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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21세기 나의조국 2019. 6. 8.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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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본 한 노부부의 대화... 절망감이 밀려왔다

[리뷰]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들춰낸, 한국사회 맨얼굴

19.06.05 17:02최종업데이트19.06.05 17:02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의 거의 첫 장면. 한 남자가 한강 대교 위에 올라 투신하기 전 마지막 유언을 남긴다.
 
"끝까지 둔해 빠진 새끼들. 잘들 살어."

영화 <기생충>을 보면서 위 대사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던 건 우연이었을까. 아마도 봉준호 감독은 2006년에도, 그리고 13년이 지난 지금에도 관객에게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둔해 빠진' 우리들에게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불편한 영화
 
 <기생충> 스틸컷. 리얼한 계급의 격차

<기생충> 스틸컷. 리얼한 계급의 격차ⓒ CJ 엔터테인먼트

 
< 기생충>은 불편한 영화다. 처음에는 그 말도 안 되는 설정에, 천연덕스러운 배우들의 연기에 마냥 웃기지만 언제부터인가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영화 속에서 감정이입할 대상을 찾기 어렵게 되면서부터다.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관객들이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지만, <기생충>에서는 그게 쉽지 않다. 주인공 기택(송강호 분)네가 처해있는 현실이 너무 신산하거니와 대척점에 서 있는 박 사장(이선균)네 역시 딱히 악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인물들 중 누구도 악의를 가지고 있진 않다. 다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가족들이 조우하면서 비극이 시작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은 스스로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나는 기택과 가까운지, 아니면 박 사장과 가까운지. 이에 대해 아마도 많은 관객들의 대답은 대동소이할 것이다. 둘 다 아니라고. 박 사장 만큼 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기택보다는 나쁘지 않다고들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우리는 지금 당장은 기택보다 나을지 모르지만 언제든지 기택처럼 될 수 있고, 반면 더 이상 박 사장은 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더 이상 계급 상승이 힘든 사회. 드라마에서는 박 사장 같은 이가 항상 주인공으로 나오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사람을 만나기조차 어렵다. 박 사장은 영화에서처럼 한참 동안 계단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겨우 볼 수 있을까 말까한 사람이다.
 
 <기생충> 스틸컷. 도심의 신산한 풍경

<기생충> 스틸컷. 도심의 신산한 풍경ⓒ 바른손이앤에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슬며시 옷깃을 잡고 냄새를 맡아볼 수밖에 없다. 혹시 내게서 기택의 냄새가 나지는 않는지. 반지하에서 나는, 지하철을 타면 나는 냄새가 내게서 나지는 않는지 확인해 볼 수밖에 없다. 냄새는 계급의 차이를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메타포이며, 내가 아무리 치장해도 지워지지 않는 나의 고유의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기생충>이란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그 속에 일말의 진실이, 우리가 애써 눈감고 있는 진실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은 '2019년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직접적으로 묻고 있다. 잘들 살고 있느냐고. 이미 계급의 사다리가 끊어져버린 사회에서 아직도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말로 자위하면서 현실도피하고 있지는 않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
 
영화에서 박 사장은 끊임없이 '선을 지킨다'라는 표현을 한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선이다. 그가 예전 기사를 고용했던 이유도, 기택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이유도 그들이 선을 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람 좋은 박 사장이라고는 하지만, 그는 고용된 자가 간혹 그 선을 넘을 때 얼굴이 일그러지고 어이없다는 웃음을 짓거나 법과 규정을 찾는다. 그에게 있어서 선은 전혀 다른 계급이 같은 사회에서 공존할 수 있는 기준이다. 
 
 <기생충> 스틸컷. 선을 넘자 당황하는 박 사장

<기생충> 스틸컷. 선을 넘자 당황하는 박 사장ⓒ CJ 엔터테인먼트

 
비극은 그 선을 우리 모두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준거로 자기 검열을 하고 자기 분수에 맞는 삶을 살아간다. 비록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교과서에서 배우지만, 우리 모두는 그것이 거짓인 줄 뻔히 안다. 사회적으로 그 선은 엄연히 존재하는 암묵적 합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은 그 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관객들에게 그 선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사람의 냄새는 자신의 의지와 달리 그 선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의 존재가 곧 나의 냄새이며, 나의 냄새가 곧 나의 존재를 의미하지 않는가.
 
따라서 영화 속 냄새는 인간의 존엄성과 맞닿아 있다. 냄새는 계급의 격차를 나타내는 주요 메타포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의 결말에서 기택이 결국 그 선을 훌쩍 넘어버리고 마는 것은 자신의 냄새가, 그리고 자신의 존엄성이 훼손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감독은 영화 내내 약자와 약자가 생존을 하기 위해 자기들끼리 이전투구하는 씁쓸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마지막 장면에 단 하나의 가능성을 남겨둔다. 기택이 선을 넘는 것은 박 사장이 자신을 비롯한 약자들의 냄새를 폄훼했기 때문이며, 그들이 같은 존재임을 자각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계급의 차이를 넘어 연대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모두 같은 시민인요, 존중받아야할 인격체이기 때문이다.
 
좀 더 불쾌해하시라 
 
 <기생충> 스틸컷. 1%가 기생충이다

<기생충> 스틸컷. 1%가 기생충이다ⓒ 바른손이앤에이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자괴감과 씁쓸함, 불편함과 우울함이 뭉뚱그려져 갖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한 노부부의 대화가 들렸다. 
 
"여보, 영화 어땠어?"
"글쎄. 냄새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게 말이 되나?
"그치? 나도 이해가 안 됐어."
"영화가 말도 안 돼. 문재인, 아니 문재X 프레임이지 뭐. 계급 이야기 하는. 재미없었어. 칸 수상작이라더만 불쾌해."
"응. 나도. 그냥 영화는 <극한직업> 같은 걸 봐야 돼."

 
영화 <괴물>의 첫 대사가 떠올랐다. "둔해빠진 사람들". 이 사회의 빈부격차가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그 격차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있는지 모르는 그들과 함께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이 슬플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들이 불쾌함을 느꼈다면 영화 <기생충>은 성공이다. 좀 더 많은 이들이 이 영화를 보고 불편함과 불쾌함을 느껴보길 바란다. 우리는 지금 아주 불쾌한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자문해보시라. 당신은 지금 누구에게 기생하고 있는지. 99%가 1%에 기생하는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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