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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21세기 나의조국 2019. 10. 1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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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헌의 브러시백] "우리 팀엔 '패전처리' 없다" 키움 불펜의 자부심

배지헌 기자 입력 2019.10.11. 10:50 


 

-키움 히어로즈, 준플레이오프에서 불펜 인해전술로 LG 꺾고 승리
-특정 투수 의존도 높았던 지난해 가을야구, 올해는 투수 엔트리 전원 폭넓게 활용
-정규시즌부터 중요한 상황 경험 축적한 키움 불펜, 포스트시즌에서도 좋은 활약
-불펜 투수들 간의 끈끈한 팀워크와 믿음,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바라본다
 
키움 히어로즈 불펜의 숨은 일꾼들. 왼쪽부터 김성민, 이영준, 양 현, 윤영삼(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엠스플뉴스]
 
10월 10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준플레이오프(이하 준PO) 4차전. 이날 경기를 앞두고 LG 트윈스는 경기 미출전 선수로 포수 김재성과 투수 케이시 켈리를, 키움 히어로즈는 투수 에릭 요키시와 이승호를 각각 지정했다. LG는 타일러 윌슨과 차우찬을, 키움은 제이크 브리검을 ‘여차하면’ 마운드에 올릴 수도 있는 선수로 분류한 것이다.
 
차우찬의 구원 등판은 현실이 됐다. LG는 5대 3으로 앞선 6회초 1사 1, 3루가 되자 좌타자 송성문 타석에 차우찬을 기용했다. 차우찬은 앞서 3일 열린 와일드카드 결정전 NC 다이노스 전에서도 7회 2사 후 등판해 1.1이닝을 던진 바 있다. 7일 선발등판까지 포함하면 포스트시즌 팀의 5경기 중의 3경기를 책임진 차우찬이다.
 
반면  키움은 브리검의 구원등판이란 초강수 대신 불펜투수 ‘인해전술’을 동원했다선발 최원태가 1이닝 만에 4실점하고 물러난 뒤, 9명의 불펜 투수를 총동원해 나머지 8이닝을 1실점으로 틀어막았다. 키움은 10대 5로 역전승을 거두고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이번 준PO 기간 키움은 지난해보다 한 단계 진화한 불펜 운영을 선보였다. 지난해 와일드카드와 준PO 5경기에서 키움은 4명의 불펜 투수에게 전적으로 의존했다. 특히 신인 안우진 의존도가 절대적이었다. 
 
안우진은 준PO 2차전에서 3.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은 뒤, 4차전에 다시 올라와 5.1이닝을 혼자 책임졌다. 당시 키움 불펜이 던진 총 이닝의 44.26%를 안우진 혼자서 던졌다. 여기서 누적된 피로는 SK와 상대한 PO에 가서 폭발했다. 준PO 기간 평균자책 1.56을 기록했던 키움 불펜은 PO에서 평균자책 6.63으로 무너졌고, 거기서 키움의 가을야구는 끝났다. 
 
2018 준플레이오프까지 키움 불펜 기록과 올해 준플레이오프 기록 비교(표=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올해는 다르다.  이번 준PO에서 키움은 엔트리에 포함된 투수 14명 전원이 한 차례 이상 마운드에 올랐다2차전에선 선발 에릭 요키시의 조기 강판 이후 투수 8명이 등판해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고, 4차전도 불펜 9명이 올라와 결국 이겼다. 
 
키움 불펜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던진 조상우의 비중은 18.46%에 불과했다. 승리조 투수에 의존하지 않았는데도, 준PO 기간 불펜 평균자책은 1.25로 지난해보다 더 좋았다. 
 
김성민 “믿음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
 
2019시즌 키움 불펜의 활력소 역할을 한 김성민(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보직에 관계없이 모든 불펜투수가 언제든 나갈 수 있다. 미리 준비를 잘 해둬라. 이번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장정석 감독님이 투수들과 미팅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10일 경기를 앞두고 잠실 원정 더그아웃에서 만난 키움 좌완 김성민의 말이다. 
 
