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비 트래비 입력 2016.09.02 06:55
바다와 육지의 경계,
바다와 하늘의 경계,
현실과 환상의 경계,
고독과 군중의 경계,
화려한 즐거움과 처절한 고요함의 경계.
‘경계의 예술’이 완성되는 곳, 크루즈 여행이었다.
누구에게나 여행은 로망이다. 여행 작가라는 직업을 갖고 살아 온 나에게도 여전히 여행의 로망이 있었다. 바로 크루즈 여행. 크루즈 여행을 꿈꾸기 시작한 건 20대 초반 무렵. 캐나다 밴쿠버에서 지내던 시절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캐나다플레이스 인근에 대형 크루즈가 정박해 있는 풍광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날은 커다란 크루즈 한 척이 서 있다가 어느 날은 또 사라졌다. 하루아침에 10층 넘는 대형 건물이 하나 생겼다 없어지는 것과 같았다.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하루 사이에 뒤바뀌는 형국. 나는 정박해 있던 크루즈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크루즈 안은 어떤 세상일까? 들어가 보지 못한 그 세계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언젠가’를 기약하며 버킷 리스트에 크루즈 여행을 올려놓았다.
마침내 그 ‘언젠가’가 찾아왔다. 처음 크루즈 여행을 꿈꾼 날로부터 20년이 흐른 2016년, 드디어 크루즈 여행이 현실이 됐다. 이탈리아 국적의 코스타(Costa) 크루즈 선사의 빅토리아호를 타고 부산항을 출발해 일본 고베와 미야자키, 나가세키를 거쳐 부산으로 돌아오는 일정. 롯데관광에서 크루즈 선박을 용선해 1년에 단 몇 차례 운영하는 전세선 상품이어서 한국 출발이 가능했다. 그 유명한 지중해나 알래스카 크루즈는 아니지만 나름의 장점이 있었다. 우선 크루즈가 출발하는 해외까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필요가 없다는 점.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는 만큼 사람들의 크루즈 여행에 대한 접근성도 높아지고, 비행기 이동 시간과 경비를 여행에 더 알뜰하게 투자할 수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크루즈가 출발하는 부산에 도착했다. 가까이서 본 코스타 빅토리아호는 실로 거대했다. 무게 7만5,000톤, 14층 높이 규모. 손님 2,000여 명과 승무원 800여 명이 탑승 가능하다. 크루즈를 흔히 ‘바다 위를 떠다니는 초대형 호텔’이라고 설명하는데, 진부하지만 딱 들어맞는 수식어다. 크루즈에 탑승하는 순간, 여행은 시작된다. 대부분의 여행이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반면, 크루즈는 다르다. 목적지가 중요하지 않다. 크루즈 자체가 이동 수단이요, 여행의 목적지가 되어 준다.
크루즈는 묘하다. 크루즈에 발을 내딛는 순간, 바로 한국을 떠나 타국으로 들어선다. 부산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여도 그 배에 오르는 순간, 내 몸은 이탈리아에 있는 셈이 된다. 코스타 크루즈가 이탈리아 선사여서 크루즈 위 역시 이탈리아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크루즈 여행을 하는 동안은 여러 국가들의 경계에 서 있는 느낌이다. 크루즈는 바다 위를 항해하지만 딱 바다에 속해 있다고 할 수 없다. 또한 육지 근처에 정박한다고 하더라도 딱 육지에 속한다고 할 수도 없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 어디쯤. 바다와 육지를 나누는 경계가 아니라 바다와 육지를 연결하는 경계가 되어 준다.
그런 묘한 감정이 크루즈 여행의 매력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에 선 기분. 여행이 주는 불완전한 감성. 크루즈는 그런 감정을 극대화해 주는 여행이다. 그래서일까. 크루즈 선상에서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들떠 있다. 배에 타자마자 ‘애니메이터’라고 불리는 엔터테이너들과의 댄스 타임이 진행된다. 눈동자 색이 다른 외국인들이 춤을 춘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도 그들의 율동에 맞춰 함께 춤을 춘다. 익숙하지 않은 음악과 율동에도 몸이 움직인다. 누구의 강제도 없다. 단지 마음이 시키는 일이다.
크루즈는 어쩌면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가서 만난 ‘이상한 나라’와도 같다. 현실과 환상의 중간 지점. 출발지와 기항지의 땅이 현실이라면 크루즈는 환상을 향해 떠나는 여정이다. 크루즈의 공기는 다르다. 환상이라는 특별 요소가 더해진다. 크루즈에 타서 그 공기를 마시는 탓에 사람의 마음도 환상으로 채워진다.
