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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의 경제시평]아베 총리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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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21세기 나의조국 2019. 8. 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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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의 경제시평]아베 총리께

정태인 | 독립연구자·경제학

화이트리스트 배제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NO 아베 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일본을 규탄하고 있다. 우철훈 기자


화이트리스트 배제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NO 아베 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일본을 규탄하고 있다. 우철훈 기자


아마 지금쯤 총리께선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때부터 이어진 가문의 소원, “보통 국가로서의 일본”을 이루기 일보 직전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총리는 명백히 1952년 샌프란시스코체제를 바꾸려는 수정주의자(revisionist)입니다.


1950년 한국전쟁은 일본의 천운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죠. 미국은 중·소를 막아내는 냉전의 전초기지로 삼기 위해 전쟁 배상의 책임도 면제해 주고 일본을 한국전쟁의 군수품 조달기지로 삼았죠. 하지만 동시에 평화헌법은 샌프란시스코조약체제의 안정을 일본이 뒤흔들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장치였습니다. 평화헌법은 일본에 결여되어 있는 이웃 나라들의 신뢰를 제도적으로 보충하는 역할을 한 겁니다. 


[정태인의 경제시평]아베 총리께


또 한번 천운이 도둑처럼 다가왔습니다. 국제관계이론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 기조를 설명하라면 아마도 ‘역외 균형 전략’에 제일 가까울 겁니다. 각 지역은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라는 거죠. 트럼프가 유럽에 가기만 하면 돈 얘기를 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얼마의 돈을 들이든지 ‘자위대’가 아니라 공격할 수 있는 ‘군대’를 원하는 총리로서는 가히 천재일우입니다. 트럼프의 ‘역외 균형전략’과 아베의 ‘보통국가’는 잘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 그러니 한국 정부가 미국에 중재 요청을 했을 때 총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겁니다. 트럼프에게 더 강해진 일본은 역외 균형의 적임자일 테니까요.


하지만 평화헌법의 개정은 안으로 국민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밖으로 주변 국가의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여기서 전혀 일본 관료답지 않은 무리수가 튀어나옵니다. 도대체 왜 하는지, 목표가 뭔지, 해결 방안이 뭔지도 알 수 없는 대한국 수출규제가 등장한 거죠(흔히 수정주의자의 언어는 “전략적 모호성”으로 치장됩니다). 물론 한국과 일본 간의 민족 감정이 고조되면 일본 국민의 동의를 얻기는 훨씬 쉬워지겠죠. 이에 더해 한국 정부가 압력에 굴해서 총리 뜻대로 “역사 문제가 종료됐다”고 선언하기만 하면 한·중의 자연스러운 ‘역사동맹’은 여지없이 깨질 겁니다. 


하지만 총리는 큰 실수를 한 겁니다.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은 현재의 한·일 갈등이 결국 보통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안보갈등으로 확대될 거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될 겁니다. 서로 신뢰하지 않는 나라 사이에서 한 나라의 군비 증강(공격 가능한 국가로의 전환)은 곧바로 ‘안보 딜레마’로 이어질 테니까요.


두 번째 실수는 현재의 한국 정부가, 외할아버지와 같은 ‘만주인맥’이었던 박정희의 정부도 아니고, 총리와 마찬가지로 ‘역사문맹’이었던 박근혜의 정부도(한·일 위안부 합의는 동아시아체제에 대한 이해와 역사의식이 있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한 데서 왔습니다.


 더 큰 문제는 총리가 동아시아 국제분업을 건드렸다는 사실입니다. 두 달여 뒤 큰 어려움을 겪을 삼성이 순순히 디램산업을 접고 말까요? 삼성의 적응 방식은 한국 기업뿐 아니라 다른 동아시아 기업의 모범이 될 겁니다. 


다행히 아직 시간은 넉넉합니다. 한국과 일본이 무역전쟁을 하고 있다지만 아직 실탄은 한 발도 쏘지 않았습니다. 실전이 벌어지지 않은 지금 바로 수습해야 합니다. 출구는 어디에 있을까요?


첫째, 샌프란시스코체제의 수정을 원한다면 그 부속품이었던 한일협정도 함께 수정해야 합니다. 일본 식민통치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이에 따른 배상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한국 정부는 최선을 다해서 소송 사태를 막을 방도를 제시할 겁니다.


둘째, 저도 중·미 갈등과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반드시 하나로 움직여야 합니다. 어느 모로 보나 세계 1, 2위의 강대국이 다투는 가운데 어느 한편에 서는 건 대단히 위험합니다. 만일 한국과 일본이 두 나라 사이에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자세를 취한다면, 그리고 똑같은 처지인 다른 나라들이 한·일을 따른다면 두 강대국 간의 충돌을 완화할 수 있을 겁니다.


셋째, 이를 전제로 한다면 총리의 또 하나의 불만일 북핵 문제에서의 ‘저팬 패싱’도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북핵 문제 해결의 전제인 동아시아 평화체제 건설에 일본이 빠질 수는 없으니까요. 논의의 출발은 양국 정부가 역사 문제를 정치에 이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상륙, 뒤이은 2013년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방문처럼 양국 국내 정치를 위해 양국 관계를 훼손해선 안되겠죠.


거듭 말씀드리자면 총리가 원하는 보통국가, 평화헌법의 개정은 동아시아 평화공동체의 비전 속에서 다른 나라의 신뢰를 얻을 때만 가능합니다. 큰 구도 속에서 핵심 전제를 해결하면 현재의 갈등을 해결할 실마리는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두 나라 시민사회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이미 산처럼 쌓여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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