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은 '선한 지도자'를 넘어설 것인가
[기고} 선한 대통령 vs. 낯선 정치인
2021년 4월 청와대 정무수석에서 물러나는 최재성 수석은 이임 인사에서 "국민들이 잘 모르시는 거 같은데 참으로 선한 정부와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감회를 밝혔다.
지난 11일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적폐수사' 발언을 "금도를 넘은 정치보복 발언"이라고 규정하면서 "대통령의 선한 의지가 배신당했다"고 개탄했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문재인 후보 주변에서 차기 정부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중 등장한 것이 바로 '선한 정부' '선한 지도자'였다. 후보는 이에 대해 긍정적이었으나 아마도 주변에서는 유약하게 보일 수 있다는 점과 국민은 강한 지도자를 원한다는 이유를 들어 공식적으로 채택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청와대 인사 다수의 발언에서 드러나듯 '선한 정부'는 문재인 청와대의 최우선의 가치로 자리 잡은 듯하다.
선한 정부를 지향한다는 점 외에 문재인 국정의 특징은 원칙과 제도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점이다. 사람 중심이 아니라 시스템 중심이다. 당 대표 시절부터 지켜온 원칙이다. 자기 사람이 잘려 나가더라도 절대 개입하지 않는, 단호하면서도 조금은 매정하게 보이기까지 한 원칙주의다. 국민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으로서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이양받았음에도 모든 국정은 각 부처에 맡기고 답답하리만큼 청와대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려했다.
훌륭한 국정 기조이겠으나 실상 국민이나 지지자 입장에서는 속 터지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가덕도신공항이나 검찰개혁이 그러한 경우가 되겠다. 국가정책임에도 불구하고 부처 공무원이 왜곡 보고를 하거나 저항을 하더라도 청와대는 개입하지 않고 부처가 책임지고 해결하도록 했다. 최근 추경 논란과 관련해 민주당에서는 홍남기 부총리 경질을 요구하고, 국민들 사이에선 "우리가 대통령으로 홍남기를 뽑았나" 하는 원성이 들릴지언정 자신이 임명한 각료에게 무한 신뢰를 보내는 사람이 바로 문재인이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잉태한 비극
한국정치의 오래된 문제는 과도하게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 즉 '제왕적 대통령제' 논란이었다. 부처별 책임운영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방식은 당연히 바람직하면서도 과감한 시도라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국정운영 방식의 정착은 또다른 의미 있는 진전을 보기도 했다. 최재성 전 정무수석은 "이 정부는 적어도 과거 정부에서는 있었던 소위 권력 싸움이 전혀 내부적으로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이 굉장히 특이했다"고 했는데 실제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른바 '실세 논란'이 전혀 없었다. 모든 국정운영이 규정과 시스템에 근거했기에 과거 정부에서처럼 특정 인사가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의 경계를 넘나들며 개입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한 정부를 지향하고 책임 운영에 기반 한 국정운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필수적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인간에 대한 믿음과 신뢰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이 임명한 자에 대한 무한대의 신뢰를 가진다. 그래서 나라가 논란으로 들끓는 와중에도 "윤석열 검찰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며 신뢰를 거두지 않았고 윤석열도 "(대통령이) 적절한 메신저를 통해서 흔들리지 말고 임기를 지키면서 소임을 다하라는 뜻을 전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윤석열 후보가 결국 임명권자의 믿음을 져버렸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사실 우리나라는 제도가 문제인 경우는 드물다. 제도는 대부분 훌륭하다. 문제는 항상 사람이었다. 경제적으로는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아직도 선진국에 비해 '저신뢰사회'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어쨌든 문재인 정부의 비극이 결국 인간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면 너무 가혹한 것일까.
그러한 측면에서 마키아벨리적 지도자상에 대한 고민이 접목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통치자의 윤리와 국민의 윤리가 같을 수 없듯, 때로 정치에서 도덕과 윤리를 분리시킬 필요가 있다. 인간에 대한 신뢰도 보다 다차원적 검증이 전제되어야 하지 않을까. 만약 그랬다면 "검찰개혁에 동의한다, 나는 천직이 검사다, 정치하지 않는다" 같은 윤석열의 기만적 다짐이나 "보수적이지만 정치중립적이고 비정치적 인사"라는 최재형에 대한 보고도 다르게 판단하지 않았을까.
