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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트 = 김연아 기자 yuna@
정유년 ‘新인류족’ 10
어느 해보다 혼란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2017년 정유년(丁酉年) 새해가 밝았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대통령 탄핵으로 뒤숭숭한 대한민국은 희망찬 새해를 맞이할 겨를도 없이 2016년의 악몽에서조차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느낌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극복의 DNA가 작용했다. 이번에도 성숙한 시스템과 국민적 성원이 언젠가는 모든 걸 정상 궤도로 되돌려놓을 것으로 믿는다. 2017년엔 위기를 극복하는 기회를 잡고 절망을 넘어서는 희망찾기를 기원한다. 새해는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것이며, 우리는 이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를 최신 트렌드를 통해 전망해봤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17’과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의 ‘라이프 트렌드 2017-적당한 불편’을 바탕으로 2017년을 변화시킬 트렌드 10가지를 ‘족’(族)으로 정리했다. 이 중에 3개 이상만 알고 있어도 우리의 새해는 훨씬 풍요로워질 것이다.
- 1코노미족
혼영·혼행… 1인가구 전성시대
‘1인’과 ‘이코노미’(Economy)라는 단어의 조합이다. 무엇이든 혼자 하기를 선호하는 사람을 말한다. ‘혼밥’(혼자 밥 먹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 등 1인 가구 위주로 돌아가는 요즘의 소비생활 패턴을 2017년식으로 명명한 것이다.
이미 혼밥, 혼술 하는 사람을 보기는 어렵지 않다. 편의점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퇴근 후에는 집에서 맥주 한잔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이 꽤 많다. 그러나 이 정도는 혼자 하기의 초보 단계다. 그다음엔 ‘혼영’(혼자 영화 보기), ‘혼놀’(혼자 놀기), ‘혼행’(혼자 여행 가기) 등의 단계로 이어진다. 취미와 여가생활을 혼자 즐기는 것이다. 집에서는 주로 독서·TV·게임 등을 하고, 집 밖에서는 혼자 자전거 타기, 등산 등을 하며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CGV 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2013년 전체 관객 중 7.2%에 불과했던 혼영족 비율이 2014년 8.3%, 2015년 9.8%에 이어 2016년 상반기에는 11.7%를 차지했다.
- 욜로족
인생은 한번뿐… 현재에 충실!
욜로(YOLO·You Only Live Once)는 미국에서 생겨난 신조어다. 주로 대화의 주제를 바꿀 때 하는 말이었는데 2011년 인기 래퍼 드레이크의 노래에 등장한 “인생은 한 번뿐이니 작은 일에 연연하지 말고 후회 없이 즐기며 사랑하고 배우라”는 의미가 재조명되면서 젊은층이 자주 쓰는 유행어가 됐다. 말 그대로 인생은 한 번뿐이니 오늘을 즐겁게 살자는 뜻이다.
국내에서는 tvN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청춘’(사진)의 아프리카 편을 통해 알려졌다. 아프리카 여행 중에 류준열이 혼자 캠핑여행을 하는 금발의 외국인 여성을 만나 “대단하다”고 칭찬했더니 그 여성이 “욜로”라고 화답한 것이다. 욜로는 지극히 감각적이고 현재 지향적인 소비로 나타난다. “현재를 즐기라”는 의미의 카르페 디엠이 삶의 태도에 대한 격언이라면 욜로는 현실적 삶의 버전인 셈이다. 욜로는 단순히 충동적인 의미가 아니라 후회 없이 즐기고 사랑하고 배우라는 삶의 철학이자 현실을 직시하는 소비와 문화의 트렌드다. 따라서 욜로족은 오늘에 충실하자는 ‘투데이족’이기도 하다.
