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북한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사실을 처음 인정하며 '최대 비상방역체계'에 돌입한 가운데 국제 보건 전문가들은 북한에 백신이 아예 없다는 점에서 특히 우려하고 있다고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북한은 아프리카 에리트레아와 함께 지구촌에 둘뿐인 코로나19 백신 미접종 국가이다.
가난한 동시에 잔혹한 정부가 이끈다는 공통점을 지닌 이 두 나라는 국제사회의 백신 공유 프로그램에 참여를 거부한 탓에 이들 나라의 주민들은 오미크론 등 빠르게 확산하는 코로나19 변이에 취약한 상황에 처했다고 WP는 평가했다.
미 워싱턴 소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국제보건정책센터 J. 스티븐 모리슨 소장은 "엄청난 면역 공백에 백신이나 이전 감염으로 인한 후천적인 보호책이 전혀 없다는 점이 겹치며 북한은 '통제 불가능한 전염'에 고스란히 노출됐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는 새로운 변이의 (출현) 확률도 극대화된다"고 우려했다.
북한 김정은 앞에 놓인 마스크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8차 정치국회의가 12일 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소집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발생 문제를 논의하는 이 자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에 마스크(빨간 동그라미)가 놓여 있다. 2022.5.12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nkphoto@yna.co.kr미 웨일 코넬 의대의 미생물·면역학 전문가인 존 P.무어 교수는 북한이 봉쇄를 통해 전염을 제한하지 못한다면 "인구의 상당 비율이 곧 감염될 것"이라며 "주민에 대한 정권의 장악력에 영향을 미치게 될 정도로 인명피해가 엄청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과 에리트레아 두 나라 모두에서 지배층들은 이미 백신을 맞았고, 외국산 백신에 대한 묵살은 단지 '보여주기용 쇼'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오랫동안 독재 정권을 유지해온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 에리트레아 대통령은 코백스(COVAX·국제 백신 공동 구입 프로젝트)에 가입하라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의 요청을 무시해왔다. 에리트레아에서는 코백스가 아프리카를 파괴하려는 서방의 수단이라는 선전이 만연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경우 코백스가 올해 아스트라제네카가 제조한 코로나19 백신 128만8천800회분을 배정했으나, 부작용에 대한 우려로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북한은 또한 중국산 시노백 백신 약 300만 회분도 팬데믹이 심각한 다른 나라에 주라면서 인수를 거부했다고 WP는 지적했다.
코백스를 지원하는 비영리기관인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관계자는 현재로선 북한에 배정된 백신이 없다면서도, 북한이 국가 차원의 백신 프로그램을 추진한다면 접종 목표 달성을 도울 수 있다고 밝혔다.
WP는 북한이 백신 이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중국이나 홍콩처럼 부분적으로나마 백신 접종이 이뤄진 곳에서도 오미크론 변이가 백신 미접종자들 사이에서 놀라우리만큼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북한의 가장 중요한 우방인 중국은 오미크론보다 전파력이 더 강한 '스텔스 오미크론'(BA.2)의 창궐로 최대 경제 도시인 상하이까지 전면 봉쇄하는 등 사투를 벌이고 있다.
미국 외교협회(CFR) 옌중황 국제보건 선임 연구원은 "중국 자체도 오미크론 변이의 확산 앞에 힘겨운 상황"이라며 "중국이 북한의 코로나19 대처를 돕기 위한 강력한 장려책을 지니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WP는 중국이 현재 고수하고 있는 '제로 코로나' 정책을 완화할 경우 사망자가 150만명에 이를 것이라며 북한의 경우 사정이 중국보다 더 심각할 것으로 내다봤다.
무어 교수는 "북한에서는 최소한의 백신만이 접종됐기 때문에 (상황이) 훨씬 더 나쁠 것"이라고 내다봤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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