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의 과학, 암 위험성 낮추고 인지력 높여
단기간이라도 주기적으로 단식하면 노화와 질병을 막는 장기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가 많다. 24시간 단식하고 나면 모든 것이 급격히 변한다. 아무리 효과가 강력한 약물들을 한꺼번에 다량으로 복용한다 해도 결코 단식의 효과에는 미칠 수 없다.
- 발터 롱고, 서던캘리포니아대 장수연구소
불교 예술에 조예는 없지만, 필자는 경주 토함산 석굴암의 본존불상을 보면 깊은 감동이 느껴진다. 세상살이의 잡스러움을 초월한 부처의 절대평안의 경지가 이보다 더 완전하게 구현된 불상이 어디 또 있을까. 그런데 이와는 또 다른 측면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불상이 있다. 바로 파키스탄 라호르박물관에 있는 ‘단식하는 부처’다(사진 참조).
못 먹어 삐쩍 마른 사람에게 ‘피골(皮骨)이 상접(相接)했다’는 비유적인 표현을 쓰는데, 이 불상에서는 이 표현이 글자그대로 구현됐다. 부처의 전기 내용이 맞다면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 부처의 모습은 석굴암의 불상보다는 라호르박물관의 불상에 더 가까울 것이다.
오늘날 인도와 네팔 국경 지역의 샤키야족의 소국에서 왕자로 태어난 싯다르타는 부족함이 없이 자라 미모의 왕자비를 얻고 아들까지 낳았지만 29세인 기원전 595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연 출가했다.
수년 동안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의 현자를 찾아 헤매던 싯다르타는 더 이상 스승은 필요하지 않다고 선언한 뒤 고행을 통해 최고의 깨달음에 도달하기로 한다. 음식을 조금씩 줄여나가다가 마침내 하루에 콩죽 한 방울씩만 먹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배에 손을 대면 등뼈가 만져지고 눈두덩은 물이 마른 웅덩이처럼 움푹 파였다.
그러나 이렇게 육신을 학대해 극심한 고통을 자초하는 게 해탈의 길이 아님을 깨달은 싯다르타는 ‘죽을 먹어야겠다’고 결심한 뒤 우유죽을 먹고 기운을 차린 뒤 그늘이 시원해 보이는 보리수 아래에서 선정에 들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음에 이른다. 이때가 기원전 589년으로 진리를 찾아 출가를 한 뒤 6년만의 일이다.
오늘날에도 단식은 종교의 색채가 짙다. 이슬람의 라마단이 대표적인 예로 이슬람력으로 9월 한 달 동안(올해는 6월 28일~7월 27일) 해 뜬 뒤부터 해질 때까지 음식을 입에 대지 않는다. 올해처럼 해가 길 때 라마단이 잡히면(이슬람력은 태음력으로 1년이 11~12일 짧다) 열네다섯 시간은 금식을 해야 하는 셈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입장에서는 매년 한 달씩 고생해야하는 이슬람교도들이 좀 안 됐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럴까.
●간헐적 단식 vs 장기 단식
학술지 ‘셀 줄기세포’ 5일자에는 단식이 조혈모세포(줄기세포)의 재생력을 높이고 억제된 면역계를 다시 활성화한다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단식은 종교나 정치(저항의 수단)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필자는 ‘단식의 과학’이 있다는 게 의아스러워 논문을 다운받아 좀 읽어봤다(권위 있는 저널 ‘셀’의 자매저널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물론 ‘셀 줄기세포’도 인용지수(impact factor)가 무려 27.4(최근 5년)에 이르는 엄청난 저널이다. 참고로 ‘셀’의 인용지수는 34.4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장수연구소 발터 롱고 교수팀의 연구결과로 인용한 참고문헌만 100편 가까이 되는 것 같다. 물론 전부 단식을 다룬 건 아니겠지만 ‘단식의 과학’이 나름 생명과학의 한 분야를 이루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섭식 관련 연구란 칼로리제한이 전부인줄 알았던 필자로서는 허를 찔린 느낌이다.
