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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공식 기자회견을 보도하는 CNN 뉴스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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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제45대 미국 대통령이 오는 20일 취임한다. 역사를 보면, 새로운 미국 대통령의 출현은 세계 질서에 많은 변화를 초래해왔다. 21세기만 해도 조지 부시의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은 중동 지역에 지옥도를 펼쳐 놨다. 버락 오바마는 미국-쿠바 수교, 미국-이란 화해 등 20세기 미국 대외전략의 묶은 숙제를 차분히 풀며 '화해의 시대'로 가는 문틈을 열었다.
트럼프 시대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초불확실성'이다. 세계는 트럼프를 '어디로 튈지 모를 공'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지금 세계는 트럼프 시대의 출현을 두고 극도의 경계심, 불안감이 팽배하다. 더구나 국제질서 측면에서 보면, 글로벌 거버넌스이던 자본주의-자유주의 정치경제 질서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브렉시트에서 트럼프 당선까지 지구를 휘젓고 있는 '고립주의-반이민 정서'의 광풍이 대표적이다. 국제질서가 근본부터 흔들리는데, 최강국 미국의 최고 리더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불안은 깊고 넓다.
하지만 이미 국내외 많은 언론에서 분석했지만, 트럼프는 어느 날 하늘에서 툭 떨어진 별종이 아니다. 트럼프는 배리 골드워터-조지 월리스 등 '극단적 인종주의에 기댄 (극우) 포퓰리즘 정치', 좀 더 중립적인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풀뿌리 대중운동에 기반을 둔 (공화당) 보수파의 인종주의 정치'의 연장선에 있다.
골드워터는 1964년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나서 민주당의 린든 존슨한테 참패했으나 진보파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풀뿌리 대중운동'에 기반을 둔 보수 정치의 가능성을 공화당 보수파에 깊이 각인했다. 골드워터의 선거 유세 투어는 '미국 보수주의의 우드스톡 축제'로 불릴 정도로 뜨거웠다. 로널드 레이건은 골드워터가 대선에 나섰을 때 찬조연설을 한 열렬한 골드워터 지지자였다.
조지 월리스는 저소득 백인 노동자 기반의 극우 인종주의 제3당(미국 독립당) 후보로 1968년 대선에 뛰어들었다. 그는 낙선했으나 닉슨의 '인종주의적 선거운동'을 견인했다. 월리스의 선거 구호는 "미국을 위해 일어나라"(Stand up for America)였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하지 않나? 트럼프는 선거운동 때 "위대한 미국의 재건"(Make America Great Again)을 줄기차게 외쳤다.
하지만 미국의 역사가 입증하듯이, 선거운동을 하는 대통령 후보와 백악관의 주인이 된 대통령은 '같은 사람'일 수 없다. 이미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키신저 현실주의'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거나, "닉슨과 많이 닮았다"(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그러니 트럼프가 어디로 튈지는 더 두고 볼 문제다.
지지율 44%, 역사상 최저 지지율로 임기 시작하는 대통령
힐러리 클린턴을 꺾고 포효하던 트럼프는 정식 취임도 하기 전부터 안팎의 난제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갤럽이 4~8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트럼프 지지율은 44%다. 취임 직전 지지율이 83%였던 오바마, 68%였던 빌 클린턴은 물론 '개표 부정' 시비로 정통성 논란이 있던 조지 부시의 61%보다도 훨씬 낮다. 미국 역사상 가장 낮은 지지율로 국정을 시작하는 대통령이다.
국토안보부 발표를 보면, 취임식이 열리는 20일 어름에 워싱턴에서 집회를 신청한 건수가 99건에 이른다. 대부분은 '반(反) 트럼프 집회'다. 특히 21일 오전 '마초 트럼프'에 반대해 열릴 '여성들의 행진'은 이미 19만4천 명이 페이스북으로 참가를 신청했을 정도로 대규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브로맨스'를 과시해온 트럼프의 앞길을 가로막고 나선 '러시아 변수'는 더 심각하다. 중앙정보국(CIA) 등 미국 정보기관들은 6일 오바마 대통령과 트럼프 당선자, 의회 지도부에 '러시아 게이트 수사 보고서'를 비밀리에 보고했다.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에 이어 러시아 정부가 오래전부터 트럼프의 약점을 수집해왔다는 의혹 따위가 담겼다고 CNN 등이 보도했다.
심지어는 2013년 트럼프가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호텔 성매매 동영상을 러시아 정부가 확보해 보관하고 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옛소련 시절 악명이 높던 KGB(국가보안위원회) 등 정보기관이 반체제 인사나 외국 요인의 약점(특히 성 추문)을 수집해 악용하던 '콤프로마트'(kompromat)에 트럼프가 걸린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나라 안팎의 반발과 추문은 트럼프 행정부의 국정 수행 동력을 약화시킨다. 이를 돌파하려는 트럼프 쪽의 무리수가 나올 위험도 있다. 심란하지만 지켜볼 수밖에.
오바마 추진 '아시아 귀환' '전략적 인내' 정책 귀추 주목
'트럼프 시대'의 출현이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 어떤 변화를 몰아올지, 아직은 가늠하기 어렵다. 트럼프 쪽이 이에 대해 체계적으로 내놓은 정책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트럼프가 거듭 강조해온 세 가지 정도는 관찰의 잣대로 삼을 수 있겠다.
첫째, 미국 우선주의.
둘째, (지정학보다) 지경학적 사고 중시.
셋째, 동맹 재조정.
이런 세 가지 인식의 특성이 '에이비오'(Anything But Obama)의 프리즘을 통과해 한반도에 투사될 가능성이 있다. 동북아·한반도 전략과 관련한 '에이비오'의 대상은 우선 두 가지다.
첫째 '아시아 귀환'(pivot to Asia) 정책의 지속 여부,
둘째 '전략적 인내' 정책의 폐기·대체·개선 여부다.
'아시아 귀환' 정책 지속 여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세계전략과 맞닿아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전략적 인내'를 어느 쪽으로 바꿀지는 '아시아 귀환' 전략 지속 여부와 무관치 않으며, 무엇보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직접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 방향이 '대화와 협상'이 아닌 '군사적 행동'이라면 한반도에 재앙이 될 위험이 크다. 사려 깊게 경계해야 할 위험 요인이다.
우리가 주인의식 갖고 '상상력 충만한 외교' 구상해야
한미 동맹을 비롯한 한미 관계에서도 한미 공동방위에 따른 '방위부담'과 '방위비분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 지속 추진 여부,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여부를 비롯한 통상 갈등 위험 등 난제가 숱하다. 무엇보다 '북핵·북한 문제'의 대응 해법이 중요하다.
트럼프 당선 이후, 한국사회엔 지레 겁먹고 '사드든 방위비분담이든 트럼프가 하자는 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특히 이른바 보수층 사이에서. 그러나 트럼프한테 한반도는 자기 나라도 아닐 뿐더러 우선 관심사도 아니다. 트럼프는 아직껏 '북핵·북한 문제'에 대해서든 한미관계에 대해서는 공식적이고도 체계적인 견해를 밝히지 않고 있다. 20일 취임사에서도 '북핵·북한 문제'가 비중있게 다뤄질 가능성은 낮다.
이런 때일수록 '주인의식'이 절실하다. '북핵·북한 문제'나 한-미 관계와 관련해 해법을 고민할 주체는 당연히 우리다. 타성에 젖은 동맹 편향적 사고를 떨치고 '상상력 충만한 외교'를 구상해야 할 때다. 조기 대선에서 한국 사회의 선택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