맙다.
우리의 성공 배경
그럼 이 대목에서 어떻게 해서 이처럼 대단한 선진강국이 만들어졌을까? 하는 점에 대해 생각해보자.
무엇보다도 미국이다. 미국은 의도를 떠나 우리에게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미국의 恩澤(은택)은 크고 또 크다. 미국이 일본과 독일을 꺾어놓았기에 우리 대한민국이 식민통치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또 한국전쟁에서 우리를 버리지 않았기에 공산화의 길을 모면할 수 있었다. 나아가서 자국의 거대한 시장을 열어주었기에 우리는 수출을 통해 성장의 동기를 얻고 발전의 길에 나설 수 있었다.
우리가 갔던 길은 미국에게 패한 일본이 2차 대전 이후 밟았던 길이다. 輸出立國(수출입국)이 그것이다. 더불어 미국이 소련을 꺾어놓았기에 우리는 글로벌 전체로 수출시장을 열 수 있었다.
거기에 산업발전의 기초를 다져놓은 영웅 박정희, 민주화의 길을 개척한 김영삼과 김대중, 마지막으로 민주화를 공고히 한 노무현이란 걸출한 지도자가 우리에게 있었던 것 역시 엄청난 행운이다. 물론 그 이면엔 1980년대의 군부정권에 대해 민주화로의 이행을 압박했던 미국이 있다.
미국은 또 일본을 압박해서 우리에게 1960년대와 1980년대, 이렇게 두 번에 걸쳐 ‘종자돈’을 대주었으니 이 점 또한 절대 잊어선 아니 될 일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전쟁을 통해 우리 자체의 기득권이 소멸되었다는 점 또한 대단히 중요하다. 신분상승의 길이 열린 결과 누구나 노력만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난 것이다. 이에 우리 대한민국의 모든 구성원들은 저마다의 재능과 노력을 아낌없이 분출시킬 수 있었다. 이는 실로 전 국민의 總力發展(총력발전)이었다.
전체적으로 말하면 오늘의 강성한 대한민국은 미국이 글로벌 패권을 쥐는 과정에서 그들의 의도를 떠나서 만들어진 대단한 성과이자 결과라고 하겠다. 미국 스스로도 정말 자랑스러울 것이다.
중국 문제의 등장
이제 우리는 과거 한 때 선망의 대상이던 이웃의 일본을 여러 면에서 따라잡았으며 부분적으론 앞서고 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났으니 서해 바다 저쪽의 중국이 놀라운 속도로 발전을 거듭한 결과 이젠 강대국의 위상을 동아시아 지역 전체에 과시하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중국 문제’이다.
중국은 시진핑 체제가 들어서자 중국몽을 슬로건으로 우리와 일본, 그리고 동남아시아 일대가 속한 서태평양 지역에서 이젠 우리가 접수할 터이니 미국더러 물러가라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우선적으로 석유가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보이는 남중국해의 스프래틀리 군도, 종전에 남사군도라고 불리던 암초 지역을 기지화하고 주변국들에게 대해 으름장을 놓으면서 분쟁지역을 만들었다.
하지만 중국의 패권 도전은 자체의 통일 문제에서부터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홍콩과 마카오를 넘겨받으면서 내걸었던 一國兩制(일국양제), 공산당의 권위를 인정하면 기존의 자본시장경제는 장기간 그대로 두겠다는 약속은 홍콩의 사례에서 보듯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자 한 때 중국과의 원만하고 평화로운 통일을 기대했던 대만이 태도를 바꾸어 독립을 모색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중국은 급기야 대만과의 무력통일까지 검토해야 할 판이니 이는 중국의 실패이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의 무력침공 시 개입할 것을 표명했다.
이에 미국은 인도와 일본, 호주 등과 함께 만들어놓은 4개국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를 유럽지역의 NATO와 같은 공식 안보동맹으로 만들어가는 한편 여타 나라들의 동참을 권유하는 쿼드 플러스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뿐만 아니라 유사시 중국에 대항할 결정적인 수단으로 오커스(AUKUS)를 만들었다. 제2차 대전 이래 태평양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영국이 최신 항공모함 전단을 싱가폴에 상시 배치했고 영미 양국이 호주의 공격형 핵잠수함 건설을 지원하고 나섰다. (영국이 돌아왔다는 점은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미국의 對(대)중국 전략
그리고 얼마 전 미국 국무장관 토니 블링컨은 대단히 결정적인 발언을 했다. 중국을 둘러싼 전략환경을 통째로 바꾸어 놓겠다는 말이 그것이다.
이 말의 내용인 즉 우리 미국이 너희 중국과 전쟁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당장 저가의 메이드 인 차이나 물품이 없으면 미국 또한 곤란하기에 그런 정도의 교역은 얼마든지 이어가겠다, 하지만 중국이 첨단 산업의 제조국이 되어 고삐를 쥐는 일은 절대 방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미국이 소련간의 냉전 체제가 아니다. 중국 주변을 움직여 압박하는 전략, 마치 이는 최근 세계축구의 조류인 “전방압박” 전략을 가동하겠다는 것과 같다. High Pressing!
이에 첨단제품생산의 脫(탈)중국화를 뜻하는 용어들이 등장하고 있다. 니어-쇼어링(Near-shoring)이라든가 또는 리쇼어링(reshoring)이 그것이다.
우리의 입장
그러니 우리에겐 북핵 문제와 더불어 또 하나의 커다란 문제, 즉 중국 문제가 생겼다. 중국은 우리의 중요한 교역 상대인 까닭이다.
먼저 방위 문제부터 우리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렇다. 우리는 당분간 쿼드에 공식적으로 참여하진 않을 것이다. 그건 중국과의 교역에 지나친 부담이 된다. 그리고 참가할 이유도 거의 없다. 우리와 미국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해놓고 있어서 유사시 미국이 동맹국들과 함께 중국에 전쟁에 돌입할 경우 거의 즉각적으로 참전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
(사실 이런 말은 나 호호당과 같은 재야의 사람이나 입 밖에 낼 수 있지, 어느 정도 책임 있는 자리의 인사라면 감히 입도 뻥긋하지 못할 것이라 본다.)
미국은 우리에 대한 미사일 사거리 제한을 풀었다. 이에 유사시 중국 해안과 함대를 공격할 수 있는 각종 현무 미사일의 실전 배치는 물론이고 극초음속 공대함 또는 공대지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우리이다. 게다가 일종의 미국의 동맹국 인증마크라 할 수 있는 F-35 스텔스 전폭기 도입은 물론이고 미국은 우리에게 최신의 고성능 전투기엔진을 제공함으로써 첨단의 KF-21 전투기를 생산할 수 있도록 했다.
경제면에서 보면 첨단 반도체나 부품의 중국 수출이나 중국 내 생산은 이제 제동이 걸렸다. 미국이 전략통상품목, 즉 금지품목으로 지정한 것이다. 이는 경우에 따라 향후 우리 경제에 상당한 부담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속단할 순 없는 것이 그와 반대로 중국의 첨단산업 발전에 제동이 걸릴 경우 우리에겐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있어 중국 문제는 북한 문제와 더불어 장기에 걸친 커다란 숙제이자 난제가 되고 있다.
마무리가 아닌 마무리로 끝을 맺게 되니
이 대목에서 독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마무리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마무리 글에서 하고자 했던 말은 적어도 향후 20년 정도를 내다보는 예측인데 그 내용을 그대로 털어놓기가 현재로선 지나치게 이른 시점인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글은 미완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