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가격이 거의 오르지 않는 달걀은 '물가 우등생'으로 불린다. 2021년 달걀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02.4(2020년을 100으로 봄)로 1985년보다 10% 올랐다. 하지만 같은 기간 16% 오른 종합물가지수에 비하면 체감가격은 오히려 떨어졌다.
도쿄도내 슈퍼마켓에서 달걀 10개들이 한팩은 148엔(약 1460원)에 팔린다. 한국 이마트의 '1+등급란' 10개들이의 가격은 3980원이다. 도쿄의 달걀 가격이 이마트의 3분의 1 수준인 셈이다.
물가 우등생은 달걀 뿐이 아니다. 원자재값 급등의 영향으로 올들어 물가가 크게 오르지만 대부분의 소비재 가격은 30년째 제자리다. '살인적인 물가'의 대명사였던 일본은 어쩌다 '저렴한 나라'가 된걸까.
최근 일본에서는 '일본인의 소득이 30년간 오르지 않아서 물가도 제자리'라는 소비 측면의 분석이 주를 이룬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4일 '싼 일본'의 원인을 공급 측면에서 분석했다. 이 신문은 "과잉생산과 과잉판매로 인해 소비재 가격이 만성적인 인하압력을 받기 때문"이라고 요약했다.
달걀의 경우 일본 인구가 매년 줄어드는데도 연간 생산량은 260만t으로 일정하다. 달걀값이 떨어지면 정부가 보조금을 주기 때문에 양계업자는 생산량을 조절할 필요를 못느낀다.
달걀은 슈퍼마켓 특별할인 상품의 단골 메뉴다. 크기에 비해 저렴한 가격 때문에 소비자들이 '싸게 샀다'는 만족감을 느끼기 쉬운 상품이기 때문이다. 약국(드러그스토어)이 달걀을 특가상품으로 팔기까지 한다. 생산업자의 과잉 생산과 소매점의 과도한 경쟁은 달걀 뿐 아니라 대부분의 소비재에 해당한다.
영국 조사회사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1년 일본의 소매점포수는 83만1088곳이었다. 인구가 일본의 3배인 미국은 91만8370곳이었다. 점포 1곳당 인구가 미국은 360명인데 비해 일본은 150명이었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2016년 조사에 따르면 일본 소매업의 판매면적은 1억3534만㎡로 1991년보다 23% 늘었다. 반면 소매업의 전체 판매금액은 3% 늘어나는데 그쳤다.
같은 상권에 여러 개의 슈퍼마켓이 일상적으로 출혈경쟁을 벌이는 이유다. "다른 가게보다 비싼 상품이 있으면 알려주세요"라며 지역 최저가 보장을 약속하는 슈퍼마켓의 광고 전단지는 일상이다.
가격인상에 극도로 민감한 일본인들의 소비습관도 만성 디플레의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 30년간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가 2% 수준까지 오른 것은 1997년, 2014년, 2019년 등 3차례였다. 일본 정부가 소비세율을 인상한 해다.
소비세 인상폭은 2~3%에 불과했는데도 슈퍼마켓 등 소매판매점 매출은 급감해 회복에 1년 이상이 걸렸다. 소비세 인상의 트라우마 때문에 일본의 소매점들은 원가 인상분을 가격에 전가하기를 극도로 꺼린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올초부터 일본 물가가 가파르게 올랐지만 일본 최대 유통회사 이온은 최근 자체브랜드(PB) 상품 가격을 동결했다.
소매판매 업체가 생산업체나 도매상보다 '갑'인 일본의 유통구조는 과잉생산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가격협상의 키를 쥔 소매업체는 실제 필요한 양보다 넉넉하게 주문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생산업체의 과잉생산을 유발하는 한편 판매 현장에서는 출혈경쟁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한 슈퍼마켓 대표는 "과잉생산과 과잉점포 해소 없이 물가는 오르지 않지만 누구도 손을 쓰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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