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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는 美에, 경제는 中에'.. 亞·太 국가 '安美經中' 딜레마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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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21세기 나의조국 2020. 7. 1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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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는 美에, 경제는 中에'.. 亞·太 국가 '安美經中' 딜레마 [세계는 지금]

세계일보  김민서 입력 2020.07.18. 18:01

 

 

美·中 갈등 증폭에 위기 맞은 '아시아 시대'
中 시진핑, 덩샤오핑 '도광양회' 기조 탈피.. 중국군 세계 최고 수준 군대로 육성 집중
각국, 양쪽 모두와 친하게 지내고 싶지만 여러 측면 이해관계 얽혀 있어 쉽지 않아

 

“미국은 아시아 지역에 상주하는 힘이고 중국은 아시아의 문간에 와 있는 현실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한쪽이라도 아시아의 선택을 강요한다면 결과는 오래전 예고된 ‘아시아의 세기’는 위기에 처할 것이다.”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는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지 7·8월 호에 기고한 A4 13장 분량의 글에서 미·중 갈등으로 ‘아시아의 세기’가 제대로 꽃을 피우지도 못한 채 위험에 처했다며 이같이 호소했다. 리 총리는 미·중 간 선택을 강요받는 현실은 “부당하다”고 성토했다. 리 총리의 이러한 진단은 미·중 이해관계가 갈수록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의 고민이 큰 상황을 반영한다.


◆리 총리, “아시아의 번영은 미국 덕분에 가능”

 

리 총리는 지난 수십년간 이뤄진 아시아 지역의 비약적인 경제 발전은 미국이 세계 질서를 주도한 ‘팍스 아메리카나’ 덕분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미국이 자유시장경제 질서 확산을 이끌고 아시아의 많은 국가가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우산 아래에서 미국과의 교역을 통해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이 가능했다는 얘기다. 미국계 다국적 기업 다수가 아시아 지역에 오랜 기간 막대한 투자를 하는 사실은 하나의 사례다.

 

과거 다수의 아시아 국가가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지하는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 접근법이 통했다. 그런데 이제 더는 이 문법은 유효하지 않게 됐다. 중국 스스로 중국을 대륙국가이자 해양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데다가 육군·해군 현대화 작업은 물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중국군을 세계 최고 수준의 전투력을 갖춘 군대로 육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시대 들어 본격화한 움직임이다. 이를 두고 리 총리는 “현재 중국 지도자들은 더는 덩샤오핑의 ‘조용히 힘을 기른다’는 의미의 ‘도광양회(韜光養晦)’ 기조를 따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을 개혁·개방의 길로 이끈 덩샤오핑은 중국이 ‘도광양회’ 기조를 100년간 지속해야 한다는 ‘유훈’을 남겼다. 힘자랑 하지 말고 실력을 쌓으라는 얘기였으나 시 주석의 중국은 그렇지 않다는 게 리 총리 얘기다.

 

시 주석은 최근 태평양은 아주 크고 넓기 때문에 미·중 양국 모두를 품을 수 있다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리 총리는 “시 주석이 미·중 두 나라가 공존할 수 있을 정도로 태평양이 넓다는 의미인지, 미·중 양쪽에 의해 절반으로 나눌 수 있다는 의미인 건지 궁금하다”고 되묻는다. 지역 내 중국의 ‘굴기’가 부담스럽다는 뉘앙스가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미국에 대해서도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부상을 실재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모든 수단을 강구해 저지할지, 중국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일지 선택을 하라는 얘기다. 미국이 후자를 택하면 유엔이나 세계무역기구(WTO) 등 다자주의 접근을 통해 평화적 문제 해결이 가능하고 이게 아시아엔 가장 이상적 방안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는 게 다수 국제정치 전문가의 견해다. 리 총리 역시 “미·중 갈등은 (소련 붕괴로) 평화적으로 종결된 미·소 냉전과 달리 평화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이렇게 되면 미·중 양국과 안보·경제 부문 등 여러 측면에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아시아 국가들 역시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우려다.

 

지난 4일 홍콩의 HSBC은행 본부와 스탠다드차타드(SC) 은행 앞에 미국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다. 중앙은행이 없는 홍콩은 HSBC나 스탠다드차타드 등 시중은행들이 통화를 발권한다. 중국의 홍콩보안법 실행은 미·중 갈등의 새로운 뇌관으로 부상했다. 미국 정부가 홍콩보안법 통과 이후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홍콩의 환율제도를 공격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홍콩=AP연합뉴스

 

◆“아·태 국가들, 중국 부상에 부정적 인식”

 

아·태 국가들의 대중국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상당수 아시아 국가는 중국의 부상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지난해 12월 34개국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전체 조사대상의 41%가 중국에 부정적 태도를 보였다.

 

주요 질문 항목별 응답 결과를 보면 중국의 부상과 성장을 바라보는 아시아 국가 국민의 인식이 보인다. 조사 대상국 가운데 18개국은 중국의 경제성장 자체는 좋은 일이라고 봤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을 국가별로 보면 캐나다 53%, 미국 50%, 호주 65%, 일본 55%, 한국 48% 등으로 나타났다. 중국이 엄청난 투자를 확대한 중동·아프리카 지역의 경우 나이지리아 83%, 케냐 68% 등으로 중국의 경제성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자국에 대한 중국 자본 투자를 바라보는 인식은 사뭇 달랐다. 특히 미·중 패권 경쟁 틈바구니에 끼인 아·태 국가의 경우 중국 자본 투입으로 인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우호적으로 보지 않는 시각이 다수였다. 주요 국가별로 중국의 자본투자가 나쁘다고 답한 비율을 보면 필리핀 49%, 한국 61%, 인도네시아 48%, 호주 66%, 인도 54%, 일본 75%로 나타났다. 중국의 자본투자가 자국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응답 비율은 필리핀 45%, 한국 36%, 인도네시아 32%, 일본 16% 등에 그쳤다.

 

아·태 국가들은 중국의 군사 강국 움직임에 특히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중국의 군사력 증강이 나쁘다고 말한 국가별 응답 비율은 필리핀 71%, 인도 73%, 호주 84%, 한국 90%, 일본 90%, 인도네시아 44%로 나타났다. 중국의 자본 투자보다 군사력 증강을 더 위협적으로 보는 조사 결과다.

 

중국은 아직 미국을 대체할 수 없고 미국도 세계적 공급 체인인 중국을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아·태 국가 모두 미·중 양쪽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만 리 총리는 점점 그게 어려워지고 있다고 성토했다. 아·태 국가들이 기존의 ‘안미경중’ 딜레마에 봉착한 셈이다.

 

특히 중국계 인구가 섞여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중국의 정치·군사·경제적 영향력 확장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리 총리가 동남아 지역 내 중국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싱가포르는 동남아 국가 가운데 중국계가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유일한 국가다.

 

리 총리는 “싱가포르는 중국의 앞잡이처럼 인식되는 일을 피하고자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고 1990년까지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제금융시장에서 중국 위안화가 달러를 대신할 수 없는 것처럼 중국은 아직 아·태 지역에서 미국이 해온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며 “미국도 중국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교역을 상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수많은 국제정치학자와 지도자는 오래전부터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으로 예견했다. 이와 달리 덩샤오핑은 생전인 1988년 라지브 간디 인도 총리와의 정상회담 당시 “많은 사람이 다음 세기는 아시아·태평양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런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부정적 견해를 드러낸 바 있다. 리 총리는 “덩샤오핑은 선견지명이 있었다”며 “아시아 국가들의 성공은 미·중이 차이를 극복하고 상호 신뢰를 구축할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김민서 기자 spice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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