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연구소 김동렬 2021. 07. 28
나는 독자들이 듣기 원하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명성을 탐하여 독자에게 아부하는 자들과 다르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말한다. 그 진실은 차갑다. 당장은 이득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그 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사건의 다음 단계가 있기 때문이다. 방향이 옳기 때문이다.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원인은 옳다. 그것이 방향성이다.
결과가 옳으면 이득이 따르고 원인이 옳으면 권력이 따른다. 권력이 사건을 연결하는 것이 의미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동물이다. 인생은 도달해야 할 어떤 목적지가 있는게 아니고 사건을 계속 연결하는 게임이다. 연결이 끊어지면 허무다. 허무를 극복하고 의미를 추구하여 계속 가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권력은 사건의 다음 단계에 영향을 미친다. 결과가 옳은 자는 이득을 취하면 그만이지만 원인이 옳은 자는 사건을 연결하여 끝까지 간다. 사건을 연결하는 자는 타인에게 말을 걸 자격이 있다. 그것이 의미다. 의미가 있다는 것은 이것을 고리로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당신에게 말하는 것이다.
신대륙으로 가는 길은 고되다. 신대륙에 도착하면 불행 끝 행복 시작이 아니다. 거기에는 또 다른 여정이 준비되어 있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사건의 다음 단계가 주어진다. 부단한 도전의 과정에 여러분의 실력이 늘어나고 경험치가 쌓인다. 사건을 연결하여 가는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나는 게임을 개설하고 여러분을 게임에 초대한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가지만 나중에는 모두가 간다. 누가 길을 만들어 놓으면 결국 사람들이 그 길로 가게 되어 있다. 이는 자연의 법칙이다.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사용하면서 과학의 시대가 열렸다. 망원경이든 현미경이든 사물의 외부를 볼 뿐이다. 구조론은 사건의 내부를 본다. 외부에는 관계가 있고 내부에는 구조가 있다. 대칭을 적용하여 외부의 관계를 뒤집으면 내부의 구조가 보인다. 여기에 방향이 있다. 외부냐, 내부냐? 상대적인 관계냐, 절대적인 구조냐? 결과냐, 원인이냐? 사물이냐, 사건이냐? 구조론은 내부를 보고, 절대를 보고, 원인을 보고, 사건을 본다.
갈릴레이의 망원경이 천동설을 지동설로 바꾸었다. 구조론은 사물의 관점을 사건의 관점으로 바꾼다. 무엇이 다른가? 방향이 다르다. 외부를 보는 자와 내부를 보는 자는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다. 거기서 중요한 것이 결정된다. 그리고 한 번 잘못되면 벼랑까지 계속 밀린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방향은 둘이다. 주체와 타자다. 철학의 알파와 오메가는 주체성과 타자성이다. 그게 전부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주체는 나고 타자는 남이다. 나냐 남이냐. 우리 편이냐 적군이냐다. 피아구분이다. 내 편은 돕고 적은 죽인다. 피아를 구분할 줄 아는 어른은 게임에 참가할 자격이 있다.
철학은 지식의 주입이 아니라 의사결정능력의 획득이다. 방향판단을 잘해야 한다. 한 번 잘못되면 계속 잘못된다. 한 번 몰리면 계속 몰린다. 사건은 서로 연동되기 때문이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가는 단계가 있다.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에 영향을 미친다. 몰리지 않으려면 갑이 되어야 한다. 원인이냐 결과냐다. 원인에 서면 갑이고 결과에 서면 을이다. 을이면 몰린다. 사건이냐 사물이냐? 주도하느냐 종속되느냐? 아군이냐 적군이냐? 이기느냐 지느냐. 계속 말을 몰아붙이는 기수가 될지 아니면 계속 채찍을 맞으며 몰리는 말이 될지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그것이 자아다. 자아는 의사결정권이다. 포지션 싸움에 이기는 것이다. 몰리는게 아니라 상대를 몰아붙이는 것이다. 을이 아니라 갑이다. 지는게 아니라 이기는 것이다. 파도에 떠밀려 가는게 아니라 파도를 올라타고 가는 것이다. 종속되는게 아니라 주도하는 것이다. 이득과 권력의 바꿔치기로 그것은 가능하다. 멀리 있는 황금과 눈앞의 은덩이 중에서 멀리 있는 황금을 선택하는 것이다. 당장의 이득을 버리고 대신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얻는 것이다. 그것은 당장 쓸모가 없으므로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다. 바둑에 비유하면 당장 상대방의 바둑알 하나를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보다 유리한 지점을 선점하는 것이다. 그 선점의 효과는 나중에 나타난다.
