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동훈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배우자 김건희씨측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 등을 밝힌 통화 녹음 중 일부가 방송을 통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대통령 후보의 배우자인 김씨를 '공인'으로 봤고 그가 말한 정치적 견해는 유권자들이 이번 대선에서 후보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 자료가 될 수 있어 '공익'에 기여할 수 있다고 봤다.
◆수사 관련 대화 공개는 진술거부권 침해=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21부(수석부장판사 박병태)는 14일 김씨가 자신과 기자의 7시간 분량 통화녹음 파일을 공개할 것으로 알려진 MBC를 상대로 낸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 중 수사 중인 사건에 관한 발언과 정치적 견해와 관련없는 사적 대화 등에 대해 방송해서는 안된다는 취지로 일부 인용 결정을 내렸다.
법원은 "채권자(김씨)와 관련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한 채권자의 발언이 포함된 것으로 보이는바, 향후 채권자가 위 사건에 관하여 수사 내지 조사를 받을 경우 형사절차상 보장받을 수 있는 진술거부권 등이 침해될 우려가 커 보이는 점이 있다"며 이같이 판단했다. 이어 "이 부분에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 내지 발언 등을 한 언론사 내지 사람들에 불만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다소 강한 어조로 발언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이러한 발언에 대해서는 유권자의 적절한 투표권 행사 등에 필요한 정치적 견해 등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날 가처분 신청을 일부 받아들였지만 김씨가 신청한 부분 중 수사 관련이나 사생활, 언론사나 사람들에 불만을 나타낸 부분 등과 이미 MBC가 방송하지 않기로 한 사적 대화 부분 등을 제외한 다른 부분의 방송은 허용했다.
국민의힘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해 7월∼12월 초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 촬영 담당인 A씨와 10∼15회 통화했다. MBC는 A씨로부터 이들 통화를 녹음한 파일을 넘겨받아 오는 16일 오후8시20분 탐사기획 프로그램 '스트레이트'를 통해 방송을 준비 중이다. 음성 녹음 파일이 조만간 공개된다고 보도한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7시간 분량의 음성 파일에는 문재인 정부 비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검찰수사, 정대택 씨 국정감사 증인 불출석 등에 대한 내용이 포함됐다.
◆대선 후보 배우자는 공인=
법원은 대선 예비후보로 등록한 윤석열의 배우자로서 '공적 인물'에 해당한다고 보고 MBC의 보도가 유권자의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는 '공익'에 기여하는 내용이 될 수 있다고 봤다. 또 김씨가 정치적 견해 등을 밝힌 부분에 대해서는 사적영역이라고 볼 수 없다며 김씨측이 제기한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의 필요성을 소명하기 힘들다고 봤다. 또한 법원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견해, 정치적견해는 공적 관심사안에 해당하는 것으로 사회의 여론형성 내지 사회적 이슈에 대한 공개토론 등에 기여하는 내용이라고 봄이 상당하다"며 "단순히 사적영역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한 녹음파일 취득 과정도 위법하지 않다고 봤다. 이날 김씨측은 "녹음파일은 윤석열에 반대하는 성향을 가진 A기자가 여러가지 의혹 등 부정적인 언론기사로 인해 심신이 약해진 김씨에게 고의로 접근해 사적대화를 녹음한 것이 위법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 대화'의 녹음, 청취 등 내용을 금지하는 것인데 해당 녹음파일은 A기자와 김씨의 대화를 녹음한 것이므로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 대화'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MBC를 항의 방문한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원내지도부가 14일 서울 상암동 MBC 앞에서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제지당하고 있다. 이날 MBC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 씨의 '7시간 통화 녹음' 내용을 보도한다고 예고했다./국회사진기자단
◆통화 당사자간 녹음, 위법 아니다=
여기서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 대화'는 대화 당사자인 B와 C의 대화 내용을 제 3자인 D가 통화자 모두의 동의를 얻지 않고 녹음하는 경우와 B와 C 중 어느 일방만의 동의를 얻은 경우에 해당한다. 대화 당사자 간에 어느 일방이 녹음한 것은 설사 그 사람 모르게 녹음했다고 하더라도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제1항에 위반되지 않고, 민형사상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이에 근거해 법원은 통화 당사자인 김건희씨와 A기자의 대화를 A기자가 녹음한 것이므로 위법하지 않다고 본것이다.
이어 법원은 "MBC가 녹음파일 취득 과정에서 어떤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다"며 "녹음파일에 대해 공공기관이 이용하는 포렌식 조사 업체 등을 통해 조작·편집되지 않은 점을 확인한 것으로 보이는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가처분 신청은 결정이 나왔지만 김씨의 통화를 둘러싼 법적 공방과 논란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법원이 인용해 방송 금지된 내용과 방송사가 스스로 방송하지 않겠다고 밝힌 내용은 출처를 알 수 없는 문서 등을 통해 온라인으로 퍼지고 있다.
김씨 측 대리인은 이날 심문에서 MBC가 방송을 강행할 경우 김씨의 명예와 인격권이 회복될 수 없다며 MBC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와 형사 고소를 할 방침이라고 언급했다.
또 국민의힘 측은 이번 가처분 신청과 별개로 김씨 통화 상대방인 이씨와 서울의소리, 여권 성향 유튜브 채널인 열린공감TV 등에 대해서도 서울중앙지법에 녹음파일 공개 금지 가처분을 신청한 상태다. 아울러 이씨를 형사 고발한 데 이어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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