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텔링] 다시 고개 드는 ‘집값 폭락론’…왜?
시사오늘
微視- 5년後 공급물량 증가, 하방압력 확대
巨視- 美 금리 인상 가능성, 韓 금융 치명타
文정부-차기 정부, 모든 시나리오 대비해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 shutterstock
최근 부동산 시장과 업계 일각에서 '집값 폭락론'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물론, 주택가격이 큰폭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닙니다. 노무현 정권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을 역임한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에 따르면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마저 "일본처럼 우리나라도 곧 집값이 폭락하니 집을 사지 말고 기다리라"고 측근들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정작 시장은 문 대통령의 전망과는 반대로 움직이긴 했지만요. 서울·수도권 곳곳에서 아직도 신고가가 속출하고 있으니 틀려도 보통 틀린 전망이 아니죠. 그럼에도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이번 집값 폭락론은 과거와는 달리 꽤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집값이 본격적으로 꺾일 것으로 예상되는 시기는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공언한 '8말 9초'(이미 지났지만)도, '9말 10초'도 아닌 오는 2025년입니다. 왜 2025년을 집값 폭락의 기점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우선, 미시적으로 살펴봅시다. 부동산 시장을 전망할 때 빠질 수 없는 수요-공급 논리 관점에서 말입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초 열린 부동산시장점검 관계장관 회의에서 "연말까지 등록임대주택 중 46만8000가구가 자동말소될 예정이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시장에 매물로 공급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민간임대주택특별법 개정안 시행으로 임대의무기간이 끝난 등록임대주택이 자동으로 등록말소돼 공급물량이 대거 풀릴 수 있다는 겁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전국 등록임대주택은 약 160만 가구, 이중 약 100만 가구는 오는 2028년 등록말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대부분 수도권에 위치한 주택입니다. 준공공임대사업자의 임대주택도 오는 2023년을 시작으로 시장에 나옵니다. 그 중간 지점인 오는 2025년부터 공급물량 증가에 따른 주택가격 하방압력이 본격화될 것으로 추정 가능한 대목입니다.
아울러 정부는 8·4 공급대책을 통해 수도권 지역에 총 127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박선호 국토부 1차관은 오는 2028년까지 127만 호를 모두 분양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이중 3기 신도시와 서울 내 공공택지에 들어서는 공공분양 아파트 6만 가구에 대한 사전청약을 실시해 패닉바잉을 잠재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청약일정은 오는 2021~2022년 사전청약, 오는 2023년 본청약, 오는 2025년 입주 순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를 종합하면 8·4 공급대책이 본격적으로 실효성을 거두는 시기는 3기 신도시가 첫 입주를 시작하는 오는 2025년이 될 공산이 커 보입니다. 등록말소된 임대주택 물량에 8·4 공급대책으로 분양되는 물량까지, 참 어마어마한 공급량이죠. 현 정권은 자신만만한 눈치입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정부 대책으로 상승세가 꺾였다"고 자평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고작 이게 집값 폭락론의 근거가 된다니, 뭔가 부족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공급물량이 증가한들 부동산 시장 구성원들이 예상대로 반응할지 미지수고, 수도권에 127만 호를 짓겠다는 정부의 공언이 현실화될지도 불투명합니다. 3기 신도시 분양일정은 상당 기간 지연될 공산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고, 최근에는 8·4 공급대책의 핵심인 공공재개발·공공재건축을 둘러싼 논란까지 발생했습니다. 등록말소된 임대주택은 실수요자가 선호하는 아파트 물량이 많지 않습니다. 또한 오는 2021년 재보궐선거, 오는 2022년 대선 등 정치 이벤트로 인해 현 정권과 여당이 추진하는 부동산 정책의 방향성이 급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수요-공급 논리 때문에 집값 폭락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리 만무하죠. 더 시야를 넓혀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동산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거시적으로 접근합시다. 최근 세계 각국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너 나 가릴 것 없이 확장재정 정책을 펼치고 있죠.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엄청난 비용을 투입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IMF에 따르면 최근 세계 주요국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부채비율은 128.2%로, 2차 세계대전 직후(1946년)보다 높게 나타났습니다. 같은 기간 신흥국의 부채비율 역시 62.8%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요.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세계 여러 나라의 부채비율은 당분간 확대될 전망입니다. 여기서 앞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미국의 움직임입니다.
미국 의회예산국은 지난달 공개한 '2020년 장기 예산 전망' 보고서에서 2021회계연도 미 연방정부 부채가 GDP 대비 104.4%에 달할 거라고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채권을 더 발행하고, 빚을 더 낼 필요가 있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는 분위기입니다. 연방준비제도가 오는 2023년까지는 제로(0) 기준금리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만큼, 부채가 좀 늘어도 걱정하지 말고 경제활성화에 집중해도 된다는 논리입니다. 실제로 미국은 오는 11월 3일 대선 후 최소 1조6000억 달러, 최대 3조 달러 규모의 코로나19 관련 부양책을 실시할 것(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부양책 협상 중단을 계속 유지한다면)으로 보입니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경기침체 회복을 위해 리쇼어링 정책에 4000억 달러, 미래산업 투자에 3000억 달러를 쓰겠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습니다.