- 불편함 구매족
내 만족위해… 불편해도 괜찮아
그동안 소비의 목적은 돈을 주고 편리함을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돈을 주고 불편함을 구매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가격 인하, 정서적 만족감을 얻는 것으로 사소한 불편함쯤은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슈퍼마켓인 ‘더 필러리’(The Fillery)는 우리가 알던 여느 슈퍼마켓과 다르다. 포장된 제품이 없다. 그렇다고 직원이 포장해주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물건을 사려면 직접 포장 용기를 가져오거나 이곳에서 제공하는 재활용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가야 한다. 화려하고 깔끔한 진열대에서 포장된 물건을 담는 데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공간이지만 한 달 만에 1만7075달러의 후원금이 모일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소비자들은 물건을 살 때 귀찮고 번거롭지만 대신 줄어든 비용만큼의 가격 인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분명 2017년 서울에서도 이런 마켓들이 속속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 픽미족
치열한 경쟁 뚫는 고단한 2030
2016년 화제를 모은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에서 참가자들이 “나를 뽑아 달라”(Pick me up)며 열창했던 노래에서 따온 말이다. 픽미(Pick Me)세대는 어느 세대보다 모바일 환경에 익숙한 1985∼1997년 사이에 출생한 사람들을 말한다. 현재 2030 세대라고 볼 수 있다. 픽미족을 구별하는 가장 큰 특징은 이들이 모바일 인터넷을 ‘유비쿼터스’(언제 어디에나 존재함)의 형태로 경험하고 자란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란 점이다. 프랑스 현대 철학가 미셸 세르는 ‘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라는 책에서 인터넷을 자신의 뇌와 연결된 두 번째 뇌로 여기는 신인류가 탄생했음을 지적한 바 있다. 픽미세대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비롯했으나 현실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처럼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는 고단한 세대다. 이들은 사회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크지만 나름의 생존 방식으로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주체다.
- 플렉시테리언족
융통성있게…육식하는 채식주의
2016년 문학계에는 큰 경사가 있었다. 소설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지난해 5월 세계적인 권위의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상을 받았다. 채식주의자는 2007년에 발간됐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트렌드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나친 육식이 문제시되면서 채식주의는 인류의 건강을 지켜줄 중요한 라이프 스타일의 하나가 됐다. 채식주의는 기본적으로 6단계가 있다. 오로지 채소만 먹는 ‘비건’(Vegan)부터 조류 및 닭고기와 오리고기 등 흰살 고기까지 허용하는 ‘폴로’(Pollo)까지 다양하다. 마지막 6단계인 ‘플렉서블 베지테리언’ 또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은 평소 채식을 하지만 경우에 따라 육식도 하는 것을 지칭한다. 육식과의 결별이 아니라 채식을 중심에 두고 융통성 있게 육식을 겸하는 것이다.
- 시트러스족
레몬·자몽… 상큼한 신맛 열풍
최근 음식에 관한 대중의 관심은 거의 절대적이다. 따라서 맛에도 유행이 있고 2017년의 새 맛 트렌드가 점쳐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단맛과 짠맛이 유행했다. 달콤한 디저트나 짭조름한 라면 등이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단맛과 짠맛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고 있다. 건강 문제 때문이다. 당뇨와 고혈압 등 단맛과 짠맛의 부작용이 널리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은 다른 맛을 찾고 있다. 2017년에 유행할 맛은 신맛, 즉 ‘시트러스’(Citrus)다. 실제로 시트러스의 대명사인 레몬과 자몽(사진)의 수입이 최근 몇 년간 크게 늘었다. 레몬은 2014년 1만3533t에서 2015년 1만7270t으로 증가했다. 자몽도 2013년 1만1574t에서 2014년 1만9483t, 2015년에는 2만5017t으로 증가 폭이 컸다. 커피도 신맛이 각광 받고 있다. 스타벅스와 커피빈 등으로 대변되던 커피 시장에 폴 바셋이 약진하고 있다. 프리미엄 커피를 지향하는 폴 바셋은 스페셜티 원두를 이용해 신맛 커피 시장을 넓히고 있다.
