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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벌이는 무역 전쟁의 이면

국제· 미국

by 21세기 나의조국 2018. 3. 10.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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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벌이는 무역 전쟁의 이면

유혜영 입력 2018.03.09. 15:06 


 

유혜영 뉴욕 대학 교수가 이번 호부터 '지도와 데이터로 들여다본 미국'을 격주로 연재한다. 지도와 데이터로 미국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를 조명한다. 첫 번째 주제는 세계화 이슈다.

2016년 11월 트럼프의 대선 승리 이후 미국 사회에서 가장 활발히 논의되는 분야는 세계화와 이민 문제다. 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미시간 주와 같이 최근 대선에서 계속 민주당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었던 미국 중서부 지역과 이른바 러스트 벨트(Rust Belt)라 불리는 과거 미국 제조업의 중심 지 북동부가 트럼프에게로 돌아섰다. 도대체 지난 몇 년간 이 지역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관심이 뜨겁다.


트럼프의 당선 이후 쏟아진 수많은 기사는 세계화가 이 지역 제조업과 경기에 미친 부정적 영향에 주목했다. 트럼프가 과반의 지지를 받은 지역에 가서 유권자들을 인터뷰한 기사들을 보면, 이들은 한결같이 중국이나 멕시코 같은 나라와 미국이 맺은 ‘불공정한’ 무역 때문에 자신이 일자리를 잃었거나 과거 ‘좋은 시절’에 비해 자신과 후손들의 미래가 더욱 불투명해졌다고 말한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대부분의 사회·경제 이슈에서 대립했지만, 무역과 세계화는 예외였다. 미국 최대의 무역협정인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민주당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 시절 발효되었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부시 대통령 재임 기간에 협상을 시작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마무리 지었다.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세계화가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기본 기조를 유지해왔으며 경제학자들도 최근까지는 여기에 큰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AP Photo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인디애나 주의 한 공장에서 노동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달랐다. 작은 정부와 시장경제를 강력히 지지해온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되었지만, 트럼프가 세계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공화당과는 크게 달랐다. 트럼프는 기존 정치 엘리트들이 언급하지 않았던 세계화의 어두운 면을 선거운동 기간에 적극 끄집어냈다. 워싱턴 엘리트와 기존 정치 체제에 불만을 품고 있던 사람들은 열광했다. 선거 기간 내내 트럼프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북미자유무역협정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같은 ‘불공정한’ 무역협정을 폐기하거나 재협상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지난해 1월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TPP에서 탈퇴하겠다는 행정명령을 발표했고, 북미자유무역협정 폐기를 운운하며 캐나다·멕시코와 재협상을 시도하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역시 예외가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협상으로 한국만 이득을 봤다고 주장하면서 최근 미국과 한국 대표들이 재협상에 들어갔다.


트럼프 행정부의 세계화 및 무역협정에 관한 정책과 기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분석이 필요하다. 첫째, 과연 세계화와 불공정한 무역으로 인해 정말 미국이 경제적으로 손해를 봤느냐의 문제다. 최저임금 인상부터 세금 감면의 경제적 효과 등 대부분 이슈에서 견해차를 보이는 경제학자들이 거의 유일하게 동의하는 내용이 바로 세계화의 경제적 효과인 듯하다.


시카고 경영대학이 저명한 경제학자 4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자유무역이 생산성을 향상하고 소비자 효용을 늘리며 미국에 장기적으로 이득이라는 주장에 동의한 경제학자는 95%에 달했다. 미국에서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 수는 1950년대 이후 꾸준히 줄었다. 그 이유로 기술 발전과 컴퓨터 등장으로 제조업 생산 과정의 많은 부분에서 이루어진 기계화와 자동화가 자주 거론되었다.


‘세계화’는 주요 이유로 잘 언급되지 않았고 무역이 미국 내 일자리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논의 대상 밖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제조업 노동자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사람들은 자동화 이외 다른 원인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2013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경제학자 데이비드 오터와 공저자들이 발표한 <차이나 신드롬:수입 경쟁이 미국에서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David Autor, David Dorn, and Gordon Hanson, 2013, <The China Syndrome:Local Labor Market Effects of Import Competition in the United States>)이라는 논문은 중국의 세계경제 질서 편입이 제조업 일자리 감소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주었다. 이 논문으로 세계화의 효과가 일자리 관련 논의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중국 수입 제품 때문에 미국 일자리 줄었다? 

 

오터 교수와 공저자들은 중국에서 들어오는 수입 제품이 늘어나면서 미국 제조업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임금 감소를 경험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면서 이러한 현상은 가속화되었는데 1991년 미국 제조업 분야 수입에서 중국산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1%에 불과했지만 2016년에는 10%로 증가했다. 중국산 제품의 미국 시장 진출이 가져온 노동시장의 효과는 지역별로 큰 차이를 보였다. 위 지도는 미국 노동시장을 나타내는 단위 중 하나인 722개 출퇴근 지역(commuting zone)이 중국산 수입품 때문에 얼마나 타격을 받았는지 보여준다. 소규모 가구 업체나 장난감, 스포츠 용품, 그리고 전자기기와 플라스틱 관련 제품을 주로 생산하던 지역이 큰 타격을 입었다.