미국이 이처럼 재정지출을 지속적으로 확대한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될까요? 한국은행은 지난 7월 내놓은 '이슈노트-코로나 관련 거시경제 주요 이슈에 대한 논의·시사점'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여러 나라의 확장재정 정책에 따른 유동성 증가가 광범위한 통화량 확대를 유발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아울러 각국 정부가 실질적인 부채부담을 줄이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활용할 수도 있다고 관측했습니다. 재정적자가 과도하게 쌓이면 아예 물가를 확 끌어올려서 적자가 줄어드는 효과를 모색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 같은 인플레이션의 시발점은 총 대신 달러를 쥐고 글로벌 금융시장을 호령하고 있는 미국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미국이 재정확대 정책을 펼치는 진의(眞意)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이전부터 이미 재정지출을 큰폭으로 늘려 왔습니다. 중국과 한판 싸우기 위해서 말이죠. 그런데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무역적자를 줄이려면 지출을 축소하는 게 상식적인데, 미국은 되레 금리를 인하하고 재정지출을 확대하면서 법인세 등 세금까지 감면하는 정책을 고수했습니다. 이는 현재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인 중국으로 하여금 미국 국채 매각이라는 공격 카드를 함부로 꺼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저금리 기조가 팽배한 가운데 코로나19 사태로 유동성까지 풍부해진 상황 속에서 중국이 만약 미국 국채를 판다면 미국은 금리 인상과 달러 강세 정책으로 손쉽게 받아칠 수 있습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곧 유동성이 미국으로 흐른다는 것을 뜻하죠. 이렇게 되면 중국도 금리 인상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같이 죽자는 얘기나 다름이 없는 행위입니다.
실제로 중국은 미국 국채를 대량 매각하겠다며 엄포를 놓으면서도 실행에는 옮기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미국이 재정지출을 늘리면서 중국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를 얻은 상태로 보입니다. 급격한 인플레이션(또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유도한 뒤 디플레이션을 유도하는 것이죠. 재정지출 축소, 달러 유동성 관리, 고금리 정책 추진, 모두 어디서 많이 봤던 내용이죠? 미국은 일찍이 이 같은 무기를 써서 재미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바로 로널드 레이건의 '레이거노믹스'입니다. 비록 급격한 달러 강세로 무역적자 확대라는 부작용을 낳긴 했지만, 당시 미국 행정부는 '플라자 합의'라는 후속 조치를 통해 글로벌 경제무대 경쟁국인 일본을 버블 경제의 늪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레이거노믹스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으나 '강한 달러, 강한 아메리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고, 거품이 꺼진 일본에게 1990년대는 '잃어버린 10년'이 됐습니다.
바로 이 대목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일본은 부동산과 주식 거품이 급속도로 꺼지면서 대혼란을 겪었습니다. 심지어 도쿄 지역에 위치한 주택조차도 매매가가 10분의 1로 하락했을 정도입니다. 만약 다가오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이 같은 무기를 꺼내면 우리나라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공산이 큽니다. 아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 의존도가 높은 동아시아 일대가 인플레이션 뒤 디플레이션으로 쑥대밭이 될 겁니다. 이 지경이 되면 집값 폭락이 문제가 아니겠죠. 금융 자체가 붕괴된 상황일 테니까요. 어디까지나 가능성 낮은 일개 시나리오에 불과하지만 참 겁나는 미래입니다. 이 시나리오가 구체화 될 수 있는 시기도 오는 2025년으로 보입니다. 미국의 차차기 대선 직후죠.
디플레이션이 장기화돼도 우리나라가 일본의 길을 걷진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존재합니다. 한국주택금융공사는 2018년 '하락의 추억 침체에 대한 회고'에서 장기 경기침체 돌입 시 한국과 일본의 공통점으로 '노동력 감소', '저금리 지속', '낮은 경제성장률', '낮은 인플레이션율' 등을 꼽았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 부채비율이 낮고 △GDP 대비 정부 부채비율이 낮으며 △일본과 같은 버블 형성 기간이 없다는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또한 업계에서는 현 정권 출범 이후 집값 폭등은 거품이 낀 것이라기보다는 어차피 오를 게 정부의 부동산 대책으로 속도가 붙은 것이라는 해석이 주를 이루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강점인 국가부채와 기업부채는 최근 급증하는 형국입니다. 가계부채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특히 민간 채무의 경우 부동산 관련 리스크에 상당 부분 노출된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이 공개한 '부동산금융 익스포저 추이'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기준 전체 민간신용(가계+기업) 중 55%가 부동산과 연계된 부채로 집계됐습니다. 고 의원은 "특정 자산에 대한 익스포저가 경제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크거나 증가세가 빠를 경우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불확실성에 대비해 부동산 익스포저 현황을 모니터링하고 잠재 리스크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같은 집값 폭락론은 상상할 수도 없고, 상상하기도 싫은 시나리오입니다. 현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됩니다만, 그럼에도 최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방한을 취소하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쿼드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한 게 마음에 걸립니다. 일본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국채를 다량 보유한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현 정권과 차기 정권이 모든 시나리오에 대응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 시사오늘(시사ON)(http://www.sisa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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