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강미선 기자 입력 2019.05.25. 08:09
화웨이가 스마트폰에 이어 PC까지 디바이스 사업이 총체적 위기를 맞았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미국 기업들 뿐 아니라 영국·일본 등의 핵심 IT(정보기술) 기업들이 잇따라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나서면서다. 올해 삼성전자를 누르고 글로벌 스마트폰 1위에 오르겠다던 화웨이의 목표 달성은 물론 관련 사업을 이끌어나가는 것 조차 버거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두뇌까지 텅텅…화웨이폰·PC 생산 '비상'
=세계적 반도체 설계업체인 영국 ARM은 화웨이와 거래 중단을 선언했다. ARM의 기술은 전 세계 거의 모든 모바일 기기 프로세서 설계에 사용된다.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AP)의 경우 90%가 ARM의 설계도에 기반한다.
화웨이도 스마트폰 칩 생산에서 ARM의 기술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화웨이가 네트워크 장비,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에 사용하는 자체 프로세서 '기린(Kirin)'도 ARM사의 라이선스를 받아 사용한다. 앞서 화웨이가 미국 반도체 기업 퀄컴·인텔·브로드컴이 거래 중단을 통보했을 때 자체 반도체를 쓰겠다고 자신했지만, ARM과의 거래가 끊기면 자체 설계도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란 게 업계 전망이다.
앞서 구글은 화웨이에 안드로이드OS 일부 서비스 제공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90일의 유예기간 이후 화웨이의 차기 스마트폰에서는 지메일, 유튜브, 크롬, 구글 플레이 등을 사용하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화웨이는 이제 스마트폰과 PC의 머리 역할을 하는 AP와 CPU도 자체 소화해야 하고 OS도 독자적으로 해결해야 할 상황"이라며 "생태계로 움직이는 산업에서 하나의 회사가 이 모든 걸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화웨이의 PC 사업도 위기다. 세계 최대 PC OS업체 MS(마이크로소프트)는 최근 온라인 스토어에서 화웨이 노트북 '메이트북' 판매를 중단했다. 외신은 "메이트북 X 프로를 비롯한 화웨이 노트북이 모두 사라졌다"며 "검색도 불가능한 상태"라고 보도했다. MS는 아직 화웨이에 PC OS 윈도를 지원 중이지만 미국 정부의 권고에 따라 언제 거래가 중단될 지 장담하기 어렵다.
◇생산 이어 판매도 '비상'…각국 통신사, 화웨이폰 출시 연기
=화웨이 스마트폰 판매 중단을 선언하는 글로벌 통신사도 속속 늘고 있다. 지난 22일(현지시간) 영국에서는 BT그룹 산하 이동통신사 EE가 "5G망 구축 프로젝트에서 화웨이 장비 사용을 단계적으로 줄이겠다"는 방침과 함께 화웨이의 첫 5G 스마트폰 영국 출시 계획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이통사인 보다폰도 당분간 화웨이가 제조하는 5G 스마트폰 사전 예약 주문을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본에서도 이통통신사 KDDI와 소프트뱅크가 화웨이의 새 스마트폰 'P30 라이트' 출시 일정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 당초 소프트뱅크는 24일, KDDI는 이달 말에 이 기종을 출시키로 하고 사전 예약을 받아왔으나 미국의 거래 제한 조치 이후 이를 모두 중단했다. 일본 1위 통신사인 NTT도코모도 P30 라이트 사전 예약 중단을 검토 중이다.
대만 현지 매체에 따르면 대만 5대 이동통신사인 중화텔레콤과 타이완모바일, 파이스톤, 아시아퍼시픽텔레콤, 타이완스타텔레콤도 "화웨이의 기존 스마트폰은 계속 판매하되, 신규 스마트폰 판매는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미·중 무역갈등으로 화웨이 제품의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한지 각국 통신사들은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판매하더라도 사후 업데이트, 관련 서비스 등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가 있어서 성과를 내기 어렵고, 현 상황에서는 내수 시장인 중국을 벗어나서는 화웨이의 기기들이 원활히 판매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거래중단 아냐"…협력 지속 기업도
=해외 IT 기업들이 잇따라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을 발표하는 가운데 일부에서는 협력 지속 의사를 밝히고 있다. 지난 24일 화웨이는 "도시바와 파나소닉, TSMC, 인피니온 등이 공식 성명을 통해 화웨이와 거래 중단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고 발표했다.
화웨이에 따르면 도시바는 중국 공식 사이트에 올린 서명을 통해 미국산 부품이 포함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일시 중단을 발표했고, 이후 화웨이에 모든 제품 공급을 재개했다고 밝혔다. 도시바는 "진출한 국가와 지역의 법과 규정을 지키면서 여러 업무를 추진해왔다"며 "앞으로도 기술을 기반으로 중국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적은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파나소닉도 자사 중국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화웨이와의 거래 중단이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대만TSMC도 공식 성명을 내고 "화웨이의 16nm, 12nm, 7nm 칩 모두 TSMC 제품"이라며 "단지 미국 판매금지 조치 때문에 화웨이 공급을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 반도체 기업 인피니온도 "현재 인피니온이 화웨이에게 납품하는 대부분 제품은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미국의 수출 통제 제한조치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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