자아는 자기 주도권이다. 그것은 자유의지다. 남의 게임에 선수로 뛰지 않고 자신의 게임을 설계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질문에 응답하는 자가 아니라, 내가 먼저 질문을 던지는 자가 되는 것이다. 능동적으로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집단과의 관계 설정이다. 부단히 집단의 의사결정 중심으로 쳐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보통은 반대로 한다. 상대가 먼저 게임을 걸면 받아친다. 상대가 프로포즈를 하면 적당히 간을 보다가 퇴짜를 놓는다. 상대방의 공격에 맞대응 한다. 뭐든 본능적으로 안티를 한다. 일단 말을 안 듣고 개겨본다. 무조건 상대방의 반대로 움직인다. 의견은 절대 내지 않고 상대가 의견을 내면 씹는다. 그것은 타자성 행동이다.
자유의지가 없는, 자아가 성숙하지 못한, 자기편이 누군인지 모르는, 상대방의 술수에 낚이는 행동이다. 대신 약간의 이득을 얻는다. 붕어도 미끼를 얻는다. 낚이는 것은 나중의 문제고 당장 눈앞의 떡밥에 만족한다.
서구가 망한 것은 기본모드를 타자로 설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타자 맞다. 세상은 타인이다. 가족도 남이다. 인정해야 한다. 부모라도 자식 방에 불쑥 들어가면 안 된다. 한국에는 '나는 이 결혼 반댈세.' 하는 괴상한 말이 있지만 남의 결혼에 의견을 내면 안 된다. 세상은 기본적으로 남이다. 내가 주체를 확장시켜 주변을 하나씩 장악하는 것이다. 게임에 착수하기에 앞서 세상은 기본적으로 남이라는 전제를 깔고 들어가야 한다. 이게 피아간에 벌어지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이해한 것이 서구가 흥한 원인이다.
동양은 게임을 모른다. 응석받이가 된다. 막연히 세상을 내 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리광을 부리면 국민이 찍어줄거야. 내가 울어버리면 국민이 나를 대통령 만들어 줄거야. 내가 토라져 버리면 다들 나를 걱정할거야. 안철수식 유아행동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상은 냉정하다. 무임승차는 곤란하다. 내가 먼저 희생한 다음에 나서야 한다. 게임은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공자는 세 가지를 가르쳤다. 첫째는 군자다. 의사결정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다. 둘째는 의리다. 집단의 의사결정중심으로 쳐들어가라는 말이다. 셋째는 정명이다. 말을 똑바로 하라는 것이다. 그전에 하나가 더 있다. 대전제는 세상이 게임이라는 것이다. 공자는 게임을 말하지 않았지만 세 가지 가르침에는 그것이 전제되어 있다.
공자의 길로 가야 한다. 군자의 길, 의리의 길, 정명의 길이 그것이다. 세상은 게임이고 이기는 방법은 이것이다. 첫째, 군자의 길은 의사결정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다. 을이 되지 말고 갑이 되라는 말이다. 수동적으로 당하지 말고 능동적으로 선제대응하라는 말이다.
둘째, 의리의 길은 혼자 도덕군자 행세 하지 말고 졸라와 씨바라도 좋으니 대중 속으로 들어가라는 말이다. 소승이 아닌 대승의 길로 가라는 말이다. 개인의 우월성에 매몰되어 자아도취에 빠지지 말고 내 손에 피를 묻혀서라도 싸움을 걸어서 세상을 다 바꾸라는 말이다.
셋째, 정명의 길은 괴력난신에 음모론 타령에 개소리 좀 하지 마라는 말이다. 플러스가 아닌 마이너스의 사고다. 귀퉁이에 숨어서 얄궂은 것을 끌어모으지 말고 가운데서 당당하게 중심을 잡고 뻘짓만 삼가도 못 참고 삽을 푸는 상대방의 약점을 추궁하여 이길 수 있다.
이것은 지식이 아니라 실천이다. 공자를 스승으로 받들고 그 길을 가야 한다. 공자가 세상 돌아가는 원리를 좀 아네. 뭐 빼먹을 거 있나? 이런 태도라면 곤란하다. 우리는 공자의 게임에 가담해야 한다. 구조론의 게임에 가담해야 한다. 한 편이 되어야 한다. 적이 되면 안 된다. 우리 편이라야 한다. 우리 편이면 패스를 해야 한다. 내 패스를 받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내게 패스할 사람을 나는 지지한다. 잘난 사람이라 해도 내게 패스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군자의 길.. 자아, 자유의지, 주체성, 의사결정권자, 권력의지, 적극적, 긍정적, 실천적, 전략적 태도
소인의 길.. 종속, 운명론, 타자성, 노예근성, 실용주의, 수동적, 부정적, 관념적, 전술적 태도.
이렇게 열거하고 보면 가는 방향이 다름을 알 수 있다. 군자의 길은 사건의 원인에 서며 권력을 택하고 소인의 길은 사건의 결과에 서고 이득을 택한다. 군자의 길은 강자의 철학이요 긍정적 사고이며, 소인의 길은 약자의 철학이요 부정적 사고다. 공자의 가는 길과 노자의 가는 길이 다르다.