현실의 나를 잊고 또 다른 나를 만난다. 매일 크루즈 곳곳에서 펼쳐지는 댄스파티에서 애니메이터들과 함께 신나게 춤을 추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현실에서는 점잔깨나 뺄 듯한 아저씨도 새침해 보이는 아줌마도 수줍음 많아 보이는 아이도 크루즈 선상에서는 리듬에 몸을 맡기게 된다. 순전히 크루즈의 특별한 공기 때문이리라.
크루즈 안에서의 하루는 어떨까. 제법 바쁘다. 물론 제법 여유롭기도 하다. 어떤 강제성도 없기 때문에 누구는 바쁘게 지낼 수도 있고 누구는 한없이 여유롭게 지낼 수도 있다. 크루즈 여행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첫날 크루즈 안을 제대로 탐색해 볼 필요가 있다. 층별로 여러 가지 시설을 돌아보고 선상 신문을 통해 매일매일 진행되는 다채로운 프로그램도 꼼꼼하게 확인하자. 알고도 참여하지 않은 것과 몰라서 참여하지 못하는 건 엄연히 차원이 다르다. 크루즈에는 각종 이벤트가 진행되는 공연장이 있고, 야외 수영장, 피트니스 센터, 실내 수영장, 카지노, 키즈클럽, 사우나, 테니스 코트, 면세점 등이 있다.
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공연과 이벤트 프로그램도 준비되어 있다. 애니메이터들과 신나게 한 판 춤판이 벌어지는 댄스타임은 물론, 패션쇼와 마술쇼, 음악 공연 등 크고 작은 프로그램이 수시로 진행된다. 롯데관광 크루즈 전세선의 장점은 한국 여행객들을 위한 특별 공연과 이벤트를 함께 준비한다는 것. 올해는 탤런트 김성환 초청 공연 및 재즈, 난타, 비보이 공연 등 다양한 연령대를 위한 알찬 공연들이 펼쳐졌다. 각종 프로그램을 즐기는 중간중간 크루즈 부대시설을 이용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른다.
여행에서 먹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는 법. 크루즈 안에 준비되어 있는 각종 먹거리들을 알차게 맛보는 것도 크루즈 여행의 즐거움이다. 크루즈에서는 보통 식사는 모두 무료이고 술은 유료다. 조식과 석식은 뷔페와 정찬 메뉴 중 선택이 가능하다. 편안하고 자유롭게 식사하고 싶다면 뷔페를, 격식 있는 분위기를 즐기고 싶다면 정찬 식당을 이용하면 된다.
갈라디너나 환영디너 등 특별한 테마가 있는 날에는 정찬 식당을 이용하자. 특식과 이벤트가 제공되기도 한다. 특히 정찬 식당 직원들이 노래와 춤을 선보이는 갈라디너는 놓치지 말 것. 식사 중 직원들과 손님들이 함께 어우러져 춤을 추는 이 시간은 크루즈 여행이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다. 점심식사 때는 야외 수영장에서 햄버거와 핫도그를 먹을 수 있고 새벽 2시까지 피자와 일본식 라면도 즐길 수 있다.
▶tip
읽는 만큼 즐긴다 ‘선상 신문’
크루즈 여행을 완벽히 즐기고 싶다면 선상 신문을 꼭 챙겨 보자. 선상 신문은 크루즈에서 매일 발행하는 정보지. 그날 크루즈에서 진행되는 각종 이벤트와 공연, 식사 시간, 기항지 안내 등 모든 정보를 알차게 담고 있다. 매일 저녁 무렵, 이튿날 선상 신문이 객실로 배달된다. 잠들기 전 선상 신문을 꼼꼼히 살펴보며 다음날 크루즈 안에서의 일정을 계획해 보자.
▶알찬 크루즈 여행을 위한 준비물
① 슬리퍼
크루즈 객실에는 슬리퍼가 없다. 객실 안에서 편하게 신을 슬리퍼와 선내를 돌아다닐 때 편안하게 신을 신발을 함께 챙겨 가자.
② 파티를 위한 드레스·정장
크루즈에서 드레스 코드가 정해지는 식사가 두어 차례 정도 있다. 남자는 세미 정장이나 양복, 여자는 원피스나 간단한 드레스를 준비하면 된다. 한복도 가능하다. 일상생활에서 입기 망설여졌던 화려한 옷을 가져가 기분을 내도 좋다.
