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8.03.25. 07:30
(서울=연합뉴스) 최현석 기자 = "작년의 가짜 무역전쟁(phoney trade war)은 끝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간) 중국 제품에 고율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중국이 미국산 철강과 돈육 등에 보복관세를 부과키로 하면서 G2(주요 2개국) 간 무역전쟁이 본격 개전하는 모습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이에 대해 미국이 중국에 무차별 살상무기인 집속탄(cluster bomb)을 투하한 격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결정은 지난해 중국산 일부 품목에 줄줄이 내놓았던 규제와는 차원이 다른 전면전 선포라는 해석이다.
중국 상무부는 이에 대해 "매우 악랄한 선례"라고 미국을 비난하고 "중국은 절대로 무역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떠한 도전에도 대응할 자신이 있다"며 응전에 나섰다.
세계 1, 2위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 간 정면충돌이 현실화되자 양국은 물론 회복기에 접어든 세계 경제에 강력한 충격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 결국 방아쇠 당겼다
텔레그래프는 트럼프 대통령이 500억 달러(약 54조 원) 정도의 중국산 수입품에 25% 고율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데 대해 1930년 미국 스무트-할리 관세법 이후 가장 극적인 무역 제재라고 전했다.
스무트-할리 관세법은 외국 상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미국 기업을 일시적으로 보호했지만 미국에 수출하는 국가들의 경제 위축, 미국 상품의 외국 수출 감소로 이어져 대공황의 장기화를 초래했다.
미국이 부작용을 무릅쓰고 통상 공세에 나선 것은 대중국 무역적자를 개선하고 21세기 정보기술(IT) 생명선의 통제권을 쥐기 위한 포석이다.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작년 3천752억 달러로 전체 무역적자 5천660억 달러의 절반을 웃돌았다. 대중 무역적자는 지난 1월 360억 달러로, 2015년 9월 이후 2년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올해 들어서도 확대 추세를 지속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지식재산권 도둑질이나 강제 기술 이전 등으로 매년 500억 달러의 경제 손실이 초래됐다고 추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3월 무역적자 원인 규명과 반덤핑관세·특별상계관세 추징 강화에 대한 행정명령에 이어 4월 수입 철강·알루미늄의 국가안보 영향 조사에 대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등 취임 직후부터 중국에 대한 통상 공격을 치밀하게 준비해왔다.
실제 작년 미국의 반보조금 조사 착수 건수는 25건으로 전년보다 56% 급증하며 1986년 이후 3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덤핑 조사 착수 건수도 54건으로 54% 늘며 2001년 이후 가장 많았다.
작년 5월과 6월에는 각각 외국산 태양광 패널과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에 대한 조사를 개시했으며 지난 1월 세이프가드를 결정했다.
이를 위해 낡은 시대의 유물인 법 조항을 꺼내 드는 강수를 뒀다.
미국은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조사를 위해 1962년 제정된 이후 거의 적용되지 않던 무역확장법 232조를 끄집어 냈으며, 2002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한국산 등 수입 철강제품에 발동한 이후 16년 만에 처음으로 무역법 201조를 적용해 세이프가드를 발동했다.
◇ 中 반격 이어 주변국 확전 우려…세계 경제 회복세에 찬물
미국이 이른바 '장롱 법안'까지 동원해 통상 공격을 감행하자 중국은 즉각 응전에 나섰다.
중국 상무부는 23일 미국산 신선·건조 과일, 와인, 강관 등 120개 품목에 15%의 관세를, 돈육, 재활용 알루미늄 등 8개 품목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과 대상의 수입 규모는 30억 달러로, 미국의 500억 달러에 비해 6%에 불과한 수준이지만 미국의 주요 농산물 생산지역이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진영의 핵심 텃밭이어서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에 경제적 영향 이상의 타격을 줄 수 있다.
반면 미국이 6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상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해도 6.5%로 예상되는 중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은 겨우 0.1% 떨어지는 데 그칠 것이라고 옥스퍼드 이코노믹스가 예상했다.
이에 따라 상당수 미국 기업들은 중국의 반격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미국 소비자기술협회(CTA)는 중국과 무역전쟁이 미국 내 IT 제품 교역 등과 관련된 일자리 약 250만 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내 철강을 이용하는 업계가 철강 생산업계보다 80배 많은 인력을 고용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 소매업지도자협회(RILA)도 대중국 관세가 미국 소비자에 대한 500억 달러의 세금 부과라며 소비재에 대한 광범위한 관세로 미국 가정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과녁을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무역전쟁이 주변국의 보호무역주의를 초래하며 세계통상대전으로 확전할 가능성도 엿보인다.
미국의 철강 관세 유예 대상국에서 제외된 일본은 한국과 중국산 철강제품에 대해 반덤핑 관세를 처음으로 부과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시적으로 관세 유예 대상이 된 유럽연합(EU)은 영구적인 관세면제를 요구하며 미국산 쌀과 주방용품, 의류·신발, 세탁기 등 연평균 28억유로(약 3조7천억원) 상당의 수입품에 보복관세 부과를 경고했다.
미중 간 무역전쟁이 전세계로 확산하면 양국의 양패구상(兩敗俱傷·쌍방이 다 패하고 상처를 입음)을 넘어 회복세에 접어든 세계 경제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플레이션을 자극하지 않을 수준의 견고하고 꾸준한 경제 성장인 이른바 '골디락스' 시나리오가 뒤집힐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영국 야누스 헨더슨의 제임스 디 분젠 펀드매니저는 이전에는 투자자들이 골디락스 시나리오 때문에 경제적 여건을 크게 우려하지 않았지만 "무역전쟁이 이러한 풍선을 터뜨릴 잠재력을 상당히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버크넬대학 주즈췬(朱志群) 교수는 중국 신화통신에 "미국이 일방적인 제재를 가하면 중국이 분명히 맞대응 보복을 할 것이기 때문에 양국 소비자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루즈-루즈'(Lose-Lose)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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