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김재현 이코노미스트 입력 2019.03.21. 13:10
[편집자주] 멀리 보고 통 크게 노는 법을 생각해 봅니다.
금방이라도 타결될 것 같던 미중 무역협상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 무역협상 타결을 선포할 미중 정상회담이 3월말로 전망되다가 4월말에 이어 이제 6월로 늦춰지는 모양새다.
만약 협상이 타결되지 않더라도 6월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이 만날 가능성이 높다. 양국 정상 모두 오는 6월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개최되는 G20 정상회담에 참가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무역협상에 대한 찬반양론이 가감 없이 보도되는 미국과 달리, 중국은 무역협상에 대한 찬성 일변도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다. 중국 공산당은 자국 언론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관영언론은 무역협상이 순조롭게 진행 중이며 협상 타결이 임박한 듯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중국이 언론을 통제하는 목적은 두 가지다. 필요 없이 미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자국민에게 중국 정부가 저자세를 취한다는 인상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탄탄대로를 걷던 시진핑이 부딪힌 예상 밖의 암초
2017년으로 시계를 되돌려 보자. 10월 개최된 19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집권 2기를 앞두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을 주창했다. 이때만 해도 중국의 앞길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지난해 시진핑 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는 예상 밖의 암초에 부딪혔다. 트럼트 대통령이 미중 무역전쟁을 일으키며 중국에 강하게 맞선 것이다.
아직 미중간에 현격한 실력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중국 입장에서는 무역협상 타결이 최우선 과제다. 하지만 중국은 반드시 자국민에게 정부가 당당하게 무역분쟁을 해결했다는 이미지를 심어줘야 한다.
중국에는불비불항(不卑不亢)이라는 4자성어가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 강한 상대를 대할 때, 비굴하지도 않고 거만하지도 않은 태도를 뜻한다. 체면을 중시하는 중국인에게 지더라도 의연하게 지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장기집권 체제를 공고히 해야 하는 시진핑 주석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 언론은 현재의 사회주의 체제를 적극 옹호하는 보수적 좌파와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진보적 우파로 구분할 수 있다. 좌파 언론인 중 가장 유명한 환구시보 편집인 후시진(胡錫進, 59)을 통해 중국이 무역협상을 어떻게 보는지 살펴보자.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중국 인터넷 공간에서 정부를 지지하는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우선 후시진 편집인은 미중 무역협상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지난 2월말 후시진은 중국 SNS인 웨이보에서 중국 증시 및 미국 증시가 상승하는 것만 봐도 시장이 미중 무역협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며 평화로운 발전이 양국의 공통적인 바람이라고 주장했다.
재밌는 건 후시진이 증시 상황을 양국의 반응을 살피는 바로미터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후시진은 미중 증시가 모두 상승하는 건 양국 모두 무역협상 결과가 자국에게 유리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며 반대로 어느 한 국가라도 무역협상 결과가 자국에게 손해라고 느꼈다면 양국 증시가 모두 상승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논리를 전개했다.
또한 중국 정부의 언론통제를 정당화하는 이유로 미국 양당의 당파싸움을 들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미국 정치의 일상이 됐다며 중국 여론이 냉정을 유지하면서 허위·과장된 주장을 하지 말고 미국의 정치싸움에 이용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지 않아야 한다는 논리다.
환구시보 뿐 아니다. 중국 관영통신사인 신화사도 지난 3월 15일 기사에서 중국은 무역협상에 대해 신중히 보도하고 있지만, 미국은 찬반양론이 모두 나오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또한 뉴욕타임스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 뿐 아니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스티브 므누신 재무부 장관도 타결과 결렬 가능성을 번갈아 가며 말한다며 일종의 협상전략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대다수 중국인들도 중국의 일부 양보가 불가피하다고 인정
후시진은 사실상 중국 정부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맹목적인 애국심을 부추기는 말은 하지 않는다. 애국심과 더불어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해야만 중국 네티즌들이 신뢰하기 때문이다.
후시진은 미국의 국력이 중국보다 강하기 때문에 중국의 일부 양보가 불가피하리라는 것도 다수의 중국인이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중국 역시 양보할 수 없는 핵심 이익은 지켜야만 하고 또 미국이 그것을 인정하고 타협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덧붙였다.
중국이 미중 무역협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은 미국이 요구하는 중국의 시장 개방이 자국의 장기 이익에 부합한다는 논리다. 지난 16일 후야오방(胡耀邦)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아들 후더핑(胡德平, 77)도 인터뷰를 통해서 트럼프 대통령이 촉매역할을 한 건 부정할 수 없지만, 미국의 요구와 중국 개혁개방의 목표는 근본적으로 충돌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중국은 자체적인 개혁동력이 소진돼 구조개혁 및 시장개방에 소극적이었지만, 자유주의 학자들은 시장개방 확대와 개혁을 계속해서 주장해왔다. 후더핑은 미국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고 있는 화웨이 런정페이 회장의 말을 빌려, 화웨이의 상품, 기술과 서비스가 좋기만 하면, 항상 구매자는 존재할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결국 장기적인 미중 무역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은 자국 제품의 경쟁력이라는 논리다.
중국이 미중 무역전쟁에서 단기적으로는 일부 양보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아성에 계속 도전할 것이라는 의지를 엿보게 하는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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