“시즌 중에도 중요한 상황에서 승리조 아닌 투수들에게 기회를 주실 때가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추격조나 패전처리 구분 없다. 이게 다 경험이고, 나중에 가을야구에 가면 큰 도움이 될 거다’라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잠수함 투수 양 현도 “감독님이 미리 말씀을 해주신 덕분에, 큰 경기를 앞두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작년 같은 경우엔 거의 나갈 기회가 없었어요. 벤치에서 파이팅만 외치다 끝난 것 같은데, 지금은 모든 투수가 응원도 함께 하고 다 같이 경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실제 장정석 감독은 이번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특정 불펜투수 의존도를 줄이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너무 몇몇 투수에게만 의존하면 서너 명만 쓰게 되잖아요. 이 부분을 넓히고 싶습니다.” 준PO 1차전을 앞두고 장정석 감독이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5회 정도 되면 불펜투수 10명 모두가 출동할 수 있게 준비할 겁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다. 올해 키움 불펜에선 5명의 투수가 50이닝 이상을, 9명의 투수가 30이닝 이상을 책임졌다. 일반적인 분류법에선 ‘승리조’로 보기 힘든 윤영삼이 팀 내 불펜 최다인 6.22이닝 동안 평균자책 2.87을 기록했고, 김성민도 56.1이닝 동안 2.56의 평균자책을 기록했다. 이영준은 33.1이닝 평균자책 2.97을, 양 현은 오프너 등판까지 포함해 40.2이닝 평균자책 1.99의 기록을 남겼다. 
 
평균자책만 보면 다른 팀 필승조가 부럽지 않은 기록이다. 장정석 감독이 시즌 중에 틈날 때마다 “우리 불펜투수들 모두가 너무나 잘해주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은 이유다.
 
김성민은 “믿음은 우리 선수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라 강조했다.  어려운 상황에 나가서도 잘 던지다 보면 감독님도 한 번쯤 ‘이런 상황에 한 번 써보자’는 생각을 하시게 되지 않을까요. 믿음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라, 감독이 기용했을 때 선수가 잘 던져서 보답해서 생긴다고 생각해요.
 
윤영삼은 “같은 상황에 다른 투수가 나갈 수도 있지만, 감독님께서 나를 선택해 주셨을 때 잘 던지면 계속해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중요한 상황에 나가서 던지니까 재미도 있고, 더 잘 던지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영준 “큰 경기 등판, 내 공을 믿고 공 하나하나에만 집중했다”
 
큰 경기에서 김현수, 페게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이영준(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정규시즌이 주는 압박감과, 만원 관중이 가득한 큰 경기가 주는 부담은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키움 불펜투수들은 이번 준플레이오프 기간, 가을야구의 중압감을 비교적 잘 이겨내는 모습이다.
 
좌완 이영준은 “솔직히 큰 경기에 등판하면 많이 긴장되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지 않나. 감사한 마음으로, 한번 등판하면 그 순간에 집중해서 반드시 막는다는 생각으로 던진다”고 했다.
 
이영준은 7일 1차전에서 대타자 김현수를 상대로 등판해 범타 처리한 뒤 9일엔 카를로스 페게로를 겨냥해 등판, 또 범타로 잡아냈다. 10일 경기에선 5대 5 동점을 이룬 6회 올라와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생애 첫 포스트시즌 승리를 챙겼다.
 
2차전 때는 솔직히 좀 긴장했는데, 마정길 코치님과 오주원 선배의 조언 덕분에 힘을 얻었습니다. ‘맞으면 어쩌지?’하는 걱정은 아예 머리에 떠올리지 않으려 했어요. 제 공을 믿고 공 하나하나에 집중했습니다. 이영준의 말이다.
 
김성민은 청룡기 고교야구대회 MVP 출신이다. 큰 대회, 중요한 경기에서도 씩씩하게 제 공을 던졌던 그지만 큰 경기에 등판하면 여전히 떨리고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큰 경기는 언제 어떤 상황에 나가든 중요하고 긴장되는 건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큰 점수 차도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기 때문에, 상황에 관계없이 한 점이라도 적게 주는 게 중간 투수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윤영삼은 “비록 1경기지만, 그래도 작년에 큰 경기를 해본 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작년엔 올라가면 떨리고 했는데, 올해는 그런 게 없더라구요. 그보단 재미있다는 느낌, 막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기죠. 감독님께서 시즌 때부터 중요한 상황에 종종 내보내 주신 덕분에, 이런 큰 경기에서도 긴장을 덜 하고 제가 생각한 대로 공을 던지는 데 보탬이 되고 있습니다.
 
