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정말 돈 없으면 집을 사기 힘들어지게 됐다. 주택담보 대출을 받아도 원리금을 동시에 값도록 대출 문턱이 높아진 데 이어, 내년부터는 집단대출(잔금대출)을 받아도 사실상 거치기간(1년 이내) 없이 바로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아야 해 대출을 끼고 집 장만을 하기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당장 주택시장에는 ‘적신호’가 켜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투기수요뿐 아니라 실수요도 자금 부담이 커져 청약 경쟁률 하락을 넘어 주택시장이 둔화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4일 내년 1월 1일 이후 분양되는 신규 아파트 청약자가 금융권에서 아파트 집단대출(잔금 대출)을 받을 때 처음부터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아야 하고, 소득이 불분명한 차주의 경우 잔금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8·25 가계부채 관리방안 후속조치’를 발표했다.
내년부터 아파트를 분양받고 집단대출을 받을 때 거치기간 없이 바로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아야 한다. 투기 수요는 물론 실수요자들도 자금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조선일보 DB
이번 대책의 핵심은 대출을 감당할 수 있는 수요자만 집을 사라는 것이다. 기존에는 소득이 없는 상황에서 집을 분양받더라도 원금은 3~5년 정도 거치하고 낮은 이자를 내며 집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이런 일이 불가능해졌다. 집단대출이 잔금대출로 전환되는 입주 시점에 원금과 이자를 모두 낼 수 있는 자금력을 갖춘 수요자만 집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주택시장에도 비상이 걸렸다. 주택시장의 특징 중 하나가 집값이 내려갈 때 집을 사는 게 아니라 수요자들이 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달려들 때나 시세차익에 대한 기대가 있을 때 매매가 활발하게 이뤄지는데, 이번 대책으로 투기 수요가 급격하게 줄어들면 실수요자도 집값 상승에 거는 기대를 버리게 돼 주택시장 진입을 미룰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원리금을 곧바로 갚을 능력이 없으면 아예 계약조차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청약 경쟁률이 곤두박질치는 것은 물론 분양권 전매도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분양권 전매제한 기간과 청약 1순위 조건을 강화하는 내용이 핵심인 11·3 부동산 대책과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따른 정국 불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경제 정책 여파에 따른 금리 인상 우려까지 맞물리면 주택시장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가계부채 감축 의지가 예상보다 강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작년과 올해 전국 주택 공급량을 합하면 약 100만가구 정도가 되는데, 향후 이런 추세로 공급이 쏟아지고, 대출마저 제한이 없을 경우 가계부채 급증을 제어할 수 없다고 정부가 판단했을 것이란 설명이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주택시장이 양극화됐을 때는 집값이 오르는 지역이 전체 시장 분위기를 결정하는데, 11·3 대책과 이번 가계부채 후속조치 영향으로 환금성이 떨어지고 투기수요가 줄어들게 돼 전체적으로 시장 열기는 식을 것”이라며 “청약자와 전매거래가 줄고, 건설사도 스스로 물량을 조절하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번 대책 여파로 전세시장이 영향을 받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내년 분양되는 물량이 입주를 시작하게 되는 2019년쯤이면 전세물건이 많아질 것”이라며 “월세화 속도가 늦춰지고, 전세금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신혼부부처럼 자금력이 부족한 실수요자는 지금보다 훨씬 자금계획을 촘촘하게 짜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진혁 기자 kinoey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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