오터 교수와 공저자들은 중국과의 무역 경쟁이 심해진 지역에서 정치적으로 극단적 성향을 보인 후보를 지지하는 성향이 늘어났으며,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지지율이 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 연구자들은 중국과의 무역에서 우위를 빼앗긴 지역에서 일자리를 잃은 남성들이 증가하며 결혼율이 낮아지고 미혼모가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과의 무역 경쟁 심화, 더 넓은 의미에서 세계화로 인해 제조업 일자리 감소가 가져오는 정치·사회적 파장에 대한 연구는 현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후속 연구들은 세계화가 가져온 긍정적 효과도 드러냈다. 캘리포니아 대학(데이비스 캠퍼스)의 로버트 핀스트라 교수는 공저자들과 함께 중국산 제품 수입이 일자리를 줄인 것은 맞지만 동시에 세계화로 미국의 수출이 늘어나면서 고용이 증가한 긍정적 효과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Robert Feenstra, Hong Ma, and Yuan Xu, 2017, <US Exports and Employment>).


이 연구에 따르면 1991년과 2007년 사이 특히 반도체·자동차·석유 정제 분야에서는 수출 덕분에 일자리가 많이 늘어났다. 연구진은 수출 증가로 인해 늘어난 일자리의 수가 수입 증가로 인해 없어진 일자리와 비슷하므로 세계화로 득을 보는 산업과 피해를 보는 산업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해주었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화의 빛과 그늘을 모두 반영해서 정책을 세울지는 의문이다. 경제적 손익 계산과 정치적 손익 계산은 다르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관련 정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정치적 기반이 되는 지역이 세계화에 어떻게 영향을 받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55쪽 지도를 보면 전통적으로 공화당 세력이 기반이 된 남부의 테네시·앨라배마·미시시피 주 같은 곳이 큰 타격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 특유의 선거인단제도 때문에 미국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경합 주(swing states)들에 세계화가 미친 영향이다. 노스캐롤라이나·오하이오·버지니아와 같은 전통적인 경합 주와 새롭게 경합 주에 이름을 올린 펜실베이니아·미시간·위스콘신 역시 세계화로 인한 타격을 크게 받았다. 이 지역들에서 제조업 일자리가 급격히 줄어든 데는 로봇을 통한 자동화가 큰 작용을 했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표가 필요한 정치인들에게는 로봇을 비난하는 것보다 중국이나 멕시코 같은 다른 나라를 비난하는 게 훨씬 효과적인 전략이다. 트럼프도 지역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무역과 관련해 강경한 기조를 유지해 나갈 것이다. 이 지역 정치인들 역시 비슷한 태도를 보일 듯하다.


미국 대기업 90%가 한·미 자유무역협정 지지


민주주의 사회의 핵심 딜레마 중 하나는 사회적으로 효율적인 정책이 반드시 정치적으로도 가장 많은 표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세계화를 둘러싼 논쟁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세계화로 타격받은 지역의 경제를 활성화하고 실직당한 사람들을 다시 노동시장에 끌어들이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정책은 다른 나라와의 무역을 줄이거나 미국 기업이 다른 나라에 공장을 짓지 못하도록 막는 게 아니다. 실직 노동자들이 재취업할 수 있도록 교육 기회를 확대해 이들의 생산성을 늘리는 동시에 실업급여 같은 사회 안전망을 공고히 해서 실직으로 인한 경제적·사회적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문제는 정책의 효과가 더디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또 2년 혹은 4년마다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정치인 처지에서 근본 해결책을 찾아 정책을 집행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큰 실익이 없다. 트럼프와 미국 정치인들이 직면한 이런 문제를 인지하지 않고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포함해 앞으로 있을 무역 관련 협정에서 미국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AP Photo 로봇에 의한 자동화가 이뤄진 테슬라의 미국 캘리포니아 자동차 공장 조립 라인.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이 세계화와 자유무역협정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다고 해서 앞으로 미국이 자유무역협정을 폐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고 진단하는 것 역시 섣부른 판단이다. 미국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규모 기업들은 여전히 자유무역을 지지하고 의회와 행정부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로비 활동을 펼치기 때문이다.


필자의 분석에 따르면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진행되는 동안 미국 기업 325개와 조직이 로비스트를 고용해서 정부에 로비했는데, 이 중 295개의 그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찬성하고 반대 의견을 낸 기업과 조직은 30개에 불과했다(Hye Young You, 2017, <Foreign Lobbying in the US Congress:Evidence from Free Trade Agreements>). 다국적 제약회사, 은행과 금융 관련 기업, 그리고 식품이나 농산물 관련 대규모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자유무역협정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폐기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2018년 의회 중간선거와 2020년 재선을 염두에 둔 트럼프 행정부는 트럼프와 공화당 지지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표면적으로는 계속 자유무역과 관련해서 강경한 태도를 유지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재협상 과정에서 트럼프가 언론을 통해 발표하는 ‘말’에 흔들리지 말고 트럼프와 공화당이 정치적으로 가장 우선순위를 두는 ‘지역’과 그 지역의 ‘주력 산업’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유혜영 (뉴욕 대학 교수ㆍ정치학)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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