잠수함 양 현도 “딱 한 타자만 상대하긴 했지만, 작년 포스트시즌 경험이 도움 된다”고 했다. “긴장도 덜 하는 것 같고, 그때보다는 좀 더 여유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이번엔 우연찮게도 중요한 상황에 나가게 됐는데, 다른 생각 안 했어요. 오직 포수 사인 보고 미트 향해 던진다는 생각 하나만 갖고 임했습니다.”
 
키움 불펜의 자부심 “우리 팀엔 추격조, 패전처리 없습니다”
 
결연한 의지를 보이기 위해 머리까지 짧게 깎고 포스트시즌을 맞이한 윤영삼(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키움 불펜 투수들은 하나같이 “우리 팀엔 추격조, 패전처리가 없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윤영삼은 “우리 팀 마운드엔 필승조만 있지 그 외에 추격조 같은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 “모두가 이기는 상황이든 지는 상황이든 최선을 다합니다. 내가 등판하는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생각하기보단, 나가서 일단 막자는 생각으로 던져요. 그래도 중요한 상황에 올라가 잘 막았을 땐, 팀의 주축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좋죠.”
 
양 현은  우리 팀은 방망이가 워낙 좋은 팀이라, 점수 차가 커도 언제든 뒤집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고 있는 상황에 등판해도, 투수가 잘 막아내면 타자들이 경기를 뒤집어 주잖아요. 그래서 4점 차로 지고 있어도 긴장하고 던집니다. 패전처리라는 생각으로 마운드에 오른 적은 없었습니다.
 
불펜 투수들 간의 끈끈한 팀워크도 키움의 강점이다. 김성민은 “우리 불펜은 너나없이 모두가 한 팀”이라 힘줘 말했다. 
 
“베테랑 오주원, 김상수 형이 있고 그 외엔 다 커리어가 비슷한 선수들이 모여 있습니다. 사석에서나 밥을 먹을 때도 서로 경험을 공유하면서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 특히 큰 경기를 많이 뛰어본 조상우나 한현희 형이 ‘이렇게 하면 긴장이 덜 된다’ ‘이런 상황에선 어떤 구종을 선택한다’며 많은 걸 알려줍니다.”
 
양 현은 “투수 조장인 한현희가 역할을 잘한다”고 칭찬했다. “현희가 선수들끼리 뭉치는 걸 좋아하고,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을 잘합니다. 그러다 보니 불펜 투수들끼리 단합이 잘 되는 것 같아요.”
 
윤영삼은 “주장 김상수 형이 불펜을 잘 이끈 덕분”이라며 “모든 불펜 투수들이 다 잘 던지니까, 누가 나와도 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윤영삼은 불펜 투수들 간의 굳건한 믿음을 강조했다.  서로가 서로를 믿고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도 못 던지겠다는 마음보다는 내가 나가서 던지고 싶다는 생각부터 하죠. 주자를 남겨놓고 교체되면 서로 막아주려고 하고요.
 
올해 키움 불펜은 정규시즌 승계주자 실점률 27%로 리그 최소를 기록했다. 이번 준플레이오프에서도 앞의 투수가 남긴 20명의 주자 가운데, 뒤의 투수가 홈을 허용한 건 2차례에 그쳤다(10%). 윤영삼은 “내 뒤에 더 좋은 투수가 있다고 생각하면 의지가 된다”고 했다. 
 
폭넓은 투수 기용은 키움 주축 투수들이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까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플레이오프에서 SK 타선에게 무너졌던 지난 시즌의 실패를 되풀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승리조 투수들이야 원래 잘 던지지만, 저를 포함해서 다른 투수들까지 잘 던져 준다면 승리조 투수들도 더 편할 거에요. 저희도 자신감을 얻는 건 물론이구요.” 윤영삼의 말에선 리그 최강 키움 불펜의 일원이란 자부심이 묻어났다.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두산과 만나도 전혀 질 것 같단 생각이 들지 않아요. 각자 자기 자리에서 제 역할만 해준다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게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에요.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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