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체제의 종식을 선언한 잉글랜드 은행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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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9 櫻井ジャーナル 번역 오마니나 골드만 삭스 출신의 잉글랜드 은행총재, 마크제이 카니는 8월 23일에 달러체제의 종언을 언급했다. 각국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통화의 네트워크가 달러를 대체하려고 하고있다. 일본에서 통화의 디지털화가 추진되는 이유도 이것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달러체제의 붕괴는 몇년 전부터 지적되어왔지만, 잉글랜드 은행의 총재가 언급한 것은 흥미롭다. 이 구상이 현실화될 경우, 미국의 지배시스템은 무너지고 만다. 이 시스템은 기축통화로 인정되던 달러를 발행하는 특권에 의해 유지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자세히 조사한 것은 아니므로 명확한 것은 말할 수 없지만, 거대자본의 통화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려고는 하고 있을 것이다. 당초, 그 달러는 금으로 보증되고 있었지만, 1971년 8월에 리처드 닉슨 미대통령이 달러와 금과의 교환중지를 발표, 그 보증은 사라졌다. 이후 달러를 기축통화로 유지하기 위해,그 유통량을 조절하는 체제를 정비한다. 그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페트로 달러(석유거래를 이용한 달러 환류시스템)다. 대다수 국가가 필요로 하는 석유에 착안한 미국은 산유국과 이야기해 결제를 달러로 한정시켜, OPEC(석유수출국기구)는 달러를 미국으로 환류시켜 왔다. 이것이 페트로 달러의 구조다. 달러를 환류시키기 위해 고액무기와 재무성 증권의 거래가 이용된다. 투기 시장도 남아도는 달러를 빨아 올리는 구조의 하나다. 금융규제가 대폭 완화된 이유 중의 하나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것은 실사회에서 자금을 빨아 올리는 구조이며, 서민의 구매능력을 저하시킨다. 당연히 생산활동은 정체, 혹은 파산되면서, 자금은 투기시장으로 흘러간다. 그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규제완화의 목적이다.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금융완화에 의해 생기는 것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버블. 그 정도는 일본은행총재도 이해했을 것이다. 과거 앵글로 섹슨이 금본위제를 채용한 것은, 영국의 금융자본이 아프리카의 금광산을 지배해 세계의 금유통량을 조절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는 미국이 세계의 금을 지배,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특권을 손에 넣었다. 그런데 1971년의 단계에서 금에 근거한 통화지배구조가 무너진 것이다. 커니가 일했던 골드만 삭스는 세계의 금융계에 큰 영향력을 갖고, 금융 스캔들에서도 이름이 곧잘 등장한다. 예를들면 그리스의 경제파탄. 그 계기는 2001년에 통화를 드라크마에서 유로화로 전환한 것에 있다. 이 전환으로 그리스는 경제적인 주권을 잃고, 그리스 정부는 자신의 정책을 내놓지 못한 채 파산한 것이다. 실은, EU의 룰에 따르면 이 통화전환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가능하지 않은 것이 가능했던 것은, 거기에 부정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즉 재정상황이 나쁘다는 것을 감춘 것이다. 그 은폐공작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이, 골드먼·삭스. 재정상황이 나쁘다는 것을 숨기는 수법을 그리스 정부에 가르쳐, 채무를 팽창시킨 것이다. 그 수법이란, CDS(크레딧,디폴트, 스와프)등을 이용해 국민에게 사태를 숨기면서 부채를 급증시켜, 투기세력으로부터 자금을 받는 보상으로서 공공부문의 수입을 준다는 것이 교환되었다고 한다. 부채투성이로 만든 뒤, "신용평가회사"가 그리스 국채등급을 낮추어 혼란은 시작되었다. 그리스를 파탄시키는 작업이 계속되었던 2002년부터 05년에 걸쳐 골드먼·삭스의 부회장을 맡았던 마리오 드라기는 06년에 이탈리아 은행총재, 그리고 11년에는 ECB총재에 취임했다. 일본도 골드만 삭스와 무관하지 않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이 추진하던 우정 민영화에 깊이 관여한 것이다. 그 정책에서 핵심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인물이 니시카와 요시후미, 다케나카 헤이조, 헨리 폴슨, 존 테인. 폴슨은 골드만 삭스의 CEO, 테인은 COO였다. 잉글랜드 은행과 미국의 FRB(연방준비이사회)는 이런 사적인 금융 기관에 의해 창설되었다. 중앙은행의 구조는 금융기관을 돈을 벌게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잉글랜드 은행은 1694년에 오라니에공(公)인 빌럼이 은행가에 의한 카르텔의 중추로서 설립. 1815년에 워털루에서 프랑스군이 패배한 이후, 네이선 메이어, 로스차일드가 잉글랜드은행을 지배하게 되었다. FRB는 1913년에 만들어졌는데, 그 제도의 설립을 결정한 회의는 1910년에 조지아주의 지킬 섬에서 열리고 있다. 회의에 참석한 것은 JP모건의 헨리 데이빗슨, 벤저민 스트롱, JP모건계인 프랭크 밴더 립틱, 찰스 노턴, 쿤 로브의 폴 워버그, 그리고 상원의원인 넬슨 올드리치와 재무차관보였던 에이브럼 앤드루. 올드리치 의원의 사위는 존 D록펠러의 아들 존 D록펠러, 주니어다. https://plaza.rakuten.co.jp/condor33/diary/20190905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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