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석무 입력 2019.09.30. 06:00 수정 2019.09.30. 10:33
류현진은 29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오라클 파크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해 7이닝을 5피안타 7탈삼진 무실점으로 막고 시즌 14승(5패)째를 수확했다.
특히 평균자책점을 2.41에서 2.32로 낮춰 경쟁자인 제이콥 디그롬(뉴욕 메츠·2.43)을 따돌리고 이 부문 양대리그 1위를 확정했다. 아시아 출신 투수가 메이저리그 평균자책점 부문 1위에 오른 것은 류현진이 처음이었다.
다른 기록 부문까지 포함하면 대만 출신 우완투수 왕첸밍이 뉴욕 양키스 시절인 2006년 19승(6패)으로 아메리칸리그 다승왕에 오른 적이 있다.
류현진의 2019년은 이보다 더 화려할 수 없었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를 제치고 개막전 선발로 나섰고 5월에는 6경기에서 5승 무패, 평균자책점 0.59라는 만화 같은 기록으로 한국인 투수로는 두 번째로 메이저리그 ‘이달의 투수 상’을 받았다.
‘별들의 축제’ 올스타전에선 내셔널리그를 대표하는 선발투수로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다. 8월 중반 이후 슬럼프가 찾아오기 전까진 1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하며 메이저리그 역사를 뒤흔들기도 했다.
류현진은 이날 경기 후 “30경기 정도 선발 등판하고 싶었는데 그에 근접한 29번 등판했고, 평균자책점 1위 타이틀은 기대하지 않은 깜짝 선물”이라며 “사이영상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성공적인 해였고, 내 엄청난 노력을 입증한 증거”라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2019년 류현진의 성공을 가능케한 이유들을 살펴본다
△철저한 준비...‘지피지기면 백전백승’
류현진이 지난 시즌을 마치고 귀국인터뷰에서 “내년에는 20승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류현진이 언급한 ‘20승’은 단순히 숫자를 넘어 ‘부상 없이 꾸준히 한 시즌을 치르겠다’는 강한 의지였다.
실제로 류현진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엄청난 준비를 했다. 비시즌 동안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소화했고 새로운 구질 개발에도 힘을 썼다. 강점인 제구력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었다.
특히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상대 타자들에 대한 분석자료를 달고 살았다는 점이다. 류현진은 2015년 어깨 수술 전까지 전력분석팀 자료보다 본인의 감에 의존하는 스타일이었다. 투수코치가 전달하는 내용도 깊이 의존하기보다는 참고 정도 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어깨와 팔꿈치 수술을 받고 2년 공백기를 겪은 뒤 류현진은 달라졌다. 생존 경쟁을 펼치면서 분석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전력분석팀이 만든 자료와 영상을 파고들었다. 단지 자료를 머릿속에 넣는 것을 넘어 그 자료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플랜을 만들었다.
등판 전날 자신이 분석한 내용을 릭 허니컷 투수코치에게 브리핑하고 배터리와 전략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한 일과가 됐다. 상대 타자 특징을 외우다시피 파악하고 마운드에 오른 류현진은 두려울 게 없었다.
투수와 타자 싸움은 무슨 구질을, 어디로 어떻게 던질지 서로 예측하는 가위바위보다. 류현진에게 더 이상 불같은 강속구는 없다. 하지만 팔색조 같은 다양한 구질과 두뇌싸움으로 가위바위보 싸움에서 이겼다. 물론 원하는 곳으로 언제든 공을 던질 수 있는 탁월한 제구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 슬럼프 극복 이뤄낸 간절함
류현진에게 2019년은 많은 것이 걸린 시즌이었다. 야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즌이라 해도 틀리지 않았다
류현진은 지난 시즌을 마친 뒤 메이저리그 데뷔 후 처음 자유계약(FA) 선수 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FA 시장에서 다년계약을 노리지 않았다. 대신 원소속팀 다저스의 퀄리파잉 오퍼(1년 1790만 달러)를 받아들였다. 주변의 예상을 깬 의외의 선택이었다.
류현진은 건강한 모습으로 시즌을 마친 뒤 당당히 평가받고 싶었다. 큰 모험이었지만 그의 선택은 옳았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를 대신해 개막전 선발투수로 나섰고 5월에는 한국인 투수로는 박찬호 이후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이 달의 투수상’을 수상했다. 7월에 열린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선 내셔널리그 선발투수로 당당히 ‘별들의 무대’ 주인공이 됐다.
8월 중순 이후 4경기에서 극심한 슬럼프를 겪으면서 1점대 평균자책점은 무산됐다. 하지만 그런 고비마저 슬기롭게 극복하고 시즌 막판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송재우 메이저리그 해설위원은 “류현진이 후반기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정신력이다”며 “반드시 잘 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체력적인 어려움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설명했다.
송 위원은 “류현진은 체력이 좋은 투수는 아니지만 오랜 경험을 통해 노하우가 많이 쌓였다”며 “휴식이 필요한 시점에서 구단이 등판 일정을 조정해 준 것, 9월 들어 날씨가 선선해진 것도 류현진에게는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김용일 트레이너·아내 배지현 씨, 조력자들의 힘
류현진이 올 시즌 최고 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데는 그와 함께 하는 조력자들의 힘이 컸다.
류현진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김용일 전 LG 트윈스 트레이닝 코치를 아예 전담 트레이너로 영입했다. 김 트레이너는 다저스 선수단과 동행하면서 류현진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했다.
그전에도 비시즌마다 훈련을 도왔던 김 트레이너는 류현진의 몸 상태를 가장 잘 아는 주인공이었다. 김 트레이너가 늘 함께 한다는 것은 류현진에게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김 트레이너의 체계적인 관리를 받은 류현진은 부상 후유증을 딛고 4년 만에 풀타임 활약을 펼쳤다. 결과는 데뷔 후 최고의 성적이었다.
아내 배지현 씨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류현진은 지난 시즌을 마치고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 배지현 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배지현 씨는 올 시즌 다저스 홈경기는 물론 원정경기까지 동행하면서 류현진을 뒷바라지했다.
류현진은 사석에서 주위 사람에게 “결혼하니 심심하지 않아서 너무 좋다”고 말하곤 했다. 낯선 미국에서 생활하는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의 가장 큰 적은 외로움이다. 영어가 익숙치 않은 선수들은 더욱 그렇다.
그런 상황에서 프로스포츠 세계를 잘 알고 있는 배지현 씨의 내조는 류현진이 여러가지 어려움을 이겨내는데 있어 큰 힘이 됐다. 야구가 잘 될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곁에 늘 함께 할 자기편이 있다는 것은 류현진에게 큰 축복이었다.
이석무 (sport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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