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주연 입력 2016.10.20. 11:23 수정 2016.10.20. 11:29
백화점 고객 셋 중 한 명은 男…온라인쇼핑 즐기는 '50대 엄지족' 급증
맞벌이부부 중 절반이 조부모에 '육아' 맡겨…육아시장 움직이는 '할머니'
술 즐기는 20대 여성 증가로 주류업체 '도수경쟁' 등…'소비 세대교체' 가속화
[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기저귀를 갓 뗀 두살배기 손자는 커피숍서 푸딩을 즐겨먹고, 불혹을 앞둔 아빠는 장난감 변신로봇에 심취하며, 환갑을 맞은 할아버지는 새로 장만한 3000만원짜리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엊그제 온라인몰서 주문한 가죽점퍼와 선글라스로 한껏 멋을 부린 채 강변을 달리며 남자들의 로망이 된다.'
가상 속 꾸며낸 이야기일 것만 같은 이러한 상황은 2016년 '소비 세대교체'를 겪는 대한민국 소비시장의 현주소다. 평균 수명이 길어져 고령화 사회로 진입할수록 '실버세대'가 유통시장의 주요 소비군으로 떠오르고 있고,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외식문화가 발달하면서 어린 자녀들은 이른 나이부터 집 밖에서 먹는 게 더욱 자연스러워진 것. 이에 따라 업체별로 고정됐던 주력소비층이 거대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변화를 겪으면서 유통업계 전반에 걸쳐 '상식을 깬 소비'가 가속화되고 있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백화점 고객의 3명 중 1명은 남성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전체 고객 중 남성 비중이 매년 높아져 지난해 35%를 넘겼고, 현대백화점 남성고객 비중은 2013년 27.8%에서 2014년 31.0%로 증가한 뒤 지난해 32.6%를 차지했다. 특히 백화점 업계에선 인구 고령화로 인한 실버세대가 주력소비층으로 부상하면서 '은빛물결'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롯데백화점에서 60대 이상 구매 비중은 2012년 9.1%에서 올 상반기 10.3%까지 늘었으며 50대 이상은 21.7%에서 22.5%로 증가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구매력이 있는 40대 이상 중장년층 고객의 매출 구성비가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면서 "객단가(1인당 구매금액)도 50대 이상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거리 곳곳에서는 휴대폰을 붙잡고 쇼핑에 심취한 50대 '엄지족'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기존까지 모바일ㆍ온라인 쇼핑에서 핵심고객은 20~30대였지만 최근 들어 40~50대 고객이 큰 폭으로 늘고 있다. AK몰에서는 지난 8월12~26일까지 추석선물 매출 상위 1~3위 카테고리에서 50대 이상 연령층의 구매비중이 77%에 달했다. 50대 여성들이 추석선물로 건강ㆍ기호 식품을 가장 많이 구매한 것으로 분석된다.
옥션에서도 최근 2년간 4050세대는 2014년 40%에서 2015(1~11월)년 45%로 늘었다. 또한 외모를 가꾸는 그루밍족이 늘면서 최근 한 달(9월11일~10월10일)간 남성 화장품 구매자 중 50대 구매율은 전년동기대비 184% 증가했으며 클렌징로션 구매율은 360% 신장했다.
육아용품 시장에서는 '엄마' 대신 '할머니'가 큰 손이다. 국내 맞벌이 부부 510만가구 중 절반수준인 250만 가구가 육아를 조부모에게 맡김에 따라 조부모들이 육아를 전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육아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할머니라는 말도 나온다. 일례로 현대백화점에서 수입 아동복의 60대 이상 구매고객 비중은 올 상반기 12.6%로 2013년(7.1%)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이와 반대로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치부됐던 상품군이 젊어지는 경우도 있다. 주류업계에서는 '아재술'로 불려졌던 소주, 위스키, 막걸리의 소비층이 20~30대로 급변하고 있다. 특히 여성들이 새로운 소비주체로 떠오름에 따라 주류업체들은 '언니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도수를 낮춘 제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지난해 주류 시장을 강타했던 롯데주류의 '처음처럼 순하리'를 비롯해 하이트진로, 무학 등 소주업체들은 앞다퉈 과일리큐르를 출시했고 유자 외에 자몽, 파인애플, 사과 등 다양한 맛의 수십여종의 제품이 선을 보였다. 지난 3월 내놓은 탄산주 이슬톡톡은 4개월 만에 약 2000만병이 판매되며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으며 6월 출시한 하이트 망고링고 역시 단기간에 초기 물량 약 7만 상자가 모두 동났다.
이와 함께 '애들 것'으로만 여겨왔던 패스트푸드와 장난감은 성인들 차지가 됐다. '10대 비만의 주범=햄버거'로 불리며 청소년이 주요 고객층일 것으로 예상되는 패스트푸드에는 정작 10대가 없다. 맥도날드가 최근 3개월간 매장 방문 고객 1만여명을 대상으로 주요 소비층을 조사한 결과, 2~18세까지의 고객은 전체의 17%에 그쳤으며 19~49세까지의 고객이 83%인 것으로 집계됐다.
장난감도 마찬가지다. '다 큰 어른이 애 것 갖고 논다'는 핀잔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이른바 키덜트족(어린이의 감성을 추구하는 어른들을 일컫는 말)을 중심으로 장난감 갖고 노는 어른은 지속 증가하는 추세다. 옥션이 최근 한 달(9월18일~10월17일)간 40~60대 성인 남성들의 키덜트상품 구매 증감률을 조사한 결과, 전년동기대비 40대는 43%, 50대는 73%, 60대는 42%씩 구매량이 늘었다. 조립완구 로봇은 40대가 213%, 60대가 300%씩 증가했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취업난 등으로 젊은층 소비는 줄어든 반면 상대적으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50대 이상 중장년층이 주 소비층으로 자리잡고 있다"면서 "수명이 길어지면서 중장년층들은 스스로를 꾸미는데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고, 자기 인생이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들은 취미활동에 지갑을 열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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