아무래도 이 분야를 개괄하는 리뷰 논문을 봐야할 것 같아 참고문헌을 살펴보니 올해 2월 ‘셀 대사’(‘셀’의 또 다른 자매저널)에 실린 ‘단식: 분자 메커니즘과 임상 응용’이라는 제목의 리뷰논문이 보인다. 롱고 교수와 미국 국립노화연구소 마크 맷슨 박사가 공동저자다. 롱고 교수에게 논문파일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는데 답이 없어 맷슨 박사에게도 보냈다. 그런데 다음날 두 사람 모두에게서 답신이 왔다. 특히 맷슨 박사는 읽어보면 좋을 거라며 추가로 논문 한 편과 지난해 ‘헬스 내추럴리’라는 잡지에 기고한 글까지 보내줬다.
‘간헐적 단식과 건강’이라는 제목의 잡지 글을 먼저 읽어봤다. 과학자들은 단식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고 있는데, 간헐적 단식과 장기 단식이다. 간헐적 단식(intermittent fasting)은 16시간에서 36시간 정도 금식(또는 절식)을 반복하는 단식법이다. 반면 장기 단식(prolonged fasting)은 2일에서 5일에 걸쳐 하는 단식이다. 따라서 간헐적 단식은 전문가의 도움이 없어도 할 수 있지만 장기 단식은 전문 시설에 가서 실시하는 게 보통이다.
- 뇌의 경우 주로 네 부분(선조체, 해마, 시상하부, 뇌간)이 영향을 받아 네트워크 가소성이 강화되고
- 신경생성이 이루어지는 등 인지력이 향상된다.
- 심장의 경우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서 심박수가 줄어들고 혈압이 떨어진다.
- 간에서는 인슐린 민감성이 높아지고 IGF-1 수치가 떨어진다.
- 근육에서도 인슐린 민감성이 높아지고 스트레스 저항성이 커진다.
- 지방조직의 경우 지방분해가 촉진되고 염증이 완화된다.
- 내장에서는 염증이 줄어들고 세포증식이 줄어든다. -
셀 대사 제공
기고문에서 맷슨 박사는 세 가지 간헐적 단식 유형을 소개하고 있다. 하나는 격일제 단식(alternate day fasting)으로 하루는 정상적으로 먹고 하루는 굶는(또는 하루 권장량의 4분의 1인 500칼로리 미만 섭취) 식의 단식법이다. 다음으로 8시간 다이어트(8 hour diet)로 매일 8시간 동안만 음식을 먹고 나머지 16시간 동안 금식하는 것이다. 라마단이 여기에 가깝다. 끝으로 5:2 다이어트로 일주일에서 5일은 평소대로 생활하고 이틀은 굶는(또는 하루 권장량의 4분의 1인 500칼로리 미만 섭취) 단식법이다.
맷슨 박사는 최근 간헐적 단식을 다룬 책들이 나와 인기를 끈다며 참고문헌에 몇 권을 소개하고 있는데, 검색해보니 두 권은 국내에도 번역돼 있다. 도서관에서 ‘간헐적 단식법’이라는 책을 빌려 봤는데(원서는 ‘The Fast Diet’로 둘 다 2013년 출간됐다) 꽤 흥미로웠다. 알고 보니 지난해 국내 한 방송사에서 간헐적 단식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영해 화제가 됐다고 한다. 따라서 필자는 이쪽에 깜깜이었지만 아마 독자 다수는 이미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필자에게 깊은 인상을 준 ‘단식의 과학’을 소개하는 것도 큰 낭비는 아닐 거라는 ‘믿음’에 잡지 기고문과 책, 리뷰 논문의 내용을 요약해본다.
●몸은 진화적으로 단식에 적응된 상태?
먼저 맷슨 박사는 진화의 측면에서 단식의 유효성을 얘기하는데 꽤 설득력이 있다. 사실 인류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굶주려왔고 따라서 이에 적응했기 때문에 오늘날 풍요가 독으로 작용해 비만을 비롯한 각종 대사질환에 시달린다는 건 상식이 됐고 칼로리제한의 유용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실 필자는 이 주장이 탐탁스럽지 않았는데, 우리 선조들이라고 해서 평생을 ‘꾸준히’ 굶주리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다큐멘터리를 봐도 야생동물들이 먹이가 풍족할 때는 배터지도록 먹고 없을 때는 며칠씩 쫄쫄 굶고 때로는 아사하기도 한다. 따라서 인류도 그랬을 것이고 본의 아니게 단식을 할 수 밖에 없는 기간이 꽤 됐을 것이다.
