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에 벼슬하지 않았으니 사직을 위해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매천이 남긴 유서에서 의리는 요즘과 다른 뜻으로 쓰이고 있다. 매천의 의리는 의무다. 의무duty는 짐을 지듯이 부담을 지는 것이다. 의리는 부담을 나누어지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함께 물건을 운반한다. 내가 손을 놓아버리면 그 부담이 다른 사람에게 간다. 다른 사람이 손을 놓으면 부담이 내게로 온다. 내가 하지 않으면 남이 해야 하고 남이 하지 않으면 내가 해야 한다. 그것이 의리다.
사람이 물에 빠졌는데 아무도 구하지 않으면 내가 구해야 한다. 목봉체조를 하는데 한 사람이 요령을 부리면 그 부담이 다른 사람에게 간다. 의리는 거창한 이데올로기나 도덕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물리적 현실이다.
글자 배운 사람은 달라야 한다. 의리를 알고 의무를 다해야 한다. 내가 힘을 쓰지 않으면 조국이 죽는다. 나 대신 누군가 죽는다. 우리는 어떤 고정된 목표나 그럴듯한 이상을 버려야 한다. 그것은 대중을 동원할 의도로 꾸며낸 말이다. 사람을 낚는 기술이다.
우리는 노동자를 위해서도 아니고, 농민을 위해서도 아니고, 자유를 위해서도 아니고, 평등을 위해서도 아니고, 평화를 위해서도 아니고, 행복을 위해서도 아니고, 쾌락을 위해서도 아니라야 한다. 그 무엇도 위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무거운 짐을 지고 함께 강을 건너간다. 우리가 함께 짊어진 부담에 의하여다.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요령 부려서 다른 사람이 나 대신 희생당하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축구 선수는 분별하여 상대방 골대에 슛을 해야 한다. 골대를 잘못 보면 시합에 진다. 무사는 칼을 이겨야 하고 운전수는 핸들을 쥐어야 한다. 지성인은 집단을 대표해야 한다.
글자 읽은 사람은 가야 할 길은 인간의 내부에 잠재한 가능성을 끌어내 보이는 것이다. 시인은 영혼을 끌어내고 음악가는 흥을 끌어내고 화가는 센스를 끌어낸다. 그들은 인간 내부에 잠복하여 있는 것을 드러내 보인다. 인간에 대한 많은 오해를 풀게 한다.
자동차에 첨단 옵션이 있어도 사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인간의 본성을 모르고 잘못된 길을 가면 실패한다. 함께 부담을 나눠지고 있음을 모르고 혼자 요령을 부리면 다 같이 죽는다.
인간의 잘난 부분을 끌어내는 것이 지성인의 임무다. 인간의 못난 부분은 가만 놔둬도 무당세력이 전시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게임 속에 들어와 있다. 인간의 잘난 요소와 못난 요소가 대결하되 결말은 잘난 요소의 승리다. 히어로와 빌런이 대결하되 결말은 히어로의 승리다. 그것이 지식인의 존재이유다.
막연히 사랑하라거니 용서하라거니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행복도, 쾌락도, 성공도, 명성도, 장수도, 건강도, 출세도 의미가 없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거는 기술에 불과하다. 말을 걸기 전에 이미 부담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사랑과 평화와 행복을 외치며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가지만 실제로는 물리적으로 부담이 걸려 있어서 행동하게 된다. 기득권들이 똘똘 뭉치는 이유는 물리적인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들은 막대한 돈과 권력을 함께 짊어지고 있다.
인간을 탈탈 털어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함께 부담을 짊어지고 물을 건넌다는 사실을 알게 해야 한다. 짐승의 길을 버리고 인간의 길을 가는게 중요하다.
군자는 소인배와 대화하지 않는다. 매천은 악한 사람 미워하기를 원수처럼 했으며, 오만스러운 기백이 있어 남에게 허리 굽혀 복종하지 않았다고 한다. 황희 정승이 뭔가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말했다. 그래. 네 똥도 굵다. 소인배와는 절대 대화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바퀴가 걱정되어 살살 도는 엔진은 소용이 없다. 엔진은 바퀴를 무시한다. 바퀴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최대한의 마력과 토크를 끌어낸다. 엔진이 가는 속도에 맞추어 바퀴가 따라와야 한다. 지성은 엔진이다. 짐승도 바퀴 역할을 한다. 그들은 구르는게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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