- 캣피플족
‘냥이’ 매력에 푹 빠진 사람들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고양이와 관련된 용어가 늘어나고 사업도 번창하고 있다. 그동안 반려동물이라고 할 때 첫 번째로 떠오르는 것은 개였다. 그러나 최근엔 개보다 고양이의 개체 수가 더 늘어나는 추세다. 일본·독일·미국에서 반려견은 감소세에 있으나 반려묘는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는 게 그렇다. 한국에서도 개 숫자는 줄어들고 있는 데 반해 고양이 숫자는 증가하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2012년 실시한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 의식조사’에 따르면 2012년 기준 반려묘는 115만8932마리로 추산됐다. 이는 2006년 조사에서 47만7510마리였던 것과 비교하면 6년 만에 2.4배로 늘어난 것이다. 반면 반려견은 2006년 655만1206마리에서 2012년 439만7275마리로 오히려 3분의 1이 줄었다.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은 1인 가구의 증가와 관련이 있다. 고양이는 개보다 깨끗하고 조용하다. 원룸 같은 좁은 곳에서도 함께 지내는 데 불편하지 않다. 아이 없는 부부가 아이 대신 반려동물만 기르는 ‘딩펫족’도 늘어나는 추세다.
- 뉴 캥거루족
결혼한 자녀 다시 부모집으로
고양이가 독립을 상징한다면 캥거루는 반대다. 2014년 기준 미국의 18∼34세 젊은이 중 32.1%가 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 이는 1940년 35% 이후 7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였다. 가장 낮았을 때는 1960년의 20%.0 이는 고용률과 관련돼 있었다. 1960년에 청년 고용률은 84%, 2014년에는 71%였다. 청년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해 부모 신세를 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리터루족도 있다. 결혼한 자녀가 다시 부모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다. 리턴과 캥거루의 합성어다. 리터루족 역시 경제적 이유가 크다. 통계청의 ‘2010 인구주택총조사’에서는 2015년에 수도권 5인 이상 가구가 2013년 대비 6.8%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실제로는 2.6% 감소해 예상을 크게 밑돌았다. 전세난 심화로 인해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는 가구가 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 뉴 식스티족
중년도 노년도 아닌 젊은 60대
나이가 든다고 마음까지 늙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60대는 중년도 노년도 아닌 특별한 세대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나이다. 지금까지는 없던 새로운 60대가 등장하고 있다. 나이를 잊은 60대의 변신, 멋쟁이로 거듭나는 ‘뉴 식스티’(New Sixty)다. 2013년 기준 사람의 기대수명은 81.8세다. 거의 82세까지 산다는 얘기다. 그런데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2013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은 49.6%로 OECD 평균 12.4%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나머지 50%는 소비 여력이 있는 셈이 된다. 그중에서도 상위 10∼20%의 소비 여력은 그 어느 세대보다 막강하다. 이 점에서 60대의 존재는 각별하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2015 모바일인터넷 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60대 이상의 인터넷 이용률이 2014년 50.6%에서 2015년 59.6%로 늘었다. 카카오톡 이용률은 2014년 62.6%에서 2015년 72.3%로 증가했다. 이제 뉴 식스티는 나이를 잊고 사는 ‘논 에이지’(Non Age) 세대라고 할 수 있다.
- 휘게족
커피·낮잠… 소박한 행복 누리기
지금까지 웰빙과 힐링은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따지며 ‘잘살자’를 지향했다. 그러나 2017년에는 잘사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즐겁게 살자’를 추구한다. 이를 뜻하는 단어가 ‘휘게’(Hygge·사진)다. 휘게는 덴마크어로 안락하고 아늑한 상태를 말한다. 스웨덴의 ‘피카’(Fika)와 비슷하다. 피카는 커피를 뜻한다. 바쁜 일상에서 커피 한잔할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커피 한 잔의 여유는 심지어 낮잠으로 확대되고 있다. 애플, 페이스북, 나이키, 구글 등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글로벌 기업이라는 점 외에도 사내에 낮잠용 수면시설을 설치했다는 점에서 닮았다. 미국 수면학회와 나사(미 항공우주국)의 연구 결과를 보면 20∼30분 낮잠을 잘 경우 집중력과 업무 수행 능력이 향상된다고 한다. 26분의 낮잠으로 업무 수행 능력은 34%, 집중력은 54% 증가한다고 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근무 시간 중에 낮잠을 도입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