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강영진 입력 2021. 11. 04. 09:29
NYT, 서방 문화 소비자에서 문화수출국 전환 비결 탐구
"매출 작지만 영향력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사회성 짙은 드라마·K팝 넷플릭스·유튜브로 전세계 장악
[서울=뉴시스] 정병혁 기자 = 완연한 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있는 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을 찾은 시민들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 영희 동상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2021.11.01. jhope@newsis.com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한국의 영화와 TV드라마, 아이돌 그룹이 세계를 제패하기까지 한국의 감독들과 제작자들이 미국 할리우드 등 전세계 엔터테인먼트 허브를 장기간 연구하고 한국적 감각을 덧입히는 인고의 시간을 거쳤다고 미국의 뉴욕타임스(NYT)가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 결과 넷플릭스처럼 공간적 장애가 없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한국은 서방 문화의 소비자에서 대중문화 거인 및 주요 문화 수출국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NYT는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영화 "기생충"이 외국어 영화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으면서 전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전세계의 최고의 밴드는 아니더라도 분명 최고의 밴드들 중 하나가 된 BTS도 있다고 소개했다.
또 넷플릭스는 최근 몇 년 사이 80편에 달하는 한국 영화와 TV드라마를 소개했으며 이는 2016년 넷플릭스가 처음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할 당시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라면서 지난 2일 현재 넷플릭스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10개의 TV드라마 가운데 3편이 한국 드라마라고 NYT는 전했다.
넷플릭스의 히트작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사랑의 불시착" "스위트 홈"의 장영우 공동제작자 겸 공동감독은 이들 드라마를 만들면서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우리는 그저 최대한 재미있게 만들려 애썼을 뿐이다. 우리가 만들어 온 감정 경험을 먼저 이해하고 지지한 건 전세계"라고 밝혔다.
드라마 '불가살: 죽지 않는 영혼'을 제작중인 서지원씨는 자기 세대가 미국의 TV 드라마 '600만달러의 사나이' '마이애미 바이스' 등을 보면서 "기본"을 배우고 한국적 색채를 가미하는 실험을 해왔다면서 그 덕분에 "넷플릭스와 같은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가 TV드라마 배포에 혁명을 일으킬 때에 맞춰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의 문화산업 비중은 반도체같은 핵심 산업에 비하면 아직 규모가 작지만 한국에 측정하기 힘들 정도의 영향력을 부여했다. 지난 9월 옥스폭드 사전은 "한류(hallyu)"와 같은 한국에서 기원한 26개 단어를 사전에 올렸다. 북한은 K팝을 "해로운 암덩어리"라고 비판하고 중국은 K팝 그룹 10여팀의 팬계정을 "불건전한" 행위를 이유로 소셜미디어에서 삭제했다.
한국이 문화적 실세로 자신의 체급보다 훨씬 강력한 펀치를 날리는 능력은 중국의 국가주도 캠페인과 대조적이다. 한국 예술가들을 검열하던 당국자들은 엉성했던 반면 정치인들은 대중예술인을 군입대를 유예하는 법안을 만드는 등 대중문화를 장려했다. 이달 들어 당국은 넷플릭스가 서울 올림픽공원에 거대한 "오징어 게임"동상을 설치하는 것을 허가했다.
이같은 폭발적 성장은 하룻밤새 이뤄진 것이 아니다.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 최고 인기 드라마가 되거나 BTS가 유엔에서 공연하기 오래전부터 '겨울 이야기'와 같은 드라마와 빅뱅이나 소녀시대와 같은 밴드가 아시아 시장을 넘어 세계시장으로 진출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전세계를 석권하지는 못했고 사이의 '강남스타일'만이 예외였다.
한국 최대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사의 김영규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스토리를 즐기고 재미있는 스토리가 많다. 그렇지만 국내 시장은 너무 좁고 경쟁이 치열하다. 세계로 나가야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같은 노력이 처음 결실을 맺은 건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으로 전세계 관중의 주목을 끌면서부터다. 그 이전에도 한국에서는 비슷한 수준의 영화가 여러편 만들어졌다.
강남대학교 강규정 교수는 "넷플릭스나 유튜브와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게 되면서 한국을 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이전에는 소수의 전국방송사들이 한국의 TV산업을 좌우했지만 스트리밍 서비스와 스튜디오드래곤 같은 독립 스튜디오에 밀려났으며 이를 통해 국제시장을 노리는데 필수적인 재정적, 예술적 자유가 가능해졌다.
한국은 영상매체 콘텐트에 대해 폭력성이나 심한 노출을 규제하지만 넷플릭스 드라마는 한국 TV방송에 등장하는 드라마보다 훨씬 덜 통제된다. 제작자들은 또 한국의 엄격한 검열관련 법령 때문에 더 상상력을 많이 발휘해야 했고 이를 통해 호소력 있는 배역과 각본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영상은 종종 "신파"조가 되는 경우가 있고 주인공들은 약점이 많은 경우가 보통이지만 일반인들은 가능하지 않은 상황설정에 매료되며 사랑, 가족, 타인에 대한 배려 등의 가치에 감동을 받는다. 감독들과 제작자들은 모든 배역들이 "사람 냄새"가 나도록 하기 위해 애를 쓴다고 말한다.
한국이 전쟁과 독재, 민주화, 빠른 경제성장을 거치는 과정에서 예술인들은 사람들이 보고 듣길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고 특히 사회적 변화와 관련된 것들이 소구력이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히트작들은 소득 불평등이 만들어낸 절망, 계층 갈등과 같은 일반인들의 삶을 다룬 것들이다.
'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의 2011년 데뷔작 영화 '도가니'는 실제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벌어진 성학대사건을 다룬 것이다. 이 영화가 촉발한 사회적 분노가 정부가 전국의 장애인 학교에서 성학대 기록이 있는 교사들을 찾아내도록 만들었다.
K팝 가수들이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들의 음악은 한국적 특성인 저항 문화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2016년 이화여대 학생들의 교내시위가 전국적 소요로 확산하면서 시위대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다. GOD의 '촛불 하나'는 박근혜 정부를 축출한 "촛불 혁명"의 비공식 주제가였다.
한국의 청년 문화에 대한 책을 펴낸 작가 임명묵씨는 "한국 콘텐트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가 전투성"이라면서 "계층상승이 좌절된 사람들의 희망, 분노, 대중활동의 배경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팬데믹 때문에 겪는 엄청난 불안을 집에서 소화해내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전에 없이 이런 주제를 잘 받아 들이고 있다.
'K팝 아이돌들(K-pop Idols)'의 공동저자인 경일대학교 이학준 교수는 "한국 창작자들은 해외에서 인기있는 것들을 모방해 자기 것으로 만들어 더 재미있고 좋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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