처음 보는 낯선 정치인 이재명
많은 이들이 이재명이 대권을 잡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는 물론 단절이 필요하다고 한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 두 사람의 성향이나 스타일은 모든 게 다르고 상당 부분 정반대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뢰를 바탕으로 구성원 간 융화를 중시한 온화한 지도자형이다. 리더쉽 형태로는 관계지향의 리더쉽이다. 반면 이재명은 철저하게 과제지향적 정치인이다. 또 문 대통령은 정치성향 측면에서는 진보적 색채를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낸 정치인이다. 그러나 이재명은 이념보다는 민생과 특히 서민을 우선시 하는 실용주의자다.
이재명은 경제부문 TV토론에서 심상정 후보와의 설전에서 드러났듯 진보적 이념의 틀에서 사고하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현장과 실천을 염두에 두고 판단한다. 유시민은 이재명을 두고 "처음 보는 유형"이라고 표현했다. 민주당이 세 명의 대통령을 배출했지만 그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고 이념의 울타리도 없이 막 넘나드는, 낯선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그의 정치적 성장과정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한국정치의 변방인 성남에서 단기필마 기초단체장으로 출발했던 그는 민생 중심의 추진력으로 승부해왔다. 사실은 경이적 돌파력이다. 많은 이들에게 "일은 이렇게 하는 거야" 교훈을 주듯 연이어 성과를 만들어가며 드디어 집권당 대선후보를 손에 넣었다.
이러한 추진력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 바로 '현장 중심적 사고'와 '끊임없는 몰입'이다. 하나의 과제 해결을 위해 끊임없이 사고하고 고민하여 그 해법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능력 말이다. 이렇게 해서 모라토리움, 지역화폐, 무상교복, 청년배당 등의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고 이는 한국정치의 변방인이었던 그의 극적인 부상을 가능케 한 정치적 생존능력이다.
무엇보다 이재명을 다른 지자체장들과 가로지르는 중요한 기준이 있다. 특히 이는 부처별 책임행정을 강조하며 최대한 개입을 자제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지점이다. 그게 무엇? 쟁점이 드러나고 그 해결이 난망할 때 본인이 직접 이해당사자들과 맞대면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지자체장들은 주민과의 갈등이 일어나면 공무원들이 해결한 후에야 현장에 가서 악수하고 사진 찍는 반면 경기도지사 시절 계곡정비에서 보듯 그는 갈등의 한복판 현장에서 주민들을 직접 상대한다. 그는 현장주의자면서 실전주의자다. 유시민의 말대로 누구와도 닮지 않은, 처음 보는 낯선 정치인이다.
'이재명 스타일,' 결국 기회를 얻을 것인가
또 하나의 대비점이 있다. 윤석열 후보는 공식 선거일 첫날부터 "나는 빚 진 사람이 없다"고 유세장에서 외쳤다. 왜 없겠나. 차관급 출신(검찰총장은 예우만 장관급)이 제1야당 대선후보가 되었으니 빚 진 사람이 수두룩하고 정치는 물론 경제, 사회, 외국, 국방에 식견이 부족하니 앞으로 신세 질 사람이 산더미일 것이다.
사실 문재인 대통령도 당 대표가 되기 위해, 호남에 구애하기 위해, 특히 대선에 두 번이나 나서는 바람에 강산이 변하는 동안 쌓인 신세가 동네 뒷산만큼은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문재인 1기 내각 장관급 18명 중 13명이 60대였고 평균 연령도 61세로 박근혜 내각의 59세보다도 높았다. 시대적 트렌드는 물론 청년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차원에서 이재명은 홀가분하다. 그의 측근그룹이라는 이른바 7인회도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임명직을 맡지 않겠다며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민주당 내 586그룹도 용퇴론 분위기 때문인지 다수가 6월 지방선거나 당대표 선거에 나설 채비 중이라고 한다. 이재명이 당선되면 당 내에도 상당한 공간이 생길 듯하다. 내각도 전문가 발탁이 더 용이해질 것이고, 상당 수준 젊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온화한 리더쉽의 선한 지도자와 과제지향의 실용적 리더쉽.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평가는 나중의 몫이다. 한국사회가 위기가 아닌 적이 없지만 작금의 상황은 마키아벨리가 언급했듯 여우와 같은 지혜와 사자와 같은 힘을 사용하여, 과정보다는 결과에 책임지려는 자세의 지도자가 왠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도 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짧다. 지금 이 접전 열세의 판국을 그가 또다시 돌파해 낼 수 있을까. 그건 온전히 그의 몫이다. 국민은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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