그런데 맷슨 박사는 글을 시작하며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인류는 간헐적 단식에 적응하도록 설계돼 있다는 것. 따라서 몸은 먹을 게 없는 상태가 되면 대사변화가 일어나면서 이에 적응하게 된다. 먼저 에너지원이 포도당에서 케톤체(ketone body)로 바뀐다. 섭취한 여분의 칼로리는 탄수화물인 글리코겐으로 바뀌어 간이나 근육에 저장되거나 지방으로 바뀌어 지방조직에 쌓인다. 단식을 하면 처음엔 글리코겐을 다시 포도당으로 분해해 사용하지만 12시간 정도 지나면 다 소진되기 때문에 다음 단계로 지방을 분해해 케톤체를 만들어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즉 12시간은 음식을 끊어야 복부지방이 연소를 시작한다는 말이다.
‘정신이 맑아진다’는 것도 종교인들이 단식을 즐겨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인데 역시 진화적으로 일리가 있다. 즉 먹을 게 떨어지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굶어죽지 않으므로 인지능력이 향상되도록 뇌에서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 대표적인 예로 뇌유래신경영양인자(BDNF, brain-drived neurotrophic factor)의 분비가 늘어나는데, BDNF는 기억과 학습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인 해마의 신경생성을 촉진하는 등 다양한 작용을 한다. 리뷰논문에서 저자들은 “모든 포유동물에서 보존된 행동 양식은 굶주릴 때 부지런해지고 배부를 때 게을러진다는 것”이라고 쓰고 있다.
한편 단식이 가져오는 생리적 변화의 상당부분은 인슐린유사성장인자1(IGF-1, insulin-like growth factor 1)의 분비감소에 비롯한다. IGF-1은 체내 세포의 성장과 분열을 촉진하는 인자로 성장기에는 중요한 물질이지만 성인에게서는 오히려 노화나 암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데 영양과잉인 현대인들은 IGF-1의 분비량도 많아져 문제가 되고 있는 것. 반면 단식을 하면 몸은 어려운 환경에 처했다고 해석하기 때문에 성장보다는 현상유지로 초점을 돌리므로 IGF-1 분비가 줄어들고 따라서 노화를 늦출 수 있고 암 발병률을 낮출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일상생활에서 단식을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까. 의사 출신으로 영국 BBC의 PD인 마이클 모슬리와 영국 작가 미미 스펜서가 공저한 ‘간헐적 단식법’을 보면 한글판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일단 장기 단식은 제쳐둔다(이틀 이상 굶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간헐적 단식법에서도 실천하기 쉽지 않은 격일제 단식과 8시간 다이어트(생각해보니 지난 2012년 한글판이 출간돼 큰 반향을 부른 나구모 요시노리 박사의 ‘1일1식’은 칼로리제한이 아니라 간헐적 단식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보다는 저자들이 직접 해보고 꾸준히 실천할 수 있다고 확신한 5:2 다이어트를 소개하고 있다.
모슬리의 경우 월요일과 목요일을 단식일로 정했는데, 완전히 굶는 건 아니고 아침, 저녁으로 약간씩 음식을 먹어 하루 500~600칼로리를 섭취한다고 한다. 아무튼 이렇게 간헐적 단식을 3개월 동안 실시한 결과 모슬리는 체질량지수(BMI, 체중(kg)을 키(m)의 제곱으로 나눈 값. 권장 수치는 20에서 25 사이다)가 과체중인 26.4에서 24로 떨어졌고 공복혈당도 7.3mmol/l에서 5.0으로 줄었다(권장 수치는 3.9~5.8).
“이렇게 쉬운 다이어트는 없다”는 저자들의 말(일주일에 단식 하는 이틀을 뺀 5일은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므로)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지만, 1일1식 같은 방법보다는 꽤 그럴듯해 보인다. 필자는 BMI가 19가 채 안 돼 굳이 분류하자면 저체중라고 볼 수도 있지만, 다이어트 측면이 아니라 진화적 관점의 건강 증진 측면에서 한 번 해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물론 5:2 다이어트는 무리일 것이고 6:1 다이어트, 즉 일주일에 하루 단식하는 방식을 시도해봐야겠다. 어떤 요일에 굶는 게 좋을까….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인슐린유사성장인자1(IGF-1, insulin-like growth factor 1)
IGF-1의 수치가 낮을수록 암 발생이 적었다
라론증후군 환자(난장이)의 경우 이 수치가 매우 낮았다
IGF-1의 수치가 높으면 세포 자멸사가 원활하지 않습니다
이 떄문에 악성 세포가 확산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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