③ 생수
크루즈 객실에는 무료 생수가 제공되지 않는다. 생수를 판매하나 다소 비싼 편이다. 미리 하루 이틀 마실 생수 한두 병 정도 챙길 것. 기항지에서 생수를 구입해도 좋다. 크루즈 내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
④ 책과 음악
잠시 짬이 날 때 읽을 만한 책 한 권 정도 챙겨 가자. 갑판 테라스에서 선선한 바닷바람을 쐬며 좋아하는 책을 읽는 기분이 꽤나 괜찮다. 핸드폰에 좋아하는 음악 몇 곡 담아 가도 좋다. 크루즈 위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고 상상해 보라. 그보다 근사한 순간이 또 있을까.
⑤ 세면도구
크루즈에는 비누와 샴푸 정도만 준비되어 있다. 치약, 칫솔, 빗 등 기본 세면도구를 챙겨 가자.
⑥ 긴 옷
더운 계절이라 할지라도 긴 옷 한두 벌은 꼭 챙기자. 크루즈 선내에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가동되고 해가 지면 크루즈 야외의 바닷바람도 쌀쌀하다.
이번 크루즈 여행은 5박 6일 일정이었다. 출발하는 날과 도착하는 날을 제외하면 꼬박 4일 일정. 그중 하루는 크루즈가 그 어디에도 정박하지 않고 종일 바다를 항해한다. 승객들은 바다 위를 떠다니는 화려한 ‘유인도’에서 하루를 온전히 즐긴다.
크루즈라는 환상의 섬에서 보내는 하루는 매력적이다. 바다가 전해 오는 자유와 해방의 기운. 그 속에서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
크루즈 갑판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느끼기 좋은 곳. 중심부에는 야외 수영장이 있고 후미에는 테라스가 있다. 야외 수영장에서 쏟아지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깊고 넓은 바다 위의 수영장이라고 생각하니 더더욱 짜릿하다. 수영장 위쪽 잔디밭 선베드 하나를 차지하고 누워 책도 보고 음악도 듣는다. 그대로 스르르 잠들어도 좋다. 한 번쯤은 밤에 혼자 조용히 후미 테라스에 서 보자. 크루즈가 고요히 지나오는 물길을 바라보고 별이 총총히 떠 있는 밤하늘을 바라본다. 군중과 함께하는 화려하고 즐거운 시간 속에서 처절한 고요함을 느껴볼 수 있는 찰나다. 군중과 고독의 경계, 화려한 즐거움과 처절한 고요함의 경계를 오고간다. 그런 ‘경계의 예술’을 맛보는 묘미 덕에 크루즈 여행에 중독되는 듯하다.
이대로 바다만 누비고 다녀도 좋겠지만 한 번씩 땅에 발을 딛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대중들을 위해 크루즈는 기항지에 잠시 멈춰 주는 센스를 발휘한다. 기항지 도착시 기항지 투어 프로그램이나 자유여행을 선택할 수 있다. 물론, 크루즈 안에서 그냥 쉴 수도 있다. 앞서 말했듯이 크루즈 여행은 ‘자유’이자 ‘해방’이다.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내 맘’이다.
또한 크루즈에 타서 내리기 전까지는 짐을 들고 옮겨 다닐 필요도 없으니 짐에서 해방이요, 육지의 일상에서 온전히 떨어져 있으니 현실에서 해방이다. 무엇보다도 휴대전화에서도 해방된다. 로밍이라는, 편리하지만 올가미 같은 제도로 해외여행을 가도 전화벨, 문자메시지, 이메일이 따라다니는 요즈음.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크루즈 안에서만큼은 전파가 잡히지 않아 로밍도 되지 않는다. 불편하다고? 아니다. 지금 같은 최첨단 세상에서 잠시나마 벨소리에서 해방될 수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말하지 않았던가. 진정한 자유와 해방이 크루즈 여행에 있다고.
▶tip
인사이드 객실 활용하기
크루즈에는 바다가 내다보이는 오션뷰, 발코니 객실과 배 안쪽으로 위치한 인사이드 객실이 있다. 대부분 바다가 내다보이는 객실을 선호하지만 그만큼 가격이 비싸다. 비용을 절약하고 싶다면 인사이드 객실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창문이 없어 답답할 수도 있지만 크루즈에는 갑판 테라스나 레스토랑, 각 휴식 공간 등 바다를 내다볼 수 있는 장소가 많다. 낮 동안은 객실 밖에 머물며 크루즈를 즐기고 밤에 자는 동안만 객실에 머무는 방식으로 활용하면 좋다.
글·사진 Travie writer 김수진 에디터 트래비취재협조 롯데관광개발 www.lottetou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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