의리의 길.. 대승의 길, 팀플레이, 집단지성, 세상을 바꾸는게 목표, 율곡, 집단의 승리
실용의 길.. 소승의 길, 개인행동, 개인의 도덕적 우월성, 개인의 성취가 목표, 퇴계, 개인의 명성
군자의 길을 가기로 하고 가다 보면 언젠가 중대한 갈림길에 선다. 원로원과 민회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스스로 낮추고 대중과 하나가 될 것인가 아니면 어리석은 대중을 비난하며 엘리트의 자아도취에 빠질 것인가다. 대중을 따르다가 잘못하면 대중영합적이 되고, 엘리트를 따르다가 잘못하면 독선과 아집에 빠진다. 어느 쪽이 옳으냐는 중요하지 않다. 물이 들어오면 노를 젓고 물이 빠지면 물러나 후학을 기른다. 율곡이 되느냐 퇴계가 되느냐는 환경이 결정한다. 환경이 좋으면 율곡이 뜨고 환경이 나쁘면 퇴계가 뜬다. 환경이 좋으면 나아가 세상을 다 바꾸고 환경이 나쁘면 시골로 물러나서 다음을 계획한다.
의리의 길로 가면 이겨야 한다. 유비와 관우와 장비의 의리가 유명하다. 그들이 이겼기 때문에 이름을 남긴 것이다. 졌다면 의리 찾다가 꼴 좋게 되었다고 비웃을 것이다. 그런데 이긴다. 세상이 아직 안 망하고 굴러가는 이유는 태양이 여전히 햇볕을 지구에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법칙은 환경이 인간에게 우호적이라는 대전제를 가지고 있다. 언제나 물이 들어오고 있다. 노를 저어야 한다.
공자의 길은 천하인의 길이다. 궁벽한 시골에 숨어서 나 잘났소 하는 것과 다르다. 손에 때를 묻히더라도 대중과 하나로 어우러져야 한다. 세상을 바꾸려면 결국은 대중이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명의 길 .. 과학, 수학, 논리, 검증과 재현과 예측, 마이너스 법
관종의 길 .. 호기심, 흥미, 음모론, 괴력난신, 플러스 법
말을 똑바로 하라는게 공자의 가르침이다. 근거 없는 개소리만 안 해도 오류의 99퍼센트는 걸러진다. 그것은 좋은 것을 취하는게 아니라 나쁜 것을 버리는 것이다. 도덕이니 윤리니 정의니 올바름이니 공정이니 하며 뭔가 자꾸 추가하려는 태도는 좋지 않다. 뻘짓만 안 해도 이긴다.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면 남는 것이 정답이다. 세상을 소거법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정명사상이다.
공자는 세상을 게임으로 보고 세 가지 이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군자의 길, 의리의 길, 정명의 길로 가면 이긴다. 그것이 잘 끼워야 하는 첫 단추다. 나머지는 일사천리다. 유리창을 깨지 말아야 한다. 첫 시작이 잘못되므로 주도권 잃고 몰려서 계속 나빠지는 것이다. 비탈길과 같다. 첫 단추를 잘 끼우면 눈덩이처럼 비탈길을 질주하고,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한 번 미끄러지기 시작해서 계속 미끄러진다. 비탈은 같은 비탈인데 누군가는 그 비탈을 이용하여 거저먹기로 성공하고, 누군가는 그 비탈에 몰려서 허둥대다 죽는다.
세상은 게임이다. 게임은 이겨야 한다. 이기려면 쪽수가 필요하다. 쪽수는 외부와 연결시켜야 얻는다. 연결시키려면 연결의 구심점이 되는 코어를 장악하고 대칭을 이루며 소거법을 써야 한다. 도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갑옷을 입으면 진다. 중기병이 경무장한 궁병에 깨진 역사는 무수히 많다. 이기려면 뭔가 플러스해야 하는데 플러스하면 동작이 굼떠서 진다. 딜레마다.
군자, 의리, 정명 셋으로 충분하다.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고, 갑과 을을 구분하고, 주체와 타자를 구분하면 군자다. 이걸로 의사결정의 코어를 얻는다. 저울의 축이 만들어진다. 다음에는 대칭이 필요하다. 의리로 가능하다. 평등해야 날개를 벌릴 수 있다. 주변환경과 동조화 되어야 한다. 나란히 함께 가야 한다. 혼자 독주한다면 곤란하다. 그것이 의리다. 그다음에는 뻘짓을 삼가고 소거법을 쓴다. 아닌 것을 제거하면 남는 것이 정답이다. 뭔가 플러스하려는 상대의 약점만 추궁해도 이긴다.
공자의 세 가지 가르침을 기억하고 순서대로 적용하라. 인생은 게임이다. 이기려면 방향판단을 잘해야 한다.
군자론 - 우리 편 아니면 적이다.
의리론 - 우리 편끼리 뭉쳐야 이긴다.
정명론 - 상대의 뻘